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산으로
45. 청담동. 원룸. 오후.
큰 창과 부엌이 딸려 있는 원룸. 부동산 사장님 안내에 따라 집안을 둘러보는 준석. 그런 준석의 반응을 살피며 원룸에 대해 설명하는 사장님.
부동산 사장님 : 여기가 남자 직장인 혼자 살던 집인데 괜찮아요. 해도 잘 들어오고 깔끔하고. 괜찮죠?
준석 : 여기가 천에 사십이예요?
부동산 사장님 : 네, 천에 사십. 천에 사십에 이 정도면 진짜 좋은 거예요. 여기 이 책상하고 침대랑 해서 필요하면 팔고 간다고 하던데 잘 봐바요.
준석 : 그래요? 네네
책상과 침대가 마음에 드는 듯 자세히 살펴보는 준석.
46. 청담동, 원룸, 준석의 방, 낮.
이사한 원룸 침대에 누워있는 준석은 친구 이바와 통화 중이다.
준석 : 내? 내는 청담동에 있다. 청담동 알제? 왜 있기는. 여기가 그 모델 아카데미랑 가깝고 해서 차비 아낄라고 여기에 구했지.
준석 : 온다고? 아예 올라온다고?
서울로 올라온다는 친구 얘기를 진지하게 듣는 준석은 결심한 듯 말을 이어나간다.
준석 : 그라면 니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있고 여기서 열심히 해볼라 하면 짐 싸서 올라 온나. 같이 살자. 어. 어. 나는 일단 모델 아카데미 다니다가 수료하고 나면 모델도 하고 연기도 계속 도전해야지.
통화를 끊는 준석.
준석 : 차근차근 잘되고 있다. 모델 아카데미는 계속 열심히 다니면 되고.. 연기는 배워서 해야 되는 건가? 다 잘 될 일만 있을 끼다.
47. 청담동, 거리, 저녁.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며 걷고 있는 준석.
준석 : 어 엄마. 내렸어요? 그라면 거기서 신호등만 건너고 가만히 있어요. 금방 도착해요.
CUT TO.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와 만난 준석. 엄마의 가방을 들어준다.
준석 : 장을 봐온 거라? 참말로다가. 이 무거운 거를 들고 왔네. 그냥 오시지.
48. 청담동, 준석의 방, 저녁.
삼겹살을 굽고 있는 준석. 엄마는 옆에서 반찬을 꺼내며 설명한다. 한상 거하게 차려지고, 밥을 먹는 모자.
엄마 : 엄마가 반찬 좀 더 만들어 주고 갈게. 쓸 돈은 있나?
준석 : 쓸 돈 있다. 이 정도면 반찬 충분하다.
준석은 삼겹살을 한 쌈 싸서 맛있게 먹는다.
49. 청담동, 준석의 방, 아침.
햇살이 준석의 방을 비춘다.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준석. 엄마는 준석의 서랍을 열어보며 이것저것 확인한다. 종이 하나를 꺼내 유심히 보는 엄마. 그 소리에 잠에서 서서히 깨는 준석.
준석 : 아~ 잘 잤네. 잘 잤어. 일어났어요?
엄마 : 준석아, 이게 뭐고?
엄마는 준석의 방 계약서를 들고 있다.
준석 : 뭐기는. 방 계약서지.
엄마 : 아니, 여기에 왜 보증금이 천만 원으로 돼있어? 삼백이라 안 했나?
아차 싶은 준석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말을 이어나간다.
준석 : 아~ 이거. 내가 돈이 많이 없다이가. 그래서 아저씨랑 얘기 잘해가지고 계약서에만 이렇게 적혀있고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실제로는 보증금 삼백이다.
엄마 : 아이가이? 그런 게 어딨어? 그라면 안 되지.
준석 : 그런 게 어딨기는. 내가 잘 얘기했다. 괜찮다.
엄마 : 참나.. 야가 큰일 날라고. 계약서는 그렇게 잘못 적고 하면 안 돼. 엄마랑 언능 부동산 가보자.
준석 : 아이 참말로. 괜찮다니까는.
엄마 : 안된다니까는! 얼릉 옷 입어봐 내려가보게.
준석은 잠시 멍 때리다가 엄마를 부른다.
준석 : ..엄마, 잠깐 앉아봐 봐.
CUT TO.
앉아서 준석의 얘기를 듣는 엄마.
엄마 : 그럼 이 계약서가 맞는 거야? 천만 원을 모은 거야?
준석 : 어 맞다.
엄마 : 야는 참. 그걸 왜 엄마한테 거짓말을 해?
준석 : 그냥 뭐 서울 올라와서 일만 했다고 얘기하기도 그렇고 엄마가 걱정할 수도 있고 하니까. 씻고 오께.
CUT TO.
