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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Aug 05. 2023

춘자의 꿈 (9)

79. 수원 성균관대, 교내, 오후.


이바와 전화 통화를 하며 캠퍼스를 걷고 있는 준석. 


준석 : 이바야. 휴학 신청했다. 일단 도전한다. 1년 안에 티비에 내가 안 나온다. 그라면 시원하게 접는다. 마 남자아이가!


80. 서울 여의도, 드라마 세트장, 저녁. 


드라마 촬영 현장. 준석은 1980년대 백골단 군복을 입고 있다. 백골단 대장 역을 맡은 준석은 문을 뻥! 차며 들어온다. 대사를 하는 준석. 


준석 : 방금 여기 들어온 놈 하나 있었지? 어딨어!!!

감독 : 컷!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감독은 준석에게 다가와서 말한다. 

 

감독 : 백골단 대장님?

준석 : 네?

감독 : 군대 갔다 오셨죠?

준석 : (잠시 멈칫하다) 네. 

감독 : 근데 왜 그러시지? 문을 찰 때 아래를 차지 말고 훨씬 위쪽 여기를 세게 팍! 차고 들어와야 되는데. 지금 문이 너무 천천히 열리면서 들어오시니까.. 알 텐데? 무슨 말인지 알겠죠?

준석 : 네네. 알겠습니다.

감독 : 군대에서 했던 것처럼 해요. 편하게. 알겠죠?

준석 : 네 알겠습니다.

감독 : 자, 다시 갈게요!

 

CUT TO.


아까 감독이 손으로 짚었던 부분을 응시하는 준석. 액션! 소리가 들리자 응시하던 지점을 있는 힘껏 차고 들어오며


준석 : 방금 여기 들어온 놈 하나 있었지? 어딨어!!!

감독 : 오케이요~.


81. 서울 정릉동, 이바네 집, 오전.


거실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자신이 나온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하고 있는 준석. 방문을 열고 나온 이바가 준석의 옆에 앉는다. 


이바 : 니 나오나?

준석 : 나온다. 근데 얼마나 나오는지 모른다. 나도 처음 본다.

이바 : 오~ 지기네~ 빨리 틀어봐라.

준석 : 기다리 봐라. 지금 결제하고 있다.


둘은 준석이 나오는 장면을 같이 보고 있다. 


이바 : 마, 이상하다. 못 보겠다. 뭔가 이상한데?

준석 : 나도 이상하다. 그냥 봐라.

이바 : 아니, 연기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이 화면에 나오니까 이상하다.

 

이바를 쳐다보는 준석. 


준석 : 연기는 안 이상하나?

이바 : 다시 봐보자.


준석이 나오는 장면을 다시 보는 둘.


이바 : 안 이상하다.


기분 좋은 준석. 이바 등을 때리며 


준석 : 마! 행님이다.

이바 : 송강호 잡으러 갈끼가?

준석 : 어데있노? 송강호! 근데 송강호를 와 잡으러 가노?


즐거워 보이는 둘. 준석은 자신이 나온 장면을 다시 본다. 


82. 망원동, 지하 연습실, 오후.


지하 개인 레슨 연습실 안. 선생님은 테이블 책상에 앉아 있고 준석은 연습실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


선생님 : 저번 주에 녹음하고 연습 몇 번 했니?

준석 : 계속했습니다.

선생님 : 확실해?

준석 : 네.

 

선생님은 볼펜을 딸깍거리며 준석을 쳐다본다. 


선생님 : 복학이 언제지?

준석 : 내년 3월입니다.

선생님 : 학교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준석아.

준석 : 근데.. 졸업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선생님 : 아니 꿈이 있는데 왜 학교를 가니? 배우 계속할 거 아냐?

준석 : 맞습니다. 근데 1년 남았는데 또 자퇴를 쓰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선생님 : 너 지금 레슨 6개월 받고 촬영도 잘하고 있고.. 선생님이 너를 생각해서 해주는 얘기야.


결정한 듯한 준석의 표정. 


83. 수원 성균관대, 강의실, 오후. (29세)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준석.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84. 수원 천천동, 준석의 자취방, 저녁.


한여름 찜통더위. 준석은 팬티만 입고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있다. 준석은 펜을 놓고 등을 뒤로 기대어 창밖 가로등을 쳐다본다.


