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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Aug 05. 2023

춘자의 꿈 (8)

67. 서울 정릉동, 이바네 집, 새벽. 


어두운 부엌에 대자로 누워있는 준석. 이바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바. 센서등 밝아진다.


이바 : 뭐고? 안 자고 있었나?


준석은 누워있는 상태로 얘기한다. 


준석 : 거 딱 서라.

이바 : 뭐?

준석 : 거 딱 서라고.


멈추는 이바. 


준석 : 니 요새 뭐 하고 다니노?

이바 : 준돌아. 내 피곤하다. 자고 내일 얘기하자.

준석 : 지금 얘기해라. 니 뭐 하고 다니는데?


이바는 신발장 앞에 서서 얘기한다. 


이바 : 뭐가?


상체를 일으켜서 앉는 준석. 양다리를 쭉 뻗고 바닥에 앉아 있는 자세다. 


준석 : 니가 몇 년 만에 연애하는 거 나도 좋게 생각하고 하는데. 니가 지금 여자에 정신 팔려서 돌아다닐 때가? 니 서울에 와 올라온다 했는데? 옷 공부해서 일본 간다 안 했나? 니 지금 목도리 그거도 커플 목도리 아이가? 새끼야. 부모님 목도리는 사드려 봤나?


이바는 목도리를 풀고 신발장 앞에 쪼그려서 등을 기대고 앉는다. 천장 센서등 불빛으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이바 : 그래서. 계속 얘기해라.

준석 : 나는 그때 니가 진짜 꿈이 있고 열심히 한다 해서 올라오라 한 거고. 니한테 미안해서 돈 빌려주고 방까지 구해주고 간 건데. 지금은 내가 니한테 얹혀살고 있지만. 나도 꿈이 있고 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지금 공부한다이가. 니는 뭔데. 와서 옷 공부는 잠깐 하고 계속 호프집에서 일만 하고 여자 만나고 돈만 쓰고 다니고. 이랄라고 서울 왔나?

이바 : 아니..

준석 : 부산에 느그 어무이도 힘들게 일 안 하시나. 우리가 열심히 해야 될 거 아이가 이바야. 니를 뭐라 하는 게 아이라.


잠시 생각하다가 얘기하는 이바. 


이바 : 준돌아.

준석 : 와?

이바 : 니 말이 맞다.

준석 : 뭐라카노.

이바 : (큰 한숨을 쉬고) 니 말이 다 맞다. 나도 니처럼 꿈을 쫓아서 가고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나도 안다. 나도 불안하다. 근데 그게 잘 안된다. 서울 와서 일만 하고 있고 돈은 벌고 있긴 한데.. 우짜다가 여자도 만나고.. 나도 니  말을 다 아는데.. 아는 데 있잖아.. 그게 잘 안된다.

준석 : 그게 잘 안된다가 무슨 말이고 임마. 하면 되지. 하면 될 거 아이가.

이바 : 친구들은 다들 학교 잘 다니고 3, 4학년 되고 지금 취업한 친구도 있고. 나는 뒤처져 있는 거 같고. 진짜 불안하거든.. 이래 살면 되는 건가.. 나는 지금 호프집에서 일만 하는데..


갑자기 작게 울기 시작하는 이바.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한숨 섞인 괴로운 울음이다. 


준석 : 울지 마라. 와 우노? 니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먹고. 니 맨날 비싼 신발 사고 옷 사 입고.


준석은 이바에게 더 매몰차게 얘기한다. 


준석 : 돈 모아서 일본에 의상 학교 간다메? 이래가 가겠나? 종로 호프집에서 말뚝 박을라 하나? 니 못 간다 임마. 일본. 장난하나?


그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로 앞 벽으로 힘껏 던지는 이바.


이바 : 씨발!! 


깜짝 놀란 준석.


이바 : 안다고!! 나도 안다고!!


서럽게 우는 이바. 준석은 잠시 쉬었다가 얘기를 이어간다.


준석 : 이바야. 우리가 지금 늦은 나이가 아이다. 충분하다. 니 잘하고 있다. 돈 모으면 된다. 나도 내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끼다. 편입 붙어서 좋은 학교 가서 돈도 많이 벌고 내 하고 싶은 배우도 다시 해볼꺼고.

이바 : 불안한데.. 해야지.. 갈끼다 일본.. 무조건 갈끼다.

준석 : 그래. 나도 무조건 할끼다.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이바는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옷 갈아입고 나오는 이바에게 준석은 앉은 상태로 물어본다.