화장실에서 세안을 하고 나오는 준석. 엄마가 준석을 부른다.
엄마 : 준석아.
준석 : 와.
엄마 : 이리 앉아봐바.
준석 : (앞에 앉으며) 와. 앉았다.
엄마 : ..엄마가 생각을 해봤는데
준석 : 무슨 생각.
엄마 : 준석이가 지금 이 집에서 천에 사십에 살고 있잖아.
준석 : 어 근데.
엄마 : 엄마가 지금 대출금을 받았던 게 있는데 캐피탈에서. 한 달에 이자가 좀 많이 나오거든.
준석 : 이자가 얼만데?
엄마 : 35만 원 좀 넘게 나가는데. 지금 준석이가 여기서 학교를 다니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
엄마 : 준석이가 그 대출금을 갚아 주면 이자를 엄마가 준석이 용돈으로 줄 수가 있잖아.
준석의 얼굴 표정이 좋지 않다. 작게 한숨을 쉬는 준석. 엄마를 쳐다보고, 방을 한번 둘러본다.
준석 : 이바가 내 있다고 해서 같이 살라고 올라와서 같이 살고 있는데, 지금 방을 뺄 수가 있겠나 내가.
엄마 : 이바한테 얘기를 잘하고. 그렇게 해서 하면 안 될까 하는데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떼는 준석.
준석 : 대출금이 얼만데?
50. 고속 터미널, 부산 방향 버스, 오후.
부산행 버스 승차장 앞. 준석과 엄마는 곧 올 버스를 기다리며 얘기 중이다.
준석 : 잘 내려 가시고예. 대출금은 나도 일단 상황을 좀 보께요. 이바도 있으니까.
엄마 :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반찬 엄마가 택배로 보내줄 테니까. 그리고 뚱땡이 삼촌이 몸이 좀 안 좋으시다네.
준석 : 큰삼촌?
엄마 : 어. 원래 당뇨가 좀 있었는데 요새 좀 더 심해졌다든가. 그래도 올라왔으니까 인사는 드리러 가봐야지.
준석 : 삼촌이 의정부 어디 사시지? 그라면 내가 당뇨에 좋은 거 좀 사가지고 한번 가보께.
엄마 : 어. 이거는 엄마가 삼촌한테 빌린 건데 만나면 드리고 온나.
준석은 어머니께 흰 봉투를 건네받는다. 10만 원이 든 봉투다.
준석 : 어. 알겠어요. 인자 버스 출발하네. 도착하면 전화하세요. 예.
서둘러 버스를 타는 엄마. 버스가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준석.
51. 의정부, 큰삼촌 집, 저녁.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는 실내. 큰 개장도 몇 개 있다. 소파에 앉아 큰삼촌과 마주 보고 있는 준석. 삼촌만 밥을 먹고 있다.
큰삼촌 : 그러니까 뭐 한다고?
준석 : 예. 제가 지금 모델 아카데미 다니고 있는데 끝나면 패션쇼도 하게 되고 또 제가 부산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배우를 하고 살면 진짜 제가 열정을 가지고
말을 끊는 삼촌.
큰삼촌 : 그거 해서 얼마 버는데?
준석 : 예?
큰삼촌 : 그니까 니가 말한 모델 그거. 그거 해서 얼마 버냐고?
삼촌 기에 눌린 준석은 바로바로 대답하려 노력한다.
준석 : 그 좀.. 큰 패션쇼하고 하면 40만 원도 받고 또 촬영 같은 거 하고 하면 더 받을 수도 있고요.
밥 한 숟갈 먹고 인상이 안 좋아지는 삼촌.
큰삼촌 : 이 새끼 이거는 고등학교 대학교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하다가 갑자기 올라와가지고 뭐 한다고? 공부를 해야지 새끼야.
준석은 지지 않고 바로 대답한다.
준석 : 아뇨, 삼촌. 공부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큰삼촌 : 들어봐 새끼야. 만약 니가 운동을 한다. 복싱 선수를 한다고 해봐. 복싱 선수는 앞에 있는 놈 때려눕히면 돼. 복싱을 잘하면 된다고. 근데 니가 할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니야. 집에 돈이 있고 빽이 있어야 돼. 너희 집에 돈이 있냐?
준석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한다.
준석 : ..아뇨.
큰삼촌 : 빽이 있냐?
준석 : 없습니다.
큰삼촌 : 안된다니까?
준석 : ..
큰삼촌 :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놈이 지금 와가지고 한다는 얘기가 이 새끼는.
남은 밥을 비운 삼촌. 말을 이어간다.
큰삼촌 :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조카 하나 키워 주는 거는 일도 아니야. 너희 사촌 형도 가수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피디들이랑 뭐 어디 감독들이랑 다 만나게 해 주고 앨범도 내게 해줬어, 내가. 근데 지금은 나도 나이 들고, 옛날같이 그렇게 안돼.