준석 : 하.. 정신병자 되겠네.. 계절학기를 11학점을 듣는 게 말이 되나? 논문도 써야 되고.. 할게 와이래 많노..


준석은 책상 옆에 있는 등록금 고지서를 본다. 2학기 등록금은 400만 원이 넘게 찍혀 있고 그중 본인 부담금은 6만 원가량으로 찍혀 있다. 


준석 : 전액 장학금이라.. 이게 중요한 게 아인데..


준석은 책상 위 빈 종이에 글을 적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김준석이 주인공인 소설책의 작가라면..’

 

준석 : 내 마음대로 쓸 거 같은데..


종이를 치우고 다시 책을 펴서 공부하는 준석.


85. 수원 성균관대, 내연기관 연구실 앞 계단. 오후.

 

준석은 박사 준비 중인 선배님과 연구실 앞 야외 계단에 쪼그려 앉아 얘기 중이다.


선배님 : 논문은 다 끝났어?

준석 : 네. 다행히 통과했습니다.

선배님 : 고생했다.


CUT TO.


선배님은 담배를 끄며 얘기를 이어간다.


선배님 : 멋있는데? 그게 왜 이상해?

준석 : 멋있다고요? 졸업하고 취업 안 하고 배우 하는 게요?

선배님 : 멋있지 그럼. 꿈이 있어서 도전하는 건데.


준석은 평소 무뚝뚝하고 무서워만 보이던 선배 형님이 하는 얘기에 놀란다. 


선배님 : 너 싸인은 있어?

준석 : 싸인요? (웃으며) 없죠.

선배님 : 임마 배우가 싸인이 있어야지.

준석 : 에이~. 제가 무슨 싸인입니까.

선배님 : 에이는 무슨. 너 가기 전에 나한테 싸인 주고 가. 없으면 만들어서 주고 가. 알았지? 진짜야. 안 주고 가면 혼난다.

준석 : 제 싸인을 굳이.. 농담하지 마시지요.

선배님 : 농담 아니라니까. 주고 가. 알았지?

준석 : 네.


다시 연구실로 들어가는 선배님의 뒷모습을 보며 긴가민가 하는 표정의 준석. 


86. 경기도 화성, 동글이 집, 저녁.


작은 원룸 방. 준석과 일구, 동글이는 바닥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세 사람 앞 작은 상 위에는 고향만두, 용가리 치킨 너겟, 소주병들과 소주잔 세 개가 올려져 있다. 


동글이 : 욕봤다. 한잔해라.

준석 : 계절학기에 논문에 피똥 쌌다.

일구 : 어이. 어데 조빱이가? 이 새끼 와이래 조빱이고.

동글이 : 논문 안 써본 놈 잔 비았다. 잔 받아라.

일구 : (잔 받으며) 어.


일구는 잔을 받고 원샷한다. 술에 취해 혀가 약간 꼬여있다. 

 

일구 : 그래서 우짤끼고 춘자야. 우짤낀데 도대체. 너 왜 말이 없니.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이 친구야.

준석 : 이 새끼는 술 조빱인 거 여전하네. (동글이를 보며) 마. 택시비 주고 보내라.

동글이 : 택시비 아깝다.

일구 : 자고 갈껀데예?

준석 : 하.. 모르겠다. 우짤지. 쌔가 빠지게 공부했는데 지금에 와서 배우 한다 하면 이게 되겠나?

일구 : 안되지. 존나 안되지.

준석 : 그니까. 집도 지금.. 뭐 느그들이니까.. 부산에 부모님 집도 지금 월세 사시는데. 오백에 이십 사신다. 월세 이십도 집주인이 깎아줘서 8만 원 내신다. 이 상황에서 내가 돈을 벌어야 맞는 거 아이겠나?

동글이 : 준돌아. 그건 맞는데, 나는 니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구는 동글이 뺨을 때린다. 세게 맞은 동글이는 정색하면서 일구를 때릴려고 한다. 


일구 : 아 미안 미안. 살살 때릴랬는데. 마. 그게 중요한 게 아이고. 돼지야 들어봐라. 준돌이가 지금 쌔빠지게 공부를 했잖아? 학자금 대출도 있을 거 아이가? 맞제? 있제 니?

