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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Apr 29. 2024

아파도 K.O는 아니니

한 달여를 치과 치료를 하면서, 급속히 이가 안 좋아진 건 근무 환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점심시간까지 포함해서 6시간 45분 동안 내가 한 말은 아침 나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늦게 차례로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건넨 아침인사였다. 그 아침인사도 사실 눈은 마주치지 않고 스크린을 보면서 하기 때문에 엄연히 말하면 혼잣말에 가깝다. 


아, 말하고 싶다. 말을 못 하니 글이라도 자꾸 쓰게 된다. 하도 답답해서 그나마 말을 가장 많이 건네어본 직원을 커피머신 앞에서 만났을 때 잽싸게 주말 인사를 건넸다. 월요일 아침엔 이래야 하는 것 같은데... 

하다 못해 아이들이 다니던 국제학교에선 월요일마다 까펫 타임이 있었다. 이번 주말에 뭐 했냐고 묻는다. 뭘 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마치 음식을 함께 먹듯이 말을 건네고 생각을 나누고 자신에 대해서 알릴 수 있다. 혼자 먹는 점심처럼 안부 또한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다.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하루 6시간 넘게 생긴 결과가 혹시 나의 이와 잇몸에 영향은 끼친 건 아닐까? 소통하지 않고, 메신저와 스크린으로만 연결된 이 관계는 절름발이 같이 느껴지고 나란 사람을 조그맣게 만들어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를 건네며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매일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듯 바람소리가 들린다. 뚫려있는 듯 힘이 하나도 없어 기운이 구멍으로 다 빠져나간다. 


그들은 나하고만, 일터에서만 이렇게 말이 없는 걸까? 이런 출퇴근 조건을 가진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면, 월요일 주말안부를 묻는 그런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잇몸에 병이 나지 않을 수 있게 조잘조잘할 수 있는 회사인데, 지금처럼 유연근무제와 파트타임을 적용해서 일할 수 있는 데가 있을지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말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시도도 했던 초반이 있었다. 맛있는 거도 줘보고, 단체로 선물도 돌려봤다. 늘 감사인사를 했고, 그 어렵다는 칭찬도 해보았다. 칭찬하기가 제일 힘들었다. 경력을 이은 사람이니 이것저것 물어봐야 하고 실수 연발이니 죄송하다, 미안하다, 다음에 할 때는 신경 쓰겠다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대부분이었다. 실수로 그들이 써야 하는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감사하단 말을 할 수 있지 그들에게 칭찬을 하기란 기회 찾기 자체가 힘들었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칭찬을 해보았다. 디자이너가 만들어주는 디자인에 거래처의 호평을 전하기도 하고, 사수가 새로 한 파마머리가 잘 어울린다고도 해보았다. 

 근데 돌아오진 않는다. 달라진 머리에 누구 하나 말 거는 사람이 없다. 

 " 저 없는 동안 별일 없었나요?"

사수가 없는 금요일 하루 동안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으며, 사수가 돌아왔을 때 일이 쌓여있지 않도록 빽빽하게 일을 했기에 사수의 메신저 글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무 일도 없어서 저렇게 물어보는 거구나 싶어 기뻤다. 

오산이다. 

" 제가 없을 땐 한 군데 모아서 기록해서 알려주시고요, 제 개인 메일은 보지 않으니까 참조 달지 말라고 말씀드렸었고요."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뒷목이 뻣뻣하다. 이제 나의 몸은 감정에 반응한다. 

내뱉지 못한 감정은 뇌에서 떠올라 몸을 한 바퀴 돌고 온몸 곳곳에 퍼져나가  흡수될 뿐, 그 어디로도 꺼내놓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만 아픈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금저축을 들었고 적금도 들었다. 비록 15년 만에 세상으로 내디딘 이 발걸음이 내 온몸을 아프게 할지언정,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한 발자국씩 다리를 달래 가며 나아가고 있다. 기어서라도 출근하고 있고, 속으론 엉엉 울면서도 일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주 5일을, 한 달에 하나씩 돌아오는 연차를 꼬깃꼬깃 접어 아이들 학교 행사에 유용하게 써가면서 일하고 있다. 

아파도 일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뒷목이든 이든 일단 KO는 아니니 가보는 거다. 

내일은 누가 아무 말이나 건네주길 바라면서! 일과 상관없는 그 어떤 말, 호박씨란 사람의 안부를 물어 대답을 구하는 질문 한 개를 기다리면서 또 집을 나서보는 거다. 


사진: UnsplashToxic Smo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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