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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Jul 30. 2023

춘자의 꿈 (2)

꼭 가고 싶습니다!

3. 부산지방병무청, 신체검사장, 오후. (과거 21세)


같은 또래의 20대 초중반 청년들로 북적이는 신체검사장.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준석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내과 담당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준석.


준석 : 저기 근데 수술 이력 이런 거 있으면 얘기해야 되는 건가요?

담당자 : 네?


4. 부산지방병무청, 작은 강당, 오후.


강당 안. 단상에는 무궁화 배지를 달고 있는 관계자가 서류철을 보며 특이사항이 있는 지원자들을 체크하고 있다. 서류를 넘겨보던 관계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준석을 부른다.


관계자 : 김준석 씨?

준석 : 네?

관계자 : 준석 씨는 신체검사 4급인데 여기 왜 왔습니까?


순간 정적. 당황한 준석은 멀뚱멀뚱 눈만 빠끔거린다. 그런 준석에게 지원자 전원은 시선이 꽂힌다. 주변의 시선을 느낀 준석은 빠른 답변을 내놓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5. 부산 영도 동삼동, 호프집, 저녁. (과거)


까까머리에 새까만 얼굴, 자신감으로 반짝거리는 눈, 각 잡힌 군복을 입은 윤석(마빡). 허세 가득한 군대 이야기로 친구들을 집중시킨다.


마빡 : 마, 행님이 하나만 얘기해주께. 군대에서 무거운 거 들고 있제? 그 졸라 무거운 걸 들고 있을 때! 놓고 싶어도 놓을 수가 없는~ 크.. 그 어? 팔뚝 부들부들 임마! 이게 군대다! 느그가 뭘 알겠나 조빱들아.

일구 : (피식 웃으며) 아 지랄하네. 무거운 거 들고 있다가 놓고 싶으면 놓으면 되지. 와들고 있노?

마빡 : 니가 군대 가봐라. 놓으면 우째 되는가.


반면 준석은 그런 마빡이 멋있어 보인다.

걷어 올린 소매며 새까맣게 탄 얼굴, 근육질 팔뚝..

준석은 생각한다.


준석 na) : 그래, 남자는 군대다..


6. 부산지방병무청, 작은 강당, 오후. (#3과 연결)

 

머뭇거리다 대답하는 준석.


준석 : 아.. 저.. 그냥 왔는데요?


지원자 전원은 어이없다는 듯 준석을 쳐다본다.


7. 부경대, 대연동, 전 집, 밤.

 

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작은 전집 안. 준석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엔 부추전과 막걸리 두 통이 놓여있다. 허세가 기분 좋게 장착된 준석은 신나게 얘기 중이다. 그런 준석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며 뭔가를 떠올리는 경자와 맞장구를 치며 준석을 띄워주는 수동.


수동 : 준석 선배~ 군대 잘 갔다 오세요~ 마 싸라 있네!

경자 : (찝찝한 얼굴로) 근데 슨배님! 4급은 현역 안될 껀데요?

준석 : 붙어서 내일모레 훈련소 간다니까 야는 무슨 소리 하노? 술 취했나?

경자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술 안 취했거든요! 내 친구 오빠도 4급인데 현역으로 훈련소 갔다가 다시 돌아오던데요?

준석 : 다 갈 수 있다~ 그 오빠가 무슨 문제가 있었겠지~ 갱자야!! 정신 차리자 갱자야!!

경자 : 내랑 술 붙어 볼래요??!! 아니 진짜 못 간다 카던데.

준석 : 갈 수 있습니다. 내일모레 진해 훈련소로 가니까 수동아. 어깨 좀 주물리 봐라.


수동은 준석의 어깨를 주무른다. 준석의 표정은 이미 말년 병장의 얼굴이다.


준석 : 갱자하고 오수동이. 내 휴가 나왔을 때 연락 안 받으면 k2? 그거 들고 나온다이.  


경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삐쭉 내민다.


8. 부산 영도 동삼동, 호프집, 밤.

 

테이블에 빈 맥주잔을 시원하게 내려놓는 준석.


동글이 : (어이가 없다는 듯) 와 임마 진짜 도라이네. 야 4급 받았으면 편하게 공익 가면 되지. 뭐 하러 현역을 가노.

준석 : 공익 간다고 놀릴 땐 언제고 또 간다고 하니까 이라노. 양아치가? 남자아이가?

동글이 : 그거는 애들하고 있을 때 그냥 하는 얘기지 도라이야.

준석 : 몰라. 나는 좋다. 행님 한잔 따라주바라.


동글이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준석에게 맥주를 따라준다.


9. 진해 기초군사훈련소, 운동장, 낮.


입소 바로 전. 까까머리 청년들로 가득한 훈련소 입구. 설렘으로 가득 찬 준석은 짧은 머리가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은 듯 자꾸 매만진다. 종걸이와 동글이는 곧 자신들의 모습 같아 준석보다 더 긴장되어 보인다.


종걸이 : 준슥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공익 가자.

준석 : 니가 가라. 공익.

종걸이 : 난 신검 1급이라 현역 가야 된다.

