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미의 작은 나라 파라과이에서 뷔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팔고 있는 음식은 한식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식과 중식 그리고 현지식이 자본주의적으로(?) 알맞게 섞인 퓨전 오리엔탈 뷔페쯤으로 해두는 게 좋겠다.
우리 가게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정통 한식으로 무장한 고급 한(정)식집이 아니다. 오히려 현지인 손님이 99%를 이루는 가성비 맛집이다. 손님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뷔페로 깔려 있는 음식을 손님이 스스로 담은 다음 무게를 달아 계산하는 방식이다.) 우리 가게가 지향하는 바 역시 현지인 손님이 한국음식도 쉽게 접하도록 하는 데 있다.
다행히, 내가 이곳에 온 6년 새 한국문화는 급속히 현지인들에게 스며들었다. '김치'라는 낯선 음식이 이제는 한번쯤 들어보고 경험해보고픈 힙한 메뉴로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우리 가게에서는 김치를 사이드 메뉴로 판매한다. 원하는 음식을 모두 담은 후 김치를 추가할 수 있다. 어떤 손님들은 일부러 김치 하나만 사가기 위해 가게에 들르기도 한다. 오늘은 뜬구름 잡는 감성 에세이가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외국인 대상 김치 판매법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각 나라마다 세세한 사정이 다르므로, 감안해서 봐주시면 좋겠다)
첫째, ‘굳이’ 발효하지 않는다.
"발효하지 않은 게 무슨 김치야?" ..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경험해본바로는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이것 하나만 건져도 김치 판매가 훨씬 수월해진다. 과언이 아니다. 김치 담글 때 발효도 하지 말고, 판매 할 땐 발효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곳, 파라과이에서는 그렇다)
발효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익은 김치의 쿰쿰함은 깊은 맛이 아니라 상해버린, 어떤 냄새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뚜껑 조차 열 수 없다. 발효되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김치 국물은 시뻘건 공포 그 자체다.
특히 파라과이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 젓갈과 같은 바다쩐내는 이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맛과 향 - 아니 그보다는 - 지독한 냄새다. 그래서 우리 가게에서는 젓갈을 넣지 않는다. 발효 자체도 부담스러운 현지인들에게 굳이 비싸면서 거부감이 드는 재료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젓갈은 빼고 겉절이 스타일로 신선한 김치를 만들어 판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첫번째 포인트다.
한국인에게는 발효가 곧 건강과 연결되겠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면 된다. 굳이 발효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아도, 외국인의 시각에서 동양 음식과 야채는 자연스럽게 건강과 연결된다.
둘째, 최대한 근접한 음식을 찾아 설명한다.
들어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는 음식,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설명할 때는 그 사람이 알만한 가장 근접한 음식을 찾으면 된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A - 혹시 엠빠나다Empanada 라는 음식 알아?
B - 아니, 모르겠는데? 그게 뭐야?
A - 엠빠나다는 일종의.. 남미식 만두야.
이렇게 설명하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실제로 엠빠나다는 생긴 것도 만두와 흡사하고, 내용물을 채워 넣고 빚은다음 튀기거나(가장 일반적) 오븐에 굽는다. 남미 사람들에게 만두를 설명할 때는 반대로 하면 된다.
A - 만두 MANDU라는 음식 알아?
B - 아니, 모르겠는데? 그게 뭐야?
A - 한국식 엠빠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김치를 엔살라다 삐깐떼(ENSALADA PICANTE)라고 설명한다.
손님 - 이 빨간 쌀사SALSA(소스라는 뜻의 스페인어)는 뭔가요?
나 - 김치에요.
손님 - 김치? 그게 뭐에요?
나 - Como una ensalada picante. 일종의 매운 샐러드 같은 거에요.
손님 - 아~
이렇게 풀어쓴 메뉴'설'명은 현지인들에게 더 가깝고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실제로 다른 메뉴에도 다양하게 적용중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아 다음번에 한 번 더 풀어쓸 예정이다.) 김치는 엔살라다 삐깐떼로 풀어쓰면서 - 엠빠나다보다는 덜 명확하지만 그래도 - 야채가 주 재료라는 점, 매운맛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다.
셋째. 소량으로 판매한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 불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돈을 써야 한다면 더욱 더 그렇다. 우리는 이런 두려움을 줄여주는 동시에 더 많은 판매를 위해 소량 포장을 택했다.
딱 한 끼, 젓가락질 두 세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같으면 찔끔찔끔 감질맛 난다고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판매 대상은 현지인이기에 여기서는 - 여태까지의 반응으로 보면 - 매우 성공적이다.
김치를 이미 알거나 맛 본 사람들은 간편함 때문에 소량 포장을 반긴다. 본인의 점심 식사용으로 하나를 소비하고, 저녁에 먹을 것 하나, 아빠 것 하나 이런 식으로 두 개 세 개씩 추가로 구매한다. 소량 포장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 누구를 위해 뜯어도 부담이 없고, 딱 한끼에 알맞은 완벽한 사이드 메뉴가 된다. 곁들여 먹기에 최고의 맛과 양을 지닌 것이다.
어딘가에서 들어봤거나 누군가의 추천으로 혹은 우연한 기회에 김치를 알게된 사람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가게 안으로 쭈뼛쭈뼛 들어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무섭고,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그들에게 우리는 단돈 5000과라니(원화로는 950원 정도)로 유혹한다. (5000과라니로는 슈퍼에서 콜라 500밀리리터 짜리 한 병을 살 수 있다.) 부담없는 가격 덕분에 김치에 입문한 손님들이 여럿 된다. 이후 입맛에 맞다고 느낀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김치를 추가해 반찬처럼 곁들여 먹는다. (여담이지만, 빵 대신 흰밥에 김치 하나만으로 한 끼를 떼우는 현지인 손님도 종종 눈에 띈다!)
넷째, 곁들여 먹을 음식을 추천한다.
자, 김치가 매운 샐러드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됐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매운 샐러드를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먹을 땐 포크로? 아님 젓가락으로? 그걸 왜 모를까?라고 반문하는 한국인도 있겠지만 그건 당신이 한국사람이라 그런거다. 현지인에게는 낯선 이 음식은 익숙해 질 때까지는 적어도 몇 번은 탐구해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팁을 더 붙여 설명해준다.
“김치는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려서 피클처럼 곁들여 먹으면 됩니다. 아사도(ASADO 남미식 소고기 구이)나 쵸리소(CHORIZO 남미식 소시지)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어요. 혹여 김치를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했을 경우에는 잘게 짤라 함께 구워 먹으면 됩니다”
이렇게 설명 해주면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면서 아리송했던 표정이 도전적인 미소로 디졸브된다. 손님들의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을지가 그려지는 것이다. 김치 판매는 이로써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우리는 "한국음식을 알려야 한다!"와 같은 사명감을 갖고 김치를 팔지 않는다. 그렇게 접근했다면 오히려 한국인의 시각에서 김치를 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팔고자 하는 대상, 즉 현지인 손님의 눈높이에서 김치를 바라보니 앞선 방법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했다. 김치 판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정답은 본질 안에 있다. 음식은 맛있어야 하고, 김치는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은 문화를 초월한다. 맛있으면 장땡이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