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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Aug 05. 2023

춘자의 꿈 (7)

54. 부경대 용당캠퍼스, 학과 사무실, 낮. (25세)

 

학과사무실로 들어오는 준석. 앉아 있는 직원을 보며


준석 : 재입학 신청하러.. 왔는데요.

직원 : 네. 저기 테이블 위에 보시면 재입학이라고 적힌 종이 있어요. 그거 작성해서 주시면 돼요.

준석 : 네. 감사합니다.


직원분이 말한 곳으로 가서 재입학 신청 서류를 작성하는 준석. 


55. 부경대 용당캠퍼스, 2 공학관 강의실, 전자물리학 수업, 오후


8명 정도 앉아 있는 작은 강의실. 준석은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보다 두어 칸 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준석, 볼펜을 깨물며


준석 : 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CUT TO.

 

수업이 끝나고 같은 학년인 동생 준희가 준석 자리로 다가온다. 


준희 : 행님, 밥 무러 가지요.

준석 : 어 그래.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준석.


56. 부경대 용당캠퍼스, 학생식당, 오후.


학생식당에서 물을 한잔 먹고 나오는 준석은 과대표 친구와 마주치며 인사한다. 


준석 : 니가 2학년 과대표제? 얘기 많이 들었다. 니도 1년 휴학했는가베.

과대표 : 어. 집에 일이 있어 가지고. 니는 서울 갔다 왔다 하대.

준석 : 어 갔다가 다시 왔다. 박주가 그라드나?

과대표 : 어. 박주한테 들었다.

준석 : 박주가 또 뭐라하대.

과대표 : 또? 뭐 니 서울에서 망해가 내려왔다든데?

준석 : 아하.. 망해가.. 하 참.. 박주


씁쓸한 표정의 준석. 해맑게 장난치며 웃는 과대표 친구. 


57. 부산 서면. 김영 편입 학원. 사무실.

 

준석은 편입 학원 사무실에 앉아 직원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준석 : 50만 원요? 와.. 비싸네요..

직원 :일단 처음에 들어가는 비용이 그렇고예. 그 후부터 매달 내는 수강료는 그렇게 안 많고예.

준석 : 개강이 언젭니까?

직원 : 개강은 이미 했고 내일부터 바로 수업 들으시면 됩니다. 우선 영어 수업만 접수를 하고 학교 전형에 따라서 수학을 보는 학교로 지원한다고 하면 수학도 신청하면 되고예.

준석 : 네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직원분께 인사하고 나오며 준석은 옆 강의실을 둘러본다. 대략 70-80명의 학생들이 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다. 


준석 : 와... 뭐 이래 많노?

 

CUT TO.


편입 학원 계단을 내려오는 준석. 문득 군자역이 생각난다.


준석 :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58. 편입 학원, 강의실, 주말 오후.

 

각자의 책상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준석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그때 친구 영아가 다가와 준석의 가방을 툭 찬다. 


영아 : 그만 자라.


준석은 오른쪽 뺨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일어나 영아를 본다. 


준석 : 어. 아.. 피곤하네..

영아 : 음료수 마시러 가자.

준석 : 그래.


CUT TO.


자판기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둘. 


준석 : 니는 무슨 과로 간댔지?

영아 : 영어영문. 니는?

준석 : 내? 내는.. 하~ 모르겠네.

영아 : 뭘 몰라. 지금 시점에 모르는 게 말이 되나. 니 공대 아이가?

준석 : 어. 지금 전자과지. 근데 연극영화과로 갈라 하니까 뽑는 인원이 헬이다 헬.

영아 : 연영과는 거의 안 뽑을걸?

준석 : 그래서 친구들은 기계공학과 가라든데. 취업 잘된다고.

영아 : 기계공학과도 좋은 데는 엄청 쎄다.

준석 : 알지. 일단 공대로 편입을 하는 게 안 낫겠나 하고 있다.