준석 : 잘됐네. 임마.

동글이 : 고마 됐다. 드가서 전화할 수 있을 때 전화해라이. 처맞고 다니지 말고.

준석 : 어. 행님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스타일 아이다 아이가. 니는 10키로 빼고.

동글이 : 닥치라.

준석 : 뭘 어디 대단한 데 간다고 이래 다 따라와서 쌩난리고. 저기는 무슨 이산가족이가?

 

옆에서 아들을 보내며 우는 가족들. 남자친구를 보내며 오열하는 여친들.


준석 : 간다이. 고맙다. 조심히 가라이.


준석은 친구들에게 쿨하게 손 흔들며 훈련소 문을 통과한다.


10. (이틀 뒤) 진해 기초군사훈련소 내 신체검사장, 오후.

 

긴 테이블에 군의관 두 명이 나란히 앉아서 훈련병들에게 신검표를 나눠주고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훈련병들. 준석의 차례. 준석의 이름을 확인하고 신검표를 건네는 군의관. 신검표를 건네받은 준석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군의관에게 묻는다.  


준석 : 7급요?

군의관 : 네.

준석 : 아니. 이거 제가 왜 7급이지요?

 

군의관은 준석이 내민 종이를 본다.


군의관 : 보니까 여기 배에 수술.. 수술받으셨었네요. 수술 자국 때문에 7급 나왔습니다.

준석 : 7급이면 어떻게 되는..?

군의관 : 내일모레까지 훈련받으시고 5일째 되는 날 복귀하게 되는 분들 따로 모아서 말씀해 주실 겁니다.

준석 : (간절하게) 제가 배에 수술 자국 때문에 부산에서 4급 받았었는데요.. 이게 초등학교 때 수술한 거라 지금은 그냥 제 배거든요.

군의관 : (무표정한 얼굴로) 그때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보세요.

준석 : 네.. 알겠습니다.

 

벙찐 표정으로 신체검사장을 나오는 준석.


준석 : 7급이란 급수도 있나? 돌겠네 진짜..

 

11. (3일 뒤) 진해 기초군사훈련소, 입구, 낮.

 

햇살이 쨍쨍한 훈련소 입구. 답답한 표정의 준석이 걸어 나온다. 무궁화 배지를 단 높은 분의 말씀이 준석의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무궁화 v.o) : 수술 한지가 오래됐다고 해도 저희가 해군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배를 타게 됩니다. 육지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해상에서 본인의 수술 자국에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경우에는 의료 시스템이 안될 수가 있기 때문에..

 

답답한 준석은 멈춰 서서 훈련소 입구를 한번 뒤돌아 보고 다시 걸으며

 

준석 : 아.. 조땟네..


준석의 축 처진 뒷모습에서 답답함과 실망감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12. 준석의 집, 작은방, 밤.

 

거실과 부엌을 오가며 한 상 가득 밥을 차리고 있는 준석의 엄마. 준석은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거실에 있는 엄마 휴대폰을 슬며시 들어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간다.

 

cut to.

 

준석은 책상 의자에 앉아 후배와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준석(v.o) : '갱자. 잘 있나? 여기 교관님이 폰을 빌려주셔서..' '마 똥글이. 자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동글이에게 또 문자를 보낸다.


준석(v.o) : '마. 군대 별거 없다. 쫄지 마라. 나는 아마 100일 휴가 때나 나가지 싶다.'


당연한 얘기를 무척 고민하다가 보내는 준석.


13. 부산 영도 동삼동, 준석의 집 앞, 낮.


준석의 방 창문 앞에 서서 빼꼼히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동글이와 종걸. 방안에 있는 준석을 확인하고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준석을 부르는 동글이.


동글이 : 준도란스. 마 나온나. 나온나 임마. 집에 있는 거 아는데 뭘 주춤거리고 있노.

 

아무 반응 없던 방 창문에 준석의 그림자가 가득 채워지며 천천히 열리는 창문. 밋밋한 표정의 준석. 혀를 찬다.


준석 : 우째 알았노? 임마 이거 귀신이네.

동글이 : 뭐가 귀신이야. 느그 엄마 번호가 내한테 저장이 돼있는데. 느그 엄마가 군대에 계시나? 머리는 폼이가?

준석 : 우리 엄마 번호가 와 니한테 저장이 돼있노? 임마 우낀 놈이네.

종걸이 : 준슥아.

준석 : 와?

종걸이 : 나도 저장돼 있다. 스타나 하러 가자. 나온나 빨리. 다리 아프다.

준석 : 그래. 오랜만에 감각이나 좀 살리러 가자. 행님이 리드하께.

 

신난 얼굴로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준석.


14. 준석의 집, 작은방, 오후.


떨떠름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로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는 준석.


준석 : 동삼 우체국하고 영도구청이라.. 집하고도 너무 가까운데? 우체국 가서 뭐 할끼고?

 

준석은 자신의 양 팔뚝에 힘을 주며 얘기한다.