준석 : 배 깎아 물래?

이바 : 배?


CUT TO.


준석과 이바는 연두색 상을 마주 보고 앉아서 배를 먹고 있다. 


이바 : 아까 니가 내 몰아붙일 때 진짜 무슨 생각 들었는 줄 아나?

준석 : 무슨 생각 들었는데.

이바 : 지금 상위에 이 칼. 이거 꺼내가 니 찔러 삐고 싶드라.

 

준석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웃는다. 


준석 : 니가 내 찌르면 우리 부모님은 우짜노?

이바 : 그니까. 우리 부모님은?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좋게 웃는다. 


68. 정릉동 독서실, 휴게실, 낮.

 

준석은 독서실 휴게실에서 서서 신문을 펼쳐놓은 상태로 친구 수천과 통화 중이다. 


준석 : 언제 온다고? 12월 2일?


수천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준석 : 글쎄.. 옛날에는 내가 집주인이었는데 지금은 이바가 주인이니까 이바한테 물어봐야 될 거 같은데.. 근데 경목이도 미리 서울 온다 하든데? 쪼메 빡쎌 수도 있겠는데...


69. 정릉동 시장 안, 삼겹살집, 저녁. 


준석은 수천이 경목이와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있다. 둘을 보며 얘기하는 준석.


준석 : 일단 이바가 긍정적으로 얘기했으니까 된다 할끼다. 설마 뭐 딴 데 가라 하겠나?

수천 : 내는 되겠제? 경목이 임마는 내보다 늦게 얘기했으니까 딴 데 가라 해라.

경목 : 양아치네. 이 새끼야. 우리 한배 탔다이가.

수천 : 안 탔다 이 새끼야. 배는 각자 타는 기다.


그때 이바가 삼겹살집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 쪽을 쳐다보는 셋. 


경목 : (소곤대며) 왔다 왔다.

준석 : 어 이바야. 왔나.


준석의 옆자리로 앉는 이바. 친구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이바 : 수천이 경목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CUT TO.


얘기를 다 들은 이바가 말한다.  


이바 : 뭐 우짜겠노? 같이 살아야지. 그래봐야 한 달 아이가?

수천 : 맞다. 한 달. 고맙네 이바친구. 마 니도 빨리 고맙다 해라.

경목 : 고맙다 이바야. 니 덕분이다.

이바 : 둘이 작은방 쓰면 되겠네. 공부 열심히 해서 셋 다 합격해라.

 

넷은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인다. 


70. 정릉동 독서실, 실내, 오후


준석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 뒤 옆방에 있는 경목이 자리로 조용히 가본다. 경목이 자리 커튼을 치는 준석. 경목은 노트북으로 소녀시대 gee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다. 


준석 : 임마 이거 뭐하노?

경목 : 방금 틀었다. 임마. 니 gee아나?

준석 : 지가 뭔데?

경목 : 봐 바바. 장난아이다.

준석 : 지같은 소리하고 있네. 공부해라이.


경목의 뒤통수를 톡 치며 커튼을 치는 준석. 


71. 정릉동 이바네 집, 새벽 2시


준석은 큰 방 침대 옆 바닥에 누워 잠에 들 준비를 한다. 현관 옆 작은방에서 경목이와 수천이가 안 자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신경이 거슬리는 준석. 방문을 열고 소리친다. 


준석 : 안 잘끼가!!

경목 그만 좀 얘기해라 수천아.

수천 : 이 새끼가. 지가 먼저 꺼냈으면서.

준석 : 수천아!!

수천 : 어 자께! 잔다! 자께!! 준슥아!!


72. 서울 정릉동, 시장 안 정자, 오후.

 

정자에 벌러덩 누워있는 준석. 그 앞에 서서 준석을 바라보는 경목과 수천.


준석 : 와.. 돌겠다.. 진짜 완전히 조짓다..

수천 : 괜찮다 준슥아. 아직 많이 남았다이가.


일어나서 양반다리로 앉는 준석.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다. 


준석 : 아니. 내 앞에 옆에 놈이. 내 왼쪽 대각선 방향에 있는데. 졸라 잘 보인다이가. 이 새끼가 다리를 계속 떠는기라.. 하.. 감독관한테 처음부터 얘길 했어야 되는데..

경목 : 마! 드가자! 아직 시험 끝난 거 아이다. 정신 차리라!