영아 : 그래. 한양대나 서강대 성균관대 기계공학과 넣어봐라. 고대는. 고대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거긴 전공 시험을 치니까.

준석 : 참.. 이름만 들어도 엄청나네 엄청나. 한양대? 고려대?

 

준석은 마시던 캔 음료를 원샷한다. 


59. 부경대 용당캠퍼스, 2 공학관 뒤, 오후

 

준석은 동생 준희와 2 공학관 건물 뒤 벤치에 앉아 있다. 벤치 끝에는 다 먹은 짜장면 그릇과 탕수육 몇 개가 남은 그릇이 보인다. 


준희 : 행님 그라면 내년에 한양대 가는 거예요?

준석 : 뭘 가 임마. 한양대는 아무나 가나.

준희 : 공부 열심히 하면 가겠죠. 학교 끝나면 계속 편입 학원 가는 거 아니예요?

준석 : 가고 있지. 매일.

준희 : 한양대 가겠네요. 행님 근데 모델 아니예요?

준석 : 모델이냐고?

준희 : 아들이 행님 모델 하다 왔다던데요.


손톱 정리하던 준석은 준희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손톱을 만지며 얘기한다.


준석 : 모델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온 거지. 무슨 모델이고. 모델은.

준희 : 그래도 거기 나오면 모델이죠 행님. 행님 패션쇼도 했어요?

준석 : 아니, 아무나 못한다. 패션쇼.

준희 : 옷 잘 입어야 돼요?


순간 자신의 옷을 훑어보는 준석.


준석 : 모르지. 나는.. 아마 좀 잘 입어야 될껄?

준희 : 그래도 행님은 꿈이 있네요. 멋진데요.

준석 : 뭐가 멋지노. 꿈은 다 있는 긴데.

준희 : 저는 없는데요.

준석 : 하고 싶은 거 없나?

준희 :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저는.

준석 : 우째 그랄 수 있노?

준희 : 그냥 사는 거죠. 되는 대로.

준석 : 그렇지. 되는 대로. 그게 좋은 거지.

준희 : 그냥 이래 살다가 좋은데 들어가서 돈 벌면 좋은 거고 돈 벌다가 하기 싫으면 농사지어도 되고요.

준석 : (짧은 한숨을 쉬며) 니는 참 마음이 편하네.

준희 : 뭘 하던지 간에 마음이 편안해야죠. 저는 항상 편안한데요. 다음 주 시험인데도 편안하고요.

준석 : 어. 그래. 편해 보인다. 부럽네. 

준희 : 빨리 드가지요. 안에서 편안하게 있고 싶은데요.

준석 : 그래. 드가자.


일어서는 둘. 벤치에 놓인 빈 그릇 뒤로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이 보인다. 


60.  편입 학원, 빈 강의실, 저녁.


준석은 친구 수천, 경목과 빈 강의실에 앉아서 영어 단어 스터디 중이다. 서로서로 채점해 주는데 수천이는 준석의 종이에 선을 죽죽 긋다가 얘기한다. 


수천 : 이거.. 못 매기겠는데? 너무 많이 틀릿는데?

준석 : (민망해하며) 진짜 하루 120개씩은 너무 빡쎄다. 많이 틀릿나?

수천 : 맞는 게 별로 없다. 준슥아. 니 우짤래?


준석은 자신이 매긴 수천이 종이를 본다. 


준석 : 니는 틀린 게 별로 없네. 전공시험 준비한다고 얼마 못 봤다. 끝나면 진짜 단디하께. 미안타.

경목 : 계속 바짝 하면 되지. 이번에 기계과 인원 꽤 뽑던데?

준석 : 오? 그래? 확인해 봐야겠네. 경영은 얼마나 뽑대?

경목 : 경영은 진짜 너무 안 뽑는다. 이번에도 100대 1 넘는다. 공대랑 비교 불가다. 쉬바.