준석 : 있지.

일구 : 그라면 취업을 하는 게 맞지. 배우는 무슨 배우고. 실컷 공부해서 지금 뭐 하는 시츄에이션인데. 이래 말하지 당연히. 아이가?

동글이 : 니는 자라. 행님들 이야기하는데.

일구 : 예 행님. 생일도 제일 느린 돼지가 존나 까부네. (때리려 하자) 아 미안 미안.

동글이 : 내 말은 준돌이가 지금 마음이 그렇다고 얘길 한다이가. 저 상태로 일을 우째하는데? 나도 지금 존나 일가기 싫은데. 난 꿈 없다. 꿈 없는데도 하기 싫다니까? 난 준돌이 니가 배우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준석 : 맞나?

일구 : 마. 나도 그게 맞다고 본다.

동글이 : 좀 닥치라 니는.

일구 : 내도 말 좀 하자. 맨날 닥치까 나는. 왜 나는 맨날 닥치야 되는데.

준석 : 나도 그게 맞다고 본다. 한잔 주바라.

일구 : 그래 시원하게 한잔 하고 선택하자 춘자야.


준석은 원샷한다. 준석을 따라 동글이와 일구도 잔을 비운다. 용가리 치킨 너겟 하나 집어 먹은 동글이가 말한다. 


동글이 : 선택했나?

 

준석을 쳐다보는 둘.


준석 : 선택했다.

일구 오! 두근두근. (바닥을 두드리며) 두두두. 두두두두. 아춘, 아춘, 아춘춘춘자! (동글이가 때리려고 하자) 아라따, 아라따. 닥치께.

준석 : 바로 배우 해야 되겠다.

일구 : 진짜가? 진짜가? 마 진짜가?


술에 많이 취한 일구는 진짜로 놀란 표정이다. 


일구 : 진짜 바로 한다고?

준석 : 어.

일구 : 임마 이거 완전히 도라이 행님이네..(한숨)

동글이 : 그래. 그래해라. 인자 고민 그만해라. 에너지 낭비다.

준석 : 이래는 못 산다. 그냥 내 선택이 맞다고 생각할란다.

동글이 : 그라면 지금 그냥 바로 부산 내려가서 말씀드리라.

준석 : 지금? 지금 밤 열 신데?

동글이 : 뭐 어떻노. 수원역 가면 기차 있는데.

준석 : 진짜 그라까?


듣고 있던 일구가 갑자기 진지해진 모습으로 한마디 한다. 


일구 : 마, 춘자야. 니 있다이가. 니 존나 멋있다. 진짜 내가 빈말하는 게 아이고..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로 얘기하는 일구.


일구 : 내가 지금 좀 감동을 받았어.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데.. (웃는 동글이에게) 돼지 니는 웃지 마라. 진짜 니 존나 멋있다. 살 데 없으면 우리 집 온나. 방세도 내지 말고 공과금도 내지 말고. 돈은 내가 다 낼 테니까 니는 그냥 몸만 와서 살아라. 돈 없다이가? 니 끌베이 아이가? 끌베이니까 행님이 서포트 하께. 진짜다. 진짜 온나.

동글이 : 그래. 집은 일구 집 가서 살면 되겠네. 간만에 제대로 된 소리 했네 일구. 잘했다.

일구 : 니가 뭔데 내를 평가하고 잘했네 뭐 했네. 마!


둘은 서로 뒤통수를 때리려고 아둥바둥 한다. 그런 둘을 보다가 일어서며 얘기하는 준석. 


준석 : 그라면 지금 가야겠다.

일구 : (동글이에게 뒤통수 한 대 맞고) 간다고?

준석 : 어. 가야겠다. 가서 말씀드리야겠다.

일구 : 가자 춘자야. 가서 정확하게 말씀드리라. 아부지! 제가 안 있습니까!

동글이 : 아 좀 닥치라. 진지한 얘기하는데 존나 취해가 와이라노?

일구 : 나도 진지하다. 마! 준돌아. 가서 말씀드리라. 정확하게 어?

준석 : 내가 알아서 하께.

일구 : 어 그래.

동글이 : 출발해라. 그라면. 지금 가면 12시 전에 기차 탈 수 있을끼다. 돈은 있나? ktx 끊어주까?

