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원 너 줄게! 조금만 더 내 곁에 머물러 줘
정말 오랜만에 우리 똥강아지가 303호에 놀러 왔다.
이사 와서도 이리저리 방 구조 바꾸기에 열심인
언니는 오래간만에 쉬는 날을 맞이하여 침대를
이리 옮겨보고 테이블을 저리 옮겨보고,
한 평 남짓 쪼그만 베란다를 뒤집고 하느라
여념이 없다.
참고로, 무늬만 식집사인 나는 원하던 대로
남향의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로 입성했다.
저층이지만 햇살이 짱짱하다.
작은 베란다에 가득가득한 식물을 보며 뿌듯하다.
그 좁은 베란다를 이리저리 꾸며보겠다고 설치며
베란다 입구를 짐으로 막아놨더니
우리 강아지는 빨리 베란다 입구를 열라며 눈치를 준다.
부랴 부랴 베란다 입구를 치워줬더니..
냉큼 베란다로 들어가서 초록이들 상태를 검열하고
빨리 자기 자리를 세팅하라며 언니를 째려보고 있다.
지금 루이가 서 있는 큰 화분들 있는 자리는
원래 루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즐겨 찾는 지정석이었다.
사실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루이가 많이 아팠다.
16살이 될 때까지 크게 아픈 적 한번 없었던 우리 똥강아지는
16살을 맞은 그해 이른 봄. 갑자기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오늘내일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아
수술은 어렵다. 일주일 안에 무지개다리 건널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루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살도 2kg이나 빠지고 힘든 상태였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루이가 다시 이 베란다에 올일이 있을까 해서
창가 쪽에 그냥 화분을 올려뒀었더랬다.
이런 언니를 혼내기라도 하듯 루이는 한 달여 만에
기적처럼 자발 식이를 시작했고, 갑자기 상태가 좋아졌다.
부쩍 활력을 되찾아서 한시름 놓았던 참이었고
루이는 그렇게 오래간만에 언니 집에
마실을 올 수 있었다.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요구하는 똑똑한 우리 루이 씨
어쩌겠는가. 나는 낑낑거리며 화분들을 다 치우고
얼른 루이 전용 자리를 만들어 준다.
루이는 그렇게 한 참 동안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창 밖을 구경했다.
사실 우리 똥강아지의 베란다 정원사랑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엄마집에서 내려와 산책을
한 바퀴하고 303호 집으로 오면 도도도 달려서
제일 먼저 베란다로 뛰어간다. 문이 닫혀 있으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진다. 왕!
16살이 되도록 평생 큰 소리로 짖음 없이 지냈기에
엄마 집 근처에 사는 세대들도 우리가 강아지 키우는
집인 줄 모르고 살았는데, 이렇게 자기 필요할 땐
목소리를 내는 게 기특하다.
밤이고 낮이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언니 집 베란다 정원을 사랑하는 루이야.
바닥에 떨어진 낙엽 한번 물어 가는 일이 없고
다가가서 킁킁 냄새만 맡을 뿐
초록이들한테 상처 한번 낸 적 없는
착하디 착한 우리 똥강아지 루이야.
얼른 좀 더 따뜻한 봄이 와서
이 베란다가 초록생명으로 가득가득 채워져서
너에게 그 생명력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 정원.. 너 줄게.
그러니까 조금만 더!
언니 곁에, 우리 가족 옆에 머물러 줘.
언니는 16년이 이렇게 짧은 줄 몰랐어.
우리 함께 20년 하기로 했잖아.
조금만 더 힘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