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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타 Feb 03. 2022

겨울은 반성의 계절

교단일기 (2021)

겨울. 가슴 속에 삼천원을 꼭 품고 다녀야하는 계절, 뜨끈한 국물요리가 유독 맛있고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설렘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그리고 내겐 반성의 계절이기도 하다. 잠들기 한 시간 전엔 벽에 붙은 고양이 그림에 대고 고해성사를 잔뜩 털어놓는다. 올 해는 작년보다 다정하려 했는데 못해준 것이 어찌나 많은지요. 제가 이러고도 좋은 교사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무언가를 더 줄 시간은 줄어만가고 후회와 반성의 시간은 늘어만 간다. 초등학생들과, 특히 우리 1학년들과의 이별이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이유다.     


 만 7세, 오른쪽 왼쪽을 아직도 헷갈려 하는 우리 1학년 아이들은 나의 절대적인 팬클럽이다. 급식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본인 생일잔치 날 집에 꼭 초대하겠다고 자기들 맘대로 약속도 하곤 한다. 자기네들 선생님이 학교에서 제일 예쁜 줄 알고 자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어린이들이 선생님보다 백배 천배 낫다.) 정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신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께선 누구나 공감하실테다. 가끔은 어디든 우리 애들 이만큼 귀엽다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2021년의 내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2021년 3월 말 즈음엔 진지하게 병휴직을 고민했었다. 어디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고 오로지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7세반은 '형님반'이라던데, 왜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아기'들이 되는 걸까? 나의 첫번째 1학년, 28명의 작고 귀한 '아기'들을 다친 곳이나 아픈 곳 없이, 가정으로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한없이 예민하게 만들었다. 교생실습 때 고작 2주 참관했던 1학년 교실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감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 지 예상할 수 없는 캄캄한 숲. 그게 바로 3월과 4월 동안 느꼈던 우리 교실의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이 '아기'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지라 점차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보건실에 스스로 찾아가고, 급식을 다 먹고 제자리에 앉아 색칠공부를 하고, 울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학습지에 제 이름을 잘 써냈을 때에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커감에도 난 여전히 캄캄한 숲속이었다. 그 때는 원인 불명의 우울감이라고 혼자 정의 내리고 흘려보냈었는데, 지금 글을 쓰며 떠올려보니 여전히 강박을 느꼈었던 것 같다. 학교생활을 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혹여 다치고 상처받고 눈물이라도 흘릴까 싶어 두려웠다. 매일매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 아주 안전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그러려면 아이들끼리 서로 조심하도록 해야 했고 내 마음도 차분히 다스려야만 했다. 마음을 다스리려 심호흡을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가슴 속엔 풍선이 하나 들어찼다. 답답해서 꺼내고 싶은데 쉽사리 터지지도 않고 자꾸 부풀기만 하는 아주 거대한 풍선이.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부담감을 어딘가에 마구잡이로 토로할 순 없었다. 사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부담감인데, 요 정도도 못 버티고 잠 못 이루는 사람 같아 보이는 게 부끄럽고 싫었다. 한두 달 정도 이야기하고 나니 레퍼토리도 비슷해 듣는 사람도 지겨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러는 동안 풍선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시간은 더디게 가고 나는 자꾸 붕 떠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하교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나만 남았다. 나를 채워보려 온갖 취미에 손을 다 대고, 일기도 써보고 책도 읽었다. 여전히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아졌다. 그 순간만큼은 땅에 발을 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 속 풍선에 바람이 색색 빠져나갔다. 그렇게 여름도 가고 가을도 갔다. 그즈음 아이들은 더 자랐고 서로에게 적응해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루틴 속에 군데군데 재미있는 활동도 함께 하며 아무 문제 없이 매일이 흘러갔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견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서툴다는 것이었다. 부담감을 줄이려 수업 준비도 일주일 단위로 미리 해두고, 생활지도도 꼼꼼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들에게 내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 이렇게 낯뜨거운 일인지를 몰랐다. 준 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잔뜩 줬어야 했는데, 내가 먼저 표현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워서 제대로 말하지도 못 한 채 겨울방학이 되었다.      


 눈코   없이 다가온 개학 , 우리 아이들은 훨씬  커진 사랑을 내게  안겨주었다. 선생님이 없어서 방학이 재미가 없었어요. 너도나도 쫑알대는 말들에   부끄러워져서 선생님도 너희들 보고 싶었어. 하고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지금도 의젓한 우리 반이기는 하지만 내가   표현에 능한 선생님이었다면 어떤 반이 되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생각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뜬금없는 죄책감까지 함께 데려온다. 이러면  된다는   알고 있기에 생각을  멈추고자 구구절절 반성의 글을 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반성은 미뤄두고 또 나의 일에 집중해야한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란다. 작게 자주 자주 사랑을 보내고 싶다. 서툰 마음을 품고 1월을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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