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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석 Jul 30. 2023

춘자의 꿈 (3)

졸업하고 제일 잘 드가면 한국전력이라고..?

17. 부산 영도 대평동, 공장 내, 낮.

 

병철과 준석은 공장 바닥에 박스를 깔고 앉아 밸브 래핑을 하고 있다.


병철 : 준슥이 니는 무슨 과고?

준석 : 전자괍니다.

병철 : 특례 끝나면 바로 복학하겠다이. 좋은데 취업해라. 이런 공장 말고 좋은 데로.

준석 : 취업.. 취업해야죠. 근데 뭐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병철 :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말이 뭔 말이고?

준석 : 취업을 바로 할지. 아니면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도전해 볼지. 잘 모르겠네요..

병철 : 그라면 계속 기름재이 하는 건 어떻노? (웃으며) 내가 공장장한테 니 월급 많이 챙기주라 하께.

준석 : (따라 웃으며) 행님은 특례 끝나면 뭐 할 껀데요?

병철 : 내? 내는.. 물어보지 마라. 오늘 하루 살기도 벅차다. 래핑 퍼뜩 해라.

준석 : 예. 행님.

 

둘은 조용히 밸브 래핑을 계속한다.


18. 준석의 집, 준석의 방, 오후. (22세)


턱을 괴고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며 혼잣말하는 준석.


준석 : 졸업하고 제일 잘 드가면 한국전력이라고.. 돈을 많이 주나? 우째 생긴 데고?


한국전력의 홈페이지가 뜬다.


준석 : 와 유니폼도 좀 누리끼리하네. 일하고 월급 받고 결혼해서 집 사고 차 사고..


준석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19. 부산 영도 동삼동, 호프집, 저녁.


호프집 문이 열리고 군복 입은 동글이, 그 뒤로 노동으로 지쳐 보이는 준석, 제대한 상남자 마빡이 차례로 들어온다. 맥주 3잔과 쏘야 한 개를 주문함과 동시에 푸념을 시작하는 동글이.


동글이 : 진짜 복귀 전전날인데 존~나 드가기 싫다.

마빡 : (약올리 듯) 드가지 마라. 헌병이 데리고 가준다.

준석 : 뭐가 드가기 싫노 임마. 나는 맨날 일 가는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동글이 : (무시하며) 뭔데 니는~ 군대 가봤나?

준석 : 안 받아 줏다이가. 구라 아이고 진짜 군대 보다 더 빡쎄다. 죽는다 임마. 땀으로 샤워한다.

 

준석을 놀리듯 웃는 동글과 마빡.

 

마빡 : 귀엽네.

준석 : (아랑곳 않고) 손톱을 닦아도 닦아도 기름이 안 진다. 고생 이빠이 하고 있다.

동글이 : 니 얼마 받노?

준석 : 내? 65만 원.

동글이 : 개새미가요. 존나 부자네.

준석 : 뭘 부자야 임마. 세금 떼고 59만 원.

동글이 : 집에 다 드리나?

준석 : 아니, 적금 넣고 있다. 우리 삼촌한테.

동글이 : 삼촌? 얼마씩?

준석 : 우리 막내 삼촌이 서울에서 새마을금고 다니시는데 엄마가 삼촌한테 넣어라 하대. 50만 원씩 바짝 넣고 있다.

마빡 : (오바하며)이야~ 지기네~!! 준슥이 차 사는 거 아이가? 마! 똥글아 앞으로 술은 무조건 임마한테 얻어 묵자.

준석 : 돈을 모아야 서울을 갈 꺼 아이가. 이 참새 좀맹구들아. 2년간 딱 모아가! 서울 가서!

마빡 : 가서 뭐 할 낀데.

준석 : 지금 고민 중이다.

동글이 : 대책이 없는 놈이다. 하루 이틀이가.

준석 : 우리 나이에 대책 있는 놈이 있나?

마빡 : 내는 있는데?

준석 뭔데?

마빡 : 토익.


자신감 넘치는 마빡의 얼굴. 동글이는 그 말을 이어받으며


동글이 : 난 2학년 마치면 어학연수 1년 갔다 올라고.

준석 : 와 시바 새끼들이요.. 다들 대책이 있네.

마빡 : 서울 가서 돈 다 까묵고 오는 거 아이가. 그냥 모아놔라.

준석 : 몰라 일단. 아직 꿈이 명확하게 안 나왔다. 지금 찾고 있다.

동글이 : 욕본다. 내일도 욕봐라.

준석 : 니는 내일모레부터 쭉 욕봐라.

동글이 : 아 씨바 복귀 조깟네 진짜.


20. 부산 영도 태종대, 집 가는 언덕, 저녁.


어둑해진 하늘.

언덕 중간중간에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준석과 엄마. 준석은 퇴근 후 꼬질한 상태이고 양손엔 장거리 봉투가 들려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준석은 문득 적금이 생각났는지 재빠르게 뒤를 돌아 엄마를 부른다.


준석 : 엄마.

엄마 : 왜?

준석 : 내 적금 잘 넣고 있제?

엄마 : 잘 넣고 있지. 삼촌한테 따박따박.

준석 : 아니 내가 돈을 뽑아서 엄마를 주니까.


엄마는 웃으며 얘기한다.


엄마 : 왜? 엄마가 쓸까 봐?

준석 :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지.


몇 걸음 걷다가 의심의 눈초리로 재차 확인한다.  


준석 : 진짜 잘 넣고 있제?