준석 : 하.. 한양대는 수학도 보니까 수학 공부도 해야 되고.. 할 게 너무 많네..


상체를 뒤로 쭉 뻗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준석. 


61. 준석의 방, 컴퓨터 앞, 오후.


준석은 컴퓨터 앞에 앉아 편입시험 결과를 조심히 확인해 본다. 표정이 좋지 않다. 


준석 : 와.. 8군데를 다 떨어짓단 말이가.. 뭐고 대체.. 씨바 진짜..


마지막 학교를 확인하는 준석. 


준석 : 예비 8번이라.. 여기는 좀.. 우째야 되노..


62.  편입 학원, 빈 강의실, 오후


영어책을 정리하는 경목과 옆에서 같이 정리하고 있는 수천. 준석이 강의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며


준석 : 한번 더 안 할끼가?

경목 : 이미 2년 했다. 한번 더해서 붙을 자신이 없네. 일단 복학해서 틈틈이 영어공부 같이 해보고 시험만 쳐보든가 할란다 나는.

준석 : 수천이 니는?

수천 : 나는 아빠가 나가라네.


놀라는 준석과 경목. 


수천 : 영국 가서 영어공부 하란다. 니가 하는 게 다 그렇지 하면서. 무슨 명문대 편입이냐고.

준석 : 놀래라 임마. 같이 짐 싸서 서울 가서 한번 더 해보자. 남자아이가.

수천 : 니가 우리 아빠 보면 그래 말 못 할 끼다. 가라면 가야 된다. 나도 경목이처럼 시험일 다가오면 좀 공부해가 시험만 쳐보든가 해야지. 맨하튼으로 간다 나는. 니는 한 번 더 할끼가?

준석 : 존나 열받아서 안 되겠다. 짐 싸서 올라간다 나는. 진짜 제대로 조지 봐야지.

 

기운 빠져 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준석은 열정이 식지 않은 모습이다.


63. 서울 정릉동, 이바네 집, 오후. (26세)


이바네 거실 안. 준석은 큰 백팩을 내려놓고 방을 둘러본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이바. 


준석 : 이야~ 그래도 잘 꾸미 놓고 사네.

이바 : 니가 방을 잘 구해줏다이가. 집 좋다. 침대에서 둘이 자도 충분하다.

준석 : 아이다. 내는 바닥에서 자께. 바닥이 편하다.

이바 : 그래. 니 편한 대로 해라. 짐은 작은방에 풀고.


가방을 들고 작은방으로 가는 준석. 


64. 서울 정릉동, 독서실, 오후.


준석은 영어책을 베고 엎드려서 자고 있다. 얼굴을 찌푸린 채 일어나며


준석 : 아.. 잠이 와이래 오노.. 죽겠네..


손가락으로 눈을 비비다 정면 포스트잇에 적힌 시험일을 보는 준석.


준석 : 보자.. 인자 딱 4개월 남았네.


다시 엎드리는 준석. 


65. 서울 정릉동, 이바네 집, 새벽. 


준석은 침대 아래 바닥에서 자고 있고 이바는 침대에서 자고 있다. 둘의 곤히 잠자는 모습. 이바가 몸을 뒤척이다 준석 방향으로 엉덩이를 대고 빵구를 낀다. 빵! 소리가 엄청 크다. 그때, 잠에서 깨는 준석. 


준석 : 아 시바 깜짝이야.. 아.. 개새미가 빵구를 와이래 세게 끼노..

 

미동 없이 자는 이바. 준석 다시 잠이 든다. 


CUT TO.


준석은 작은 연두색 상을 사이에 두고 이바와 같이 라면을 먹으며 프리미어리그 재방송을 보고 있다. 준석은 티비를 보다 갑자기 생각난 듯 이바를 보며


준석 : 마! 니 빵구 좀 살살 끼라.

이바 : 기억 안 나는데?

준석 : 와, 무의식중에도 그래 힘을 주고 끼나? 대단한 놈이네.