답답한 표정의 준석은 쉽게 일어서질 못한다. 


73. 서울 정릉동, 삼겹살집, 저녁.

 

삼겹살집에 앉아 있는 넷. 이바를 뺀 세 명의 얼굴은 꽤나 아쉬운 표정이다. 


이바 : 다 끝난기가 이제?

준석 : 어. 시험은 다 끝났다.

이바 : 고생들 했네.

수천 : 고맙다 이바친구. 덕분에 잘 있었다.

경목 : 진짜 이바 니 아니었으면 이래 시험 못 칫다.

이바 : 셋 다 붙었음 좋겠네. 준돌이 니는 우째 잘 칫나?

준석 : 최선을 다했다. 떨어져도 후회는.. 답이 없네..

이바 : 한잔하자. 붙으면 다들 한방 쏴라!


넷은 힘차게 술잔을 부딪힌다. 


74. 부산 영도 준석의 집, 준석의 방, 저녁. (27세)


준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본다. 


준석 : 어디 어디 남았노.. 돌겠네..


오늘까지 발표 난 학교는 다 불합격이다. 그때, 수천이에게 걸려오는 전화.


75. 부산 남항동, 삼겹살집, 저녁.


셋은 삼겹살에 소주를 먹고 있다. 경목이는 집게로 고기를 뒤집고 있고 수천이는 소주를 한 잔 들이킨다. 준석은 팔짱을 낀 채로 불판을 보며 얘기한다. 


준석 : 전멸이가?

경목 : 그렇네. 씁쓸하네..

준석 : 오늘이 추가 합격 전화 마지막 날 아이가? 수천이 니 전화 안 왔제?

수천 : 아니, 예비 2번이 안 빠지는 게 말이 되나? 두 명인데?

경목 : 편입은 원래 잘 안 빠진다. 니가 편입을 아나?

수천 : 뭐고 이 새끼는. 누가 보면 붙은 줄 알겠네.

경목 : 복학해야지. 세 번 도전했으면 충분하다. 난 후회 없다. 니는 우짤끼고?


준석을 쳐다보는 둘. 


준석 : 몰라. 아 진짜 죽겠네.. 편입 문이 이래 좁나? 하..

수천 : 됐다 마. 씰떼없는 소리 하지 말고 스타나 한판 하자.

준석 : 이 상황에 스타는 무슨 스타고 임마.


76. 부산 대평동, pc방, 저녁.


무표정한 얼굴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준석.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수천 : 막판하고 가자. 들어온나. 방 만들었다.

준석 : 어.

수천 : 9드론 할끼가?

준석 : 어. 빨리 끝내고 가자.


그때 준석의 핸드폰이 울린다. 


준석 : 어?

 

발신자 번호 02-7xx-xxxx가 보인다.


준석 : 마, 잠깐만.

 

급하게 전화를 받는 준석. 밖으로 나간다. 그런 준석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는 수천과 경목. 잠시 뒤 들어오는 준석. 


준석 : 마!! 됐다!!!

수천 : 됐다고? 진짜가??

경목 : 어데고?? 어데서 전화왔노??

준석 : 성균관대다!! 마!! 됐다!! 와 시바!!!


됐다!!라고 소리치는 준석의 모습 클로즈업. 


77. 부산 해안 도로, 택시 안, 저녁.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준석. 


준석 : 아부지, 일하십니까?

아빠 : 어, 왜 그러냐.

준석 : 저 붙었습니다. 좀 전에 마지막 추가 합격으로 전화 왔어요.

아빠 : 붙었다고. 어딘데?

준석 : 성균관댑니다.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요.


바뀌지 않는 아빠의 톤. 


아빠 : 그래 수고했다. 엄마한테 전화했나.

준석 : 아니요, 아부지한테 바로 전화드렸네요.

아빠 : 수고했다. 엄마한테도 전화해라.

준석 : 네 아부지.


준석은 전화를 끊고 택시 창밖을 본다. 바다에는 많은 배들이 떠있다. 바다를 환한 불빛으로 밝히고 있는 배들. 불빛을 보며 준석은 조용히 말한다.


준석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준석 : 다 잘 될 일만 있습니다.


78. 수원 성균관대, 공대 강의실, 오후. 


전공 수업을 듣고 있는 준석.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인다. 


준석 : ..


(insert) 부경대 강의실에 앉아 있던 준석. 자퇴를 쓰던 준석의 모습.


준석 : 왜.. 안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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