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식집사로 만들어준 루이가 초록별로 떠났다Ⅰ
어릴 적부터 강아지가 키우고 싶다 노래를 불렀던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집안에서 동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
우리의 의견은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며
우리의 삶에서 강아지란 단어는 점점 잊혀 갔다.
그러다 내가 20대 중반이었을 때였나?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셨다가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귀국하셨고
돌아와서도 한참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일이 있었다.
퇴원한 이후에도 부모님은 매일 병원으로 물리치료를 가야 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당신, 무조건 예스라고 말해. 내가 내 마음대로 뭘 하든 간에 찬성이라고 해요."
성격상 평소에 이런 통보조의 말을 할 엄마도 아니었고, 아빠와 상의 없이
독단으로 무언갈 결정하거나 시도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며칠 후 엄마 사무실에 갔더니, 조그마한 생명체가 뽈뽈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루이였다.
두어 달 물리치료를 다니는 동안 엄마의 사무실과 병원 가는 길의 동선에
작은 애견용품점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는데 엄마 눈에 강아지들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가게 안을 제 운동장 삼아 뛰어놀고 있는 모견과
다섯 마리의 강아지 새끼들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오고 가는 길, 하루에 두 번씩
그 가게에 시선을 주게 되었고. 그 가게 문에는 "폐업"이란 두 글자가 붙어 있었다.
뛰어놀고 있는 새끼 강아지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고, 어느새 가게 안에는
어미 강아지와 새끼 강아지 한 마리만 남아 있더란다.
엄마는 이끌리듯 가게에 들어섰다. 어미견은 가게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였고
새끼강아지는 다 분양이 되었는데 한 녀석만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엄마는 며칠 고민을 하다가 계속 눈에 밟히던 마지막 남은 그 한 녀석을 데려왔다.
그렇게 동물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엄마가 말이다.
2006년 9월.
그렇게 그 조그만 강아지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사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엄마는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주마등처럼 지난날이 스쳐갔고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애들이 하고 싶다던 일 한번 속 시원하게 해 준 적 없던 것이 자꾸 후회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돌아와서 폐업딱지가 붙은 애견용품점을 발견했고 거기서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들을 보며 떠올린 것이었다. 지난날 우리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단 것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강아지를 키우고 싶던 그때의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책임이 뒤따르는지 알고 있는 성인이었다.
"엄마 그냥 데려다 주자. 나 이제 강아지 안 키우고 싶은데?"
처음엔 이제 와서 굳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30분도 안 돼서 우린 그 녀석에게
홀랑 빠져버렸고, 퇴근 후 사무실로 들린 아빠는 강아지를 보고는 저걸
어쩌려고 그러냐며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그렇게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깔끔쟁이 아빠는 집 안에 털이 달린 동물이 돌아다닌 것을 견디지 못했고
강아지 털이라도 한 올 날려오면 한숨을 쉬며 한소리를 했으며
아직 배변 훈련이 덜 된 강아지가 소변 실수라도 하면 심난한 기색을 표했다.
그리고 강아지에는 바로 안방 금지령이 내려졌다.
보름 후, 한 달 후, 세 달 후, 그리고 반년 후
아빠는 시간이 흐를 때마다 물어봤다.
"이만큼 키워 봤으니까 됐지? 다른데 보내면 안 돼?"
시간이 흐를수록 루이는 당신 눈에도 예쁘긴 했지만
여전히 털 달린 동물과의 동거가 아빠에겐 불편했나 보다.
그리고 딱 1년 후.
루이에게 안방문이 활짝 열렸고, 아빠의 침대도 무장해제되었으며
아빠는 루이에게 홀라당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이제 외출하면 제일 먼저 루이의 안부를 챙기는 것이 아빠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