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식집사로 만들어준 루이가 초록별로 떠났다Ⅱ
내가 식물을 키우게 된 건
늦은 독립을 하게 되면서였다.
매일매일 가족들과 루이와 복닥거리다가 홀로
떨어져 나오니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독립을 하면 고양이가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와 근처 학교에 있는
길냥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루이에게 줄 사랑을 양분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 지내면서 다른 생명을
집에 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린 아기처럼 돌봐줘야 할 생명체를
하루에 10시간 넘게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 대신
초록이를 키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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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즈음
16살이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어려 보이고 건강했던 루이가 갑자기 많이 아팠고
엄마와 교대로 계속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이제는 정말 우리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힘들지만 우리에게 조금씩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16년 동안 크게 아픈 적
없었던 평온한 루이삶에 대한 대가를 한 번에
받아가기로 하는 것 마냥 조그마한 녀석의 몸에
자리한 모든 것들이 이제 그만 생명을 멈추겠노라
시위하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를 제외하면 아주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루이는 평생을 살면서 부모님 다음으로
나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나의 가족이었다.
무언가 해줄 수도 없이 떠나보낼 날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몹시도 아프고 두려웠다.
한 달 여를 생과 사의 고비에서
내일이 올 것 같지 않게 힘들어하던 녀석은
봄이 되자 기적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냥
상태가 좋아졌다.
한 달이 넘도록 자발식이를 거부해 생식을 갈아
주사기로 강제급여로 연명했던 아이가,
제 힘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2킬로나 빠졌던 앙상한 몸에
다시 살이 붙기 시작했고 스스로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시 선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루이는 다시 혼자 힘으로
오종종 걸으며 산책을 했고 여전히 현관문에 나와
나를 기다려줬고, 눈이 마주치면
신나게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즈음부터였나 보다.
루이가 머지않아 떠날 거란 불안감에
나는 차곡차곡 초록이들을 적립하고 있었다.
아니, 미친 