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점심시간을 활용해 청계천을 걸었다. 분수가 있는 청계광장은 복구된 청계천의 시작점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 가면 인공 폭포가 있다. 2단으로 물이 쏟아지는 끝, 야트막한 수면은 맑아서 속이 훤히 비치는데 손가락만 한 물고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움직이지 않길래 신기해서 들여다보니, 헤엄을 치고 있었다. 사실은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데 폭포 쪽으로 향하고 있다 보니 힘에 부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던 것.
우습고 안타까운 그 꼴을 뒤로 하고 걷는데, 아래쪽으로 걸어갈수록 자꾸 물고기들 생각이 났다. 나무도 풀도 있고, 심지어 물 속에는 해초와 이끼가 잔뜩 있어 먹을 것도 많고 숨을 곳도 많은데, 도대체 왜 저기에서? 저 크고 멋진 폭포를 타고 올라가면 뭐가 있다고 생각하니?
물고기들이 말만 알아들을 수 있다면 다시 가서 더 쉽고 좋은 삶이 이쪽에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해야 하는 건 딱 하나, 그저 뒤돌아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헤엄치기만 하면 된다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컨설팅 회사는 밖에서 보기에는 화려한 직장이었고, 뭔가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주는 보람된 일이었다. 정작 해보니 실제로는 누군가의 머리 속에 이미 있는 '정답'이 있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은 그 정답을 뒷받침하는 합리적인 근거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의 속도에 따라 팀과 함께 페달을 멈추지 않고 밟아야 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주말도 없이 회사에서 일만 하며 3년 정도가 지나자 처음에는 바쁜 나에게 시간을 맞추던 친구들이 약속을 먼저 잡고 나에게는 올 수 있으면 오라는 지경이 됐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1주일 교육받게 되었다. 돌아오기 전에 간신히 하루 휴가를 내 테이트 미술관에 갔다. 마음은 바쁘고 몸은 피곤에 절었지만, 전시 관람을 꾸역꾸역하다 다리가 아파 거대한 그림을 앞에 두고 벤치에 앉았다.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질문 하나가 작은 씨앗이 되어 마음에 콕 박혔다.
‘이게 뭐라고 놓지를 못하니?’
어떤 생각은 시간을 두고 여물어 큰 결정을 할 때의 기준을 제시하는 핵심 질문이 되는데, 이 질문이 그랬다. 몇 개월 뒤, ‘5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싶은가?’라는 구체적으로 발전한 질문을 곱씹다 그렇지 않다고 결론을 냈다. 추진력에 발동을 걸어 휘리릭 준비해서 유학길에 올랐다.
내가 유학을 간다니 밖에서 보기에는 내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회사를 그만둘 때, ‘품위를 지키며 할 수 있는 퇴장 graceful way out’의 방도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유학을 기점으로 나는 뭔가 큰 포부를 가진 척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에 지원하기 위한 에세이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자신을 ‘야망에 불타는 사람’으로 포장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그리되었지, 싶다.
그렇게 간 대학원에는 필수교양과목으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수업이 있었다. 깡마른 백발의 교수님은 연극배우 같이 과장된 표정으로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재현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여기저기서 자주 보던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를 떠올리게도 했는데, 수업을 듣다 보면 꿈에 부풀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4년 반 동안 탄광촌 갱도 마냥 팔수록 좁혀졌던 길에서 벗어나 다시 활짝 열린 평야로 나온 기분이었다. 대기업 외에도 세상에는 좋은 중소기업이 많으며, 심지어는 창업을 할 수도, 자영업자가 되는 것도 나의 선택지라는 걸 깨달았다. 한 기업에서의 삶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며 얼마든지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배움은 닥치는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했다.
졸업한 지 15년도 넘는 지금 나의 카카오톡 배경 음악은 “꿈을 작게 가져라 Dream Small”이라는 제목의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이다.
큰 꿈을 꾸는 게 잘못된 게 아니지만, 그걸 추구하는 길에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말라, 예를 들어 경제적 이득을 뒤로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길 건너 소외된 이를 방문하기, ‘불금’에 특수한 도움이 필요한 (장애가 있는) 친구와 춤을 추기 등, 이런 작은 일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내용이다.
여전히 밖에서는 나를 야망에 찬 사람으로 보지만, 지난 4년은 의식적으로 작은 꿈을 위해 사는 시간이었다. 가족의 안녕, 생일, 건강, 기쁨을 위해 살았고, 회사에서도 동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 나를 꼬드기는 달콤한 전화를 받으면 또 불쑥불쑥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이 잠깐 설렌다. 그래도 머리가 냉정을 유지해 주어 “이제는 한국이 좋습니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놓고 한편으로는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엉뚱한 분야를 들여다보고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안 가본 폭포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헤엄을 친다.
이제 그만하고 뒤로 돌면 더 쉽고 좋은 삶이 있는 걸 아는데, 그 마음이 안 접히니 내가 그날 본 물고기 중 하나는 아무래도 나였나 보다. 그 바보 물고기들은 어쩌면 타고 싶은 물결을 기다리며 근육을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물고기들이 마침내 타고 싶은 물결을 만나기를, 그리고 뒤로 돌았을 때, 그간 쌓은 힘으로 빠르고 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시선 2023 가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