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꾸 시들어 간다.

땡볕아래 물 한 모금 못 먹은 초록이처럼.

by 조봉구

"선생님 저는 왜 아픈 거예요?

어디가 문제인 거죠?"


"MRI, CT 모두 크게 이상은 없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봐요."




독립을 하고 첫 한 달 이후로 어색했던 나의 자취 집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한 곳이 되어버렸고, 차로 10분이면

가는 부모님 댁에 점점 가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쉬는 날이면 루이를 납치해 와서 같이 자취방에서

뒹굴거렸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집 구조를 뒤엎고,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내 마음대로 그려나가는 우리 집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과의 첫 이별이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점점 더 심하게 아픈 곳이

생겨났다. 몇 년 전부터 고질병이던 어지러움증은

점점 더 해지고 갑자기 심장이 옥죄어 왔다.

뻐근하게 아팠다.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서 내 손 같지가 않았다.

밤이 되면 하지 불안증처럼 슬금슬금 다리가 아파온다.

어느 날은 자려고 누우면 다음날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숨이 안 쉬어질 때도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처럼 목구멍이 빽빽하게 아파온다.

갑자기 등에 통증이 나타나 몹시 괴로웠다.

몇 날 며칠을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과 싸워야 했다.

여기저기 병원에 가도, 이것저것 검사를 해도,

딱히 문제는 없다고 했다. 진료 끝에 하는 이야기는

다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 봐요"였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그 전전 해부터 나를 찍어내려는

상사가 있었다. 철저하게 나의 성과를 관장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한 일은 자기들이

한 일로 포장되어 보고 되었다. 내가 자기의 직속

후배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기들 밑에 굴복시키고

싶어 했고 내게 그들을 위한 희생과 봉사를 강요했다.

처음 겪는 일에 마음고생을 정말 많이 했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였다.

아득바득 이를 갈며 다른 분야 자격증을 준비했다.

그 핍박을 받아가며 야간에는 실습을 다니고

주말마다 서울로 학교를 다녔다.

그 사람이 발령 난 후 나는 괜찮아진 거라 생각

했는데 그 아픔은 몇 년 동안 차곡차곡 내 몸 안에

쌓이고 있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기타 수업에 가는 날이었다.

자칭 타칭 나는 클래식 기타반의 에이스였고

스스로도 매우 빠른 성취에 뿌듯했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강사님 앞에서 연습한 걸 시연하는데

손이 덜덜 떨리고 숨이 막혔다. 처음이었다.

발표하면서 떨린 적이 없었는데?

심장이 두근거려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어제까지 완벽하게 쳤던 그 곡을 완주하지

못했다. 그날 밤부터 3박 4일을 밤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밤을 지새웠다. 목구멍과 가슴께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워서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뒤로 사소한 일에도 앞에 나서는 게 힘들어졌다.

목소리는 덜덜덜 떨려오고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고,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시야가 흔들렸다.


연말이었다.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옥상에서 수습을 하고 가라앉힌 뒤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과장님이 눈치를 챈 건지

내 빨개진 눈을 본 건지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평소에 남 앞에서 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어느새 과장님 앞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다. 서로 각자 업무의 영역이 있는데

a의 일도 나의 일이고, b의 일도 나의 일이고

나의 일은 내 혼자만의 일이냐고

왜 우리 과의 일은 모두 내가 손대야만 하냐고

책임감 없이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언제나 수습은 나의 몫이냐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왜 다 나의 일이라고 말하는 거냐고."


그때를 기점으로 다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경과, 심장내과, 내과, 내분비과, 비뇨기과, 안과

엑스레이, ct, mri, 내시경, 갑상선 모두 정상이었다.

그리고 여섯과의 의사 모두 나에게 정신과에

내원할 것을 권유했다. 특히나 식도염과

등의 통증이 정신적인 거냐 물으면

질색팔색하며 몸에 문제가 있으니 아픈 거라며

호언장담 하던 내과 의사는 mri 결과를 보고 나서야

정신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연예인들이나 가는 줄 알았던 정신과를

내원하게 되었고,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하하. 내가 공황장애라니.

나 성격 정말 밝은데? 나 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13년부터 공황장애 증상들이 시작되었고

미처 나의 몸과 정신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2018년이되어서야 나의 상태를 인지하고

정신과 방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8년째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으면서 이유 모를 통증들이 많이 가라앉았다.

처음 이 사실을 얘기했을 때 우리 엄마는 펄쩍 뛰면서

네가 무슨 정신과에 가냐고 했다.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도 같은 반응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은 나의 공황장애를 믿지 못한다.

사실, 매일 먹는 약이 아니면 나도 못 믿을 것 같다.

약을 건너뛰고 나면 다시 심해지는 증상에

그런가 보다

나는 마음이 아픈가 보다 할 뿐.


무튼.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나는 계속 부모님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점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곁에 머물며

함께 하고 싶었고 그보다 더 빠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는 우리 루이와 더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독립할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결심과

실행력으로 첫 독립의 낭만으로 가득했던 집을 떠나

엄마가 사는 아파트 단지, 엄마네 앞동으로 이사를 했다.


독립한 지 3년 만의 이사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