준석 : 됐다. 돈 있다.

일구 : 마 얼마 필요하노 행님이 주께. 마 얼만데? 돼지. 니 지갑 주바라.


둘은 또 싸우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준석은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 일어나며


준석 : 간다. 행님이 내일 전화하께.


87. 수원역, 역 내, 저녁.


준석은 매표소 앞에서 기차 시간을 확인한다.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 주말이라 좌석은 매진이고 입석만 남아있다. 23:40 출발 – 04:40분 도착 티켓을 사는 준석. 

 

88. 무궁화호 열차 안, 새벽. 


열차 안. 연결칸 보조석에는 사람이 앉아 있다. 연결칸 한쪽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준석. 어두컴컴한 창밖을 본다. 지난 순간들을 돌이켜 보는 준석의 얼굴. 주머니에서 싸인 종이를 꺼내 보고 피식 웃으며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창밖을 보며 상상해 보는 준석.


준석(v.o) : 아부지. 제가 꿈이 있습니다. 저한테 10년만 주시면 진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빠(v.o) : 그래. 준석아. 돈 걱정은 말고 아빠가 밀어줄 테니까 열심히 해봐라. 

준석(v.o) : 예. 아부지. 감사합니다.


밖은 여전히 어둡고 무궁화 열차가 달리는 소리는 시끄럽다. 

 

89. 부산역 앞 광장, 새벽 04:45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준석. 아직 첫차 운행 시간이 안 된 정류장은 텅 비어 있다. 준석은 택시를 잡는다. 

 

90. 부산 영도 해안 도로, 새벽. 05:00


준석은 해안 도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 있다. 아버지께 성균관대 합격 전화를 하며 봤던 영도 앞바다 풍경이 보인다. 컴컴한 바다 위에는 많은 배들이 떠있고, 그때처럼 환한 불빛을 밝히고 있다.


91. 부산 영도 태종대 자갈마당, 새벽. 05:10


자갈마당 자갈밭 위에 서 있는 준석. 저 먼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지만, 한여름의 새벽이라 춥진 않다.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준석. 생각이 많아 보인다. 


92.  부산 영도 태종대, 준석의 집 앞, 새벽. 05:30


집 앞에 도착한 준석은 벨을 누른다. 


준석 : 엄마~.


93. 부산 영도 태종대, 준석의 집, 큰 방, 새벽. 06:00


준석은 가족들과 된장찌개에 아침밥을 먹고 있다. 가족들은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별말이 없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준석은 큰 방에서 부모님과 누나와 함께 대화를 시작한다. 


엄마 : 연락도 없이 왜 이리 일찍 왔어?

준석 : 뭐 그냥. 계절학기도 끝나고 논문도 다 끝나고 해서.. 왔지요.

아빠 : 다 끝났나.

준석 : 네. 다 끝났습니다.

누나 : 수고했겠네. 좀 쉬어야 안되나.

준석 : 어. 인자 좀 쉬야지.

 

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아빠를 보며 말한다. 


준석 : 아부지. 제가 학교 1년 휴학하고 연기 배우고 촬영도 하고 했었잖아요.

아빠 : 그래.

준석 : 제가 4학년 복학해서 진짜 공부 열심히 하고 1학기 때 잘해서 2학기 전액 장학금도 받고 했는데..

누나 : 완전 대단하다. 김. 대박이다 진짜.


준석은 누나를 살짝 한번 쳐다보고 다시 아빠를 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준석 : 계속 생각이 드는 게.. 제가.. 배우를 해야 될 거 같은 거예요. 취업을 해서 돈을 벌까 생각을 해봐도.. 그게 맞는데.. 지금 바로 제 꿈을 선택 안 하고 취업을 하는 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빠는 준석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준석은 그런 아빠를 보며


준석 : 아부지. 제가 취업을 해서 일을 2-3년 하면 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근데 제가 배우를 선택하고 저한테 10년만 주시면 진짜 저 진짜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준석의 말을 경청하며 듣고 있던 아빠는 천천히 입을 떼며 말한다. 


아빠 : 준석아..

준석 : 예.


작은 한숨을 내쉬고 어렵게 말하는 아빠. 