 

준석 : 아.. 진짜 남자는 군댄데.. 군대 아니면 고생을 좀 해봐야 되는데.. 우체국.. 이거 월급은 얼마고?


cut to.

 

엄마, 누나는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준석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티비 화면을 째려보고 있다가 결심한 듯 엄마를 바라본다.


준석 : 내가 말했던 그거 물어 봐줄 수 있나?

엄마 : 진짜 물어봐 줘? 아마 아들 직급이 부장이라고 하는 거 같던데.

누나 : 그냥 우체국 가지. 집 가깝고 편한데 뭐 하러 힘들게 공장을 가는데.

준석 : (확고하게) 지금 고생을 해야지. 우체국 가면 한 달에 14만 원인가? 그거 준다는데 안된다. 방위산업체가 돈도 꽤 준다고 하니까 그게 훨씬 낫다.

엄마 : 엄마는 준석이가 하자는 대로 하니까. 내일 엄마가 전화 해보께.

준석 : 될라나?

엄마 : 다 잘 될 일만 있어 준석이는. 아이고 7시가 다 돼가네. 저녁 차려야지.

 

일어서서 방을 나가는 엄마 뒤로 보이는 준석. 자신의 결정이 썩 마음에 들어 보인다.

 

15. 부산 영도 대평동, 골목, 오후.


기름 냄새로 가득한 대평동 곡목을 걷고 있는 준석. 작은 공장들이 줄지어진 간판에 엔진 수리, 보링, 공업사, CNC 선반 등이 적혀있다. 준석은 선진종합이라고 적힌 공장 입구에 서서 전화를 건다.


준석 : 네, 여기 공장 앞에 왔습니다.


cut to.


선진종합 사무실 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황부장과 마주 앉아 있는 준석.


황부장 : 이름이 뭐라고?

준석 : 김준석입니다.

황부장 : 그래. 4급이면 편하게 공익을 가지. 여 뭐 하러 왔노?

준석 : 돈도 모으고 고생도 좀 하고 공익은 좀 못 가겠던데요.

황부장 : 여는 나름대로 고생 많이 할낀데.

준석 : (살짝 당황) 아,, 많이 합니까?

황부장 : 면허는 있나?

준석 : 따야 됩니다.

황부장 : 언제 딸끼고?

준석 : (얼버무리며) 조금.. 있다가요?

황부장 : 그라면 기술부로 오는 걸로 하고 다음 주부터 7시 반까지 여기 위에가 탈의실이니까. 어.. 7시 반까지 출근해라.


cut to.


같은 작업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직원들로 어수선한 사무실의 아침. 황부장이 새로 온 준석을 소개하기 위해 집중시킨다.


황부장 : 자 다들 앉아봐라. 오늘 새로 들어온 특례다. 준석이 일어나서 인사해라.

준석 : (긴장하며) 안녕하세요. 김준석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부장 : 인자 우리도 특례가 벌써 세명이다. 나름대로 밑에 직원들도 이제 채워지고 하니까 위에 팀장급 및 과장들은 나름대로 더 신경 써서 챙겨줄 수 있도록 하고, 내일부터 월명(月明)이니까, 금성 7호에는 누가 들어가노?

병철 : 저하고 명주임님하고 들어갑니다.

황부장 : 그래. 엔진 다 뜯어야 되제? 준석이 데리고 가라. 나름대로 이번 월명에 일이 많고 하니까 바쁘더라도 안 다치도록 나름대로 주의하고 다들.


준석은 멀뚱한 표정으로 황부장을 쳐다본다.


준석(na) : 나름대로를 몇 번을 말하는 기고.

 

cut to.


특례 세 명을 빼곤 직원 모두가 출장을 나가서 조용한 공장 안. 아직 새 작업복을 받지 못하고 공장에 남는 근무복을 입은 준석. 바지 기장이 짧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공장 안을 이리저리 걷고 있다.


병철 : 점마 뭐고? 존나 웃기네.

재홍 : 인자 니 후임이네. 잘 챙기주라.

병철 : 준슥아. 니 이름 준슥이 맞제? 니 옷이 와일로? 하필 또 이래 짧은 거를 줏노 아한테. 이쪽으로 와바바.


준석은 병철에게 다가간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옷을 훑어보는 준석.


병철 : 행님이 공구부터 알리 주께.


고개를 끄덕이며 병철 뒤를 쫓아가는 준석. 준석 눈에 보이는 병철의 바지 기장도 짧다.

 

16. 부산 영도 대평동, 선망배, 낮.


기관실 계단 경사가 가팔라 허리를 반쯤 숙여 들어가는 준석. 공구가방을 내려놓고 작업 준비를 한다.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뒤따라오던 병철이 기분 좋게 내려오며


병철 : 준슥아! 아부지 뭐하시노!


cut to.


머리에 우에스(깨끗한 걸레)를 두르고 일을 하고 있는 명주임, 병철, 준석. 엔진 분해 작업은 명주임이 하고 병철은 준석에게 분해된 부품들을 하나씩 옮겨준다. 준석은 부품에서 흘러내리는 기름을 걸레로 닦아 계단 위로 하나씩 들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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