준석 : 아, 형님이 가수도 했었습니까?
큰삼촌 : 그래 임마. 지금 중국집 주방장 기술 배워서 내가 가게 차려주고 돈을 얼마나 버는 줄 아냐?
준석 : 아.. 예..
큰삼촌 : 남자는 뱃머리를 돌려야 할 때 뱃머리를 돌리는 게 남자야. 다 때가 있는 거라고. 내가 생각할 때 너는 지금 공부를 할 때라고.
준석 : 공부는 제가..
준석의 말대꾸에 큰소리치는 삼촌
큰삼촌 : 닥치고 들으라고 새끼야. 뱃머리를 돌려야 할 때 잘 돌리고. 공부하고 다시 오던지 아니면 거기서 취업을 하던지 해. 모델 같은 소리는 씨발.. 너는 임마 내 새끼였으면 밥도 안 줬어 새끼야. 알아?
준석 : (주눅 들며) 예.. 알겠습니다.
큰삼촌 : 가봐.
일어나는 큰삼촌. 준석은 삼촌을 따라 일어나며 엄마에게 받은 흰 봉투를 드린다.
준석 : 삼촌 이거 엄마가 삼촌께 빌렸다고 드리라고 하셔가지고
큰삼촌 : 됐어 임마. 갖고 꺼져. 가.
삼촌은 준석이 준 봉투를 받지도 않고 돌아서서 가버린다. 잠시 후, 문으로 걸어가는 준석. 외숙모는 준석에게 다가와 말한다.
외숙모 : 삼촌이 원래 말투가 저래. 준석아. 이해해라. 알았지?
준석 : 예.. 외숙모. 괜찮습니다. 이거 그래도 드려야 되는데.
외숙모 : 아니야. 괜찮아. 그건 준석이 니가 쓰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어두운데 조심히 걸어 내려가고.
준석 :네 외숙모. 감사합니다. 가볼께요. (깍듯이 인사하며) 안녕히 계세요.
외숙모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준석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물을 닦아 보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52. 정릉동, 반지층 투룸, 오후
조금 어두운 실내. 투룸이라 꽤나 넓어 보인다.
집을 보고 있는 준석은 이곳저곳 꼼꼼하게 체크하며 부동산 사장님께 질문한다.
준석 : 물은 잘 나옵니까? 잘 나오네요.
사장님 : 방 좋아요. 삼백에 이십에 이런 방을 어떻게 구해요. 못 구하지.
준석 : 그렇죠. 삼백에 이십이면은 진짜 좋긴 좋네요. 방도 두 칸이고. 해는.. 조금 들긴 들겠네. 네 사장님. 잘 봤습니다.
준석은 집을 나오며 이바에게 전화를 건다.
준석 : 어. 이바야. 내가 지금 본 방이 제일 괜찮은 거 같거든? 삼백에 이십인데 월세도 싸고. 어. 그래. 내가 삼백을 빌려줄 테니까 니가 나눠서 갚으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준석.
53. 청담사거리. 하나은행 앞. 낮.
이삿짐이 잔뜩 실려있는 포터의 뒷모습.
아빠는 운전석에 엄마는 뒷좌석에 앉아 있다.
조수석에 앉은 준석은 살짝 뒤를 돌아보며 엄마에게 얘기한다.
준석 : 들어갔다 옵시다.
엄마 : 참.. 준석 님. 고맙습니다.
준석 : 뭘 고마워요. 아부지 잠시만요. 엄마랑 금방 갔다 올께요.
아빠 : 어. 조심히 갔다 와라.
엄마와 준석은 차에서 내려 은행으로 들어간다. 대출금 상환 후 은행에서 나오는 준석과 엄마.
준석 : 이바한테는 내가 방 구해줬고 삼백 빌려준 거는 매달 50만 원씩 이바가 월급 타면 갚아주기로 했어요.
엄마 : 에이 참. 친구한테 그렇게 큰돈을 빌려주고 하면
엄마의 말을 자르고 준석이 얘기한다.
준석 : 그라면 우짭니까? 이바가 서울 와서 일 구하기 전에 살 데가 없는데. 내 때매 올라왔는데 내 내리 간다고 같이 내리 가까요? 내가 알아서 하께요.
엄마 : 준석이가 잘 알아서 하겠지. 그래. 언능 타자.
포터에 올라타는 준석과 엄마. 아버지는 포터 뒤쪽에서 빵빵대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 : 지미.. 서울에서는 차 못 몰겄구마이. 아 가요!! 가!!! 거 더럽게 빵빵대네. 지기미 씨벌.
아빠는 차를 출발 시키고, 준석 말없이 창밖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