아빠 : 지금 집이 형편도 이렇고 돈이 없는 상황인데. 니가 그래도 단 몇 년이라도 일을 해서 집을 좀 도와야 안 되겠나.


아빠를 쳐다보는 준석. 서운한 건지 죄송한 건지 모를 표정이다. 


준석 : 그렇죠. 맞죠. 맞는데.

아빠 : 니 꿈도 중요하고 하지만.. 꿈이라는 게 그것만 보고 갈 수는 없는 것이고.

준석 : 맞습니다..


준석은 아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엄마가 아빠의 말을 받아서 얘기한다. 


엄마 : 잠깐만요, 여보. 제가 얘기할께요.


준석을 쳐다보며 말하기 시작하는 엄마. 


엄마 : 준석아.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잠깐 숨 돌리고 말을 이어가는 엄마. 


엄마 : 우리가 지금 형편이 이렇기는 해도. 전혀 부족한 게 없어. 우리는. 가족 다 건강하지. 다 같이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잘 있거든. 아버지 말씀대로 준석이 니가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도와주면 좋지. 근데 엄마는.. 준석이 니가 연봉이 4,000만 원이던 2,000만 원이던 1,000만 원이든 간에, 그 돈을 벌어서 우리를 다 줘도 좋고, 준석이 니가 다 써도 좋고, 절반을 줘도 좋고, 안 줘도 상관이 없어 엄마는..


엄마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는 준석.


엄마 : 엄마가 바라는 거는 우리 준석이가 서울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밥 잘 먹고 잠 잘 자는 게 제일로 중요하고 엄마는. 그것보다 중요한 게 뭐냐면 마음이 편안해야 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 좋게 일어나고. 로션도 기분 좋게 바르고. 엄마는 준석이가 인상 쓰면서 있고 그런 거는 싫어. 알겠제?

준석 : 예.

엄마 : 돈이 부족하거나 하면 엄마한테 말하면 10만 원, 5만 원이라도 보내줄 테니까. 반찬은 있어? 반찬도 계속 보내 줄꺼고.


아빠와 누나는 말없이 듣고 있다. 엄마는 아빠를 보며 말한다. 


엄마 : 어때요 여보. 그렇게 해도 되죠?


아빠는 말이 없다. 


엄마 : 참 자기는! 왜 말이 없어? 아들이 큰 결심을 했는데 축하를 해줘야지. 그렇게 해도 되죠?


아빠는 마지못해 말한다. 


아빠 : 그래. 뭐.. 해봐라.

엄마 : 아이가이! 그게 뭐라. 확실하게 얘길 해줘야지.

아빠 : 그래! 한번 해봐! 해봐라!! 엄마 말이 맞다.


준석은 울지 않고 울먹이지도 않는다.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준석 : 감사합니다. 제가 진짜 단디 해보께요.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고 누나는 준석을 부른다. 


누나 : 김.

준석 : 어.

누나 : 좀 멋있데이.


눈이 붉어진 누나.


누나 : 열심히 해봐라.

준석 : 어 열심히 해야지. 할 수 있다.

누나 : 당연하지. 니는 무조건 할 수 있다.


준석은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마 : 바로 갈라고?

준석 : 말씀드리러 내려왔으니까 인자 올라가야죠.

누나 : 와 바로 가노? 며칠 쉬었다 가지.

준석 : 아이다. 바로 가는게 낫다.


아빠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말한다. 


아빠 : 그래. 바로 올라가.

준석 : 네.

아빠 : 수원으로 가나.

준석 : 일구가 안산으로 오라 하대요. 자기 집에서 살아라고. 일단 수원 가서 짐 정리하고 일구 집으로 옮겨야지요.

아빠 :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엄마 : 쓸 돈은 있어?

준석 : 있습니다.


엄마는 가방에서 현금 몇 장을 꺼낸다.


엄마 : 자.

준석 : 에헤이 있다니까는.

엄마 : 현금은 좀 갖고 있어야지.


엄마는 현금 5만 원을 준석에게 건네준다. 


준석 : 잘 쓰께요.

 

준석은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뒤돌아 보며 말한다. 


준석 : 하이파이브 한번 하까요. 다 같이.

누나 : 하이파이브?

준석 : 어. 하이파이브.

누나 : 네 명이서 할 수 있나.


손을 앞으로 내미는 준석. 