웃는 이바, 냄비에서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뜨며


이바 : 남는 거 니 다무라. 내는 저녁에 은지 만나면 맛있는 거 또 무야 된다.

준석 : 10년 만에 연애한다고 정신없네. 잘 나가네 이바.


준석은 냄비를 들어 남은 면발과 국물을 자신의 그릇에 따른다. 


66. 서울 정릉동, 독서실, 저녁


독서실 사무실에서 사장님과 얘기하고 있는 준석. 


준석 : 자리를 좀 더 안쪽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독서실 사장님 : 그럼요. 왜요?

준석 : 좀 더 조용하게 공부하고 싶어서요. 학생들 왔다 갔다 하는 소리도 좀 크게 들리는 거 같고 해서..


준석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좀 예민해 보인다. 


CUT TO.


책을 잔뜩 들고 자리를 옮긴 후 자리를 정리하는 준석. 준석의 뒤편 안쪽에는 학생 한 명이 앉아 공부를 하고 있다. 볼펜을 딸깍딸깍 거리는 학생. 준석은 학생 쪽을 살짝 쳐다보고 공부를 시작한다. 

 

CUT TO.


사무실로 나와 사장님께 다시 말씀드리는 준석. 


준석 : 학생들 시험은 혹시 언제쯤 끝납니까?

독서실 사장님 : 아마 다음 주면 다 끝날 거예요.


사장님은 준석의 예민해 보이는 얼굴을 잠깐 쳐다보곤 얘기한다. 


독서실 사장님 : 요새 공부한다고 정신없죠?

준석 : 예. 좀 그렇네요. 시험도 얼마 안 남았고요. 뭔가 정신이 붕 떠진 느낌도 들고. 열심히 해야지요.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석을 보다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독서실 사장님 : 여기 잠깐 앉아 볼래요?

준석 : 네? 아 네..


자리에 앉은 준석을 쳐다보는 사장님 얼굴이 인자하다. 얘기를 시작하는 사장님. 


독서실 사장님 : 내가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있었거든요.

준석 : 네? 네.

독서실 사장님 : 근데 그 친구가 정말 말이 없었어요. 준석 학생 보니까 그 친구가 생각나서 얘기해 주는 거예요.

준석 : 아.. 네..

독서실 사장님 :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 먹고 혼자서 운동장을 걷는데 항상 똑같아요. 학교 마치면 학교 뒷산에 혼자 가고 산속 돌 위에 혼자 누워있다가 내려오고. 절에 가서 스님하고 한참을 얘기하다가 내려오고. 우리 친구들끼리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 친구는 저렇게 계속 가다가는 진짜 스님이 되거나 자살을 할거 같다.


사장님 얘기를 경청하고 있는 준석의 얼굴. 


독서실 사장님 : 근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동안 그 친구를 못 봤는데 한 20년 지났나?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난 거예요. 얼굴 보니까 딱 그 친구더라구요. 근데 내가 진짜 놀란 것이 그 친구가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있더라고요. 결혼해서 애기 낳고 직장 생활하고.

준석 : 그렇군요..

독서실 사장님 : 내가 그 친구한테 뭐라고 했냐면, 학창 시절 때 우리끼리는 정말 네 걱정 많이 했었다.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어요 내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얘기를 이어가는 사장님.


독서실 사장님 :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산에 올라가서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새들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구름이 되고 싶고 새가 되고 싶고.. 근데 친구가 하는 얘기가 뭐냐면.. 자기는 사람이라 이거예요. 이렇게 저렇게 되고 싶은 것이 많지만.. 나는 지금 사람의 몸으로 살고 있으니까 사람답게 살아야겠구나.. 그 생각이 들면서부터 마음 다잡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독서실 사장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준석. 


준석 : 사람답게.. 맞네요.. 내 정신을 다잡고 사람답게.

 

사장님은 미소인 듯 아닌 듯 평소 표정인 듯한 얼굴로 준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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