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식물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네가 떠나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by 조봉구

"하나 둘 식물을 키우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이것저것 온통 예쁘다.

어느새 잔뜩 늘어나 집 안을 가득 채운

실내 정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가득 찬 화분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러다 문득 고민이 된다.

내가 정말 좋아서 식물을 늘리 는 것일까?

이런 현상이 혹시 또 다른 집착으로

느껴질 때는 없었나?"



누구에게나

초록이들에게 집착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계기가 늦은 독립이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 늦은 독립을 하게 되면서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이 같이 지내오던 똥강아지를

본가에 두고 나오게 되었다.


사실, 내가 주양육자이다 보니 데리고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간혹 야근이라도 하면 꼬박 밤 10시 30분까지.

아이를 혼자 낯선 자취방에 남겨 놓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미혼자녀와

부모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 구성원 속에 이 녀석은

이미 우리 집의 막둥이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은퇴하신 부모님과의 대화 속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왁자지껄 웃음꽃을 주는 존재 또한 이 녀석의

몫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친척들과의

왕래가 없어지고, 손자 손녀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 집 일상에 언제부턴가 이 녀석은

부모님에게 활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조그만 동네, 직장마저도 차로 10여분 거리.

같은 지역에 살면서 왜 나가 사냐는 엄마의

반대에 부딪혀 계속 독립을 할 수 없었다.

독립을 하고 싶은 이유는 딱히 없었다. 가족과의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었고 우리 부모님은

혼기가 지난 딸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는

엄마아빠들의 그 흔한 레퍼토리 한 번을

시전 한 적 없으며, 부모와의 관계에 부딪혀

독립을 서두르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엄마에게 청소 좀 해라,

집안일을 도와라, 왜 이렇게 오래 자냐는 둥

잔소리 한번 들어 본 적 없었다.

다 컸으니 생활비 내란 닦달도 없었다.

나는 배부르고 자유로운 캥거루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이 답답했다.

독립이 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냥 나의 공간에서 나만의 것을 가지고,

나의 살림이,

독립된 주체로서,

살아보고 싶었다.


1차 독립 반란을 실패하고,

2년여 뒤. 엄마에게 독립계획서를 제출했다.

현재 나의 자금 상황과 앞으로의 독립계획을

상세히 오픈했다. 사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성인이었지만

나는 이미 k-장녀 습성 만렙인 맏딸이었기에

쉽게 엄마를 이기지 못했었다.


그렇게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그렇게 원하던 첫 독립을 하게 되었다.


막상 독립을 하고 보니, 집은 너무 넓고 추웠다.

반겨주는 가족과 반려견이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독립하고 한 달쯤은 매일매일 엄마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혼자 있으니 마음이 너무 허하다는 핑계를 대며

친한 언니를 따라 초록이들을 하나 둘 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풀때기는 그저 풀이었고

먹는 것과 키우는 것 모두 질색이었다.

꽃이고 식물이고 도통 이쁜 거 모르겠고,

어차피 시들어버릴 꽃다발을 줄 거면

그냥 돈으로 주면 안 돼? 하는 사람이었다.

식물이 주는 소소한 행복과 따뜻한 위로를

모르는 풋내기였다.


빠른 독립을 위해 직장 근처에 집은 집은 북향이었다.

매물로 나온 집들 중에 제일 컨디션이 좋았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집을 선택했고,

그저 빨리 집에서 나오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좀 더 알아보고 남향 쪽으로 구해,

북향은 생각보다 어둡고 춥더라!"


이미 같은 건물의 남향에 살고 있던 친구의

만류 따위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나만의 공간으로 가고 싶었다.

그 생각뿐이었다.


"아니 어두우면 불 켜면 되고!

추우면 보일러 키면 되잖아?"



해도 잘 안 드는 북동향 집에서, 이렇게 나는

식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식물 키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식물의 모양만 보고 데려오고 초록별로 보내고,

죽으면 내 탓이오를 외치며 다시 데려오고,

또 초록별 보내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초록이의 생과 사를 무한반복 하면서

n연차 식집사가 되었다.


분갈이, 가지치기, 비료주기 따위는 하나도 모르는..

그저 물만 열심히 주는 반푼이 식집사가!


그러다 2021년 봄이 되었다.

한 살에 만난 우리 강아지는 어느덧 16살이 되었다.

내내 건강했던 녀석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다.

이별을 준비해야 될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점점 더 초록이에 집착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 강아지 노래를 불렀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첫 반려견을 키울 수 있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16년 동안, 나중에 이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고양이든 멍멍이든 데려올 생각이었다.

결혼생각이 없는 나에게 반려동물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아픈걸 내내 지켜보고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아이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나의 마음이 변했다.


다시는 못 키울 것 같다고.

나는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이 녀석이 내 곁을 떠나면..

앞으로는 내 집에 생명체는

오로지 반려식물만 들이리라 결심하고

허전해진 마음을 초록이의 개수로 채워나가듯

미친 듯이 하나 둘 줍줍 하게 되었다.



적어도

초록이별로 돌아간 식물 때문에

내 일상이

무너지지는 않으리란 생각에.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