준석 : 이렇게.. 다 같이 손 내밀면 됩니다.


엄마와 누나는 손을 내민다. 


엄마 : 자기도 내밀어요 얼릉.

아빠 : 아따 이런 거 뭐더러 한다냐.

 

아빠는 마지못해 손을 내민다.


준석 : 위로 하까요 아래로 하까요?

아빠 : 아무 때나 해 언능.

준석 : 예. 위로 할께요.


가족들은 모아진 손을 쳐다본다. 


준석 : 하나 둘 셋. 

엄마, 누나, 준석 : (손을 위로 올리며) 파이팅!


아빠는 손을 아래로 내린다. 


엄마 : 참나. 자기는. 다시 해.

아빠 : 에이~ 안 해. 언능 가.

 

방으로 들어가는 아빠. 그런 아빠를 보며 살짝 웃는 준석.


CUT TO.

 

준석은 대문 밖으로 나온다. 엄마와 누나는 준석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온다. 


준석 : 언능 들어가세요. 갈께요.


인사하고 뒤돌아 걸어가는 준석.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엄마와 누나는 준석의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고 있다. 다시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둘은 그대로 사이좋게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저 멀리 걸어간 준석은 돌아서서 크게 외친다. 

 

준석 : 도착하면 전화드릴께요~! 들어가세요! 갑니다!


준석은 씩씩하게 걸어간다. 누나 들어가고 엄마는 준석이 가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다. 준석의 등 뒤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엄마.


엄마 : 준석 님, 다 잘 될 일만 있습니다.


걸어가는 준석의 얼굴 표정. 밝다. 바람이 불어와 준석의 머리칼을 흐뜨러 트린다. 크게 숨을 들이쉬며 내뱉는 준석. 웃는다.

 

 

94. 교실 안, 오전. (현재)


창밖에서 불어오는 옅은 바람이 준석의 얼굴에 가닿는다. 얘기를 끝낸 준석은 살며시 웃는다.


양숙쌤 : 멋있네.

준석 : 네?

 

어느덧 교실 뒤편에 서있는 선생님이 말한다. 몇몇 학생들은 뒤돌아 선생님을 본다. 


양숙쌤 : 멋있다고!

준석 : 아.. 네.. 

 

준석 멋쩍은 듯 대답하면


양숙쌤 : 니 말고 부모님이 멋있으시다고, 이놈아! 자, 박수. 

 

선생님 박수치자 교실에 학생들 따라 박수친다. 준석도 따라 박수친다. 


양숙쌤 : 어머니가 참 대단하시네. 부모님 다 건강하시나? 

준석 : 네. 건강하십니다. 

양숙쌤 : 부모님한테 잘해라. 항시 연락 자주 드리고, 니가 성공하는 게 효도하는기다.

준석 : ..저희 어머니는 이미 저보고 성공했다고 하시던데요. 

양숙쌤 : 무슨 말인고?

준석 : 저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했더니, 어머님 말씀이.. 준석이는 이미 성공을 했다. 이미 하고 싶은 꿈을 찾아서 그 일을 하고 있고 좋은 짝 만나서 애 낳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까 이미 성공을 한 거라고.. 

양숙쌤 : 참.. 많이 대단하신 어머님이시네.. 다음엔 엄마를 모셔와야겠다. 학교에. 

준석 : 좋아하실 겁니다. 말씀하시는 거 좋아하시거든요. 

양숙쌤 : 반장!

반장 : (놀라며)네?

양숙쌤 : 책임지고 우리 반 학우들의 꿈을 함께 찾도록 하거라. 알겠제!

반장 : 네. 알겠습니다.

양숙쌤 : 인사하자.

 

반장 자리에서 일어난다. 


반장 : 전체 차렷. 선생님께.. 선배님께 인사. 

학생들 : 수고하셨습니다.

준석 : 수고하셨습니다. 

 

반 학생들 준석에게 인사하고 준석도 따라 고개 숙여 인사한다. 고개 들면 학생들 몰려 나오며 준석에게 다가간다. 사진 찍자고 하는 학생. 자신의 꿈을 얘기하는 학생. 자신도 배우가 꿈이라며 얘기하는 학생. 말소리와 주변 소음 겹쳐지며 ‘춘자의 꿈’ 음악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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