엄마 : (살짝 정색하며) 야는 참말로다가. 왜 엄마를 의심하냐 준석아? 통장을 보여주까.

준석 : 됐다. 아이다.


준석은 마음이 좀 놓이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장선다.


21. 준석의 집. 준석의 방. 저녁.

 

준석은 누나와 함께 대화 중이다. 준석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식후 커피를 좋아하는 누나는 옆구리에 손을 대고 기대서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준석에게 질문한다.


누나 :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준석 : 어.

누나 : 뭐 다 그렇지.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을 꺼 같은데?

준석 : 급하게 생각하는 거는 아닌데.. 계속 드는 생각이 그냥 공부하고 졸업해서 취업하는 거는 아닌 거 같은 거라.

누나 : 그래?

준석 : 어.

누나 : 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준석 : (어이없는 듯) 모른다니까.

누나 : 아 모른다 했제. (멋쩍게 웃으며) 쏘리. 누나가 어디서 들은 말인데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꿈이 뭔지 모르겠을 때 그래라 하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창 시절에 뭐 했을 때 제일 재밌었는지? 그걸 생각해 보라 하던데.

준석 : 어렸을 때 뭐 할 때가 제일 재밌었는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준석.


준석 : 나는 연산동 살 때는 지우개 따먹기 하고 여기 전학 와서는.. 따조 따먹기 하고 구슬치기하고 그런 게 제일 재밌었던 거 같은데.. 이걸로는 꿈이 안된다이가?

누나 : 안되지.

준석 : 친구들이랑 솔방울 던지기 싸움하고 놀고 야구 스티커 모으고.. 전부 다 노는 거고?

누나 : (커피 한 모금) 천천히 생각해 봐라. 그게 바로 정해지겠나.

준석 : 커피 다 뭇나.

누나 : 아니, 아껴 묵고 있다.

 

누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22. 준석의 집, 준석의 방 침대, 저녁.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긴 준석.


준석 제일 재밌었던 게..


(회상) 태종대 초등학교 6학년 2반. 쓰기와 말하기 수업 시간.


선생님 발표할 사람?


준석이 적은 글을 보고 재밌어하던 짝꿍 영락이는 준석의 손을 잡아당기며 강제로 발표를 시키려 한다. 부끄러움이 많은 준석은 안간힘을 쓰며 손을 뿌리치려 하자 영락이가 바로 외친다.


영락이 : 선생님, 준석이가 발표한다는데요!

준석 : (당황하며) 아 하지 마라 쫌.

선생님 준석이 일어나서 읽어봐 바.


준석 불안한 눈빛으로 쭈뼛거리며 일어난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덤덤하게 자신의 글을 읽는 준석.


준석 : 할아버지 뭐하는교?

예? 호랑이요? 이걸로 호랑이를 우째 잡습니까.

제가 매달리라고요? 안 할랍니다. 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요.

아 진짜 미치겠네. 할배 돌았습니까. 그만하세요. 쫌!

 

준석이 발표를 마치자 반 아이들 모두 깔깔대며 웃는다. 덩달아 선생님도 웃는다. 준석은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다.


준석 : 그때 좀 뭔가 속이 울렁울렁 이상하게 재밌었던 거 같은데.


(회상) 영도중학교 2학년 5반. 물리수업 중.

 

수업 끝나기 10분 전. 집중력이 흐려진 아이들. 자는 애들이 곳곳에 보인다. 물리 선생님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얘기한다.


물리쌤 : 10분 남았네. 더하까?

학생들 : 아니요~.

물리쌤 : 그래. 조용히 엎어져 자라. 아니면 뭐 재밌는 얘기할 사람?


준석이 조용히 손을 든다.


물리쌤 : (창가 쪽으로 걸어가며 준석을 보고) 어. 해봐라.


자연스럽게 교탁 앞에 서는 준석. 친구들 앞에서 조곤조곤 얘기를 시작한다.


준석 : 옛날에 깊은 산속에 터프가이 아저씨가 닭을 세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전부 다 주인 닮아서 터프했그든.

친구1 : 재미없다. 들어온나.

준석 : (아랑곳 않고) 어느 날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는기라. 터프가이 아저씨는 생각했지. 닭을 잡아야 되겠다. 근데 어떤 닭을 잡을까나.. 아! 제일 덜 터프한 놈을 잡자.


친구들은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준석의 얘길 듣고 있다.


준석 : 터프가이 아저씨가 첫 번째 닭한테 갔지. 근데 닭이 하는 말이. ‘마! 물 끓이라!’ 아저씨는 생각했지. ‘오? 터프한데? 통과!'

친구2 : (웃으며) 까리하네.

준석 : 두 번째 닭한테 가니까 닭이 ’마!! 털 뽑아라!!! ‘오호.. 살아있네! 두 번째 닭도 통과! 아저씨가 볼 것도 없이 세 번째 닭을 잡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닭한테 딱 갔지. 근데 임마가 아무 말도 없는기라.

친구2 : 닭이 쫄았는갑네.

친구1 : (친구2에게) 쫌 닥치라.

준석 : 터프가이 아저씨가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털을 뽑고 있는데 닭이 아주 나지막하게 이래 말하는기라.

준석 : 마.. 구렛나룻은 뽑지 마라..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준석도 빵 터진다. 교실이 떠나갈 듯 웃음소리 울려 퍼진다.


(회상 끝)


준석 : 제일 재밌었던 거를 떠올리면 이런 건데.. 이걸로 우째 정하노..?


준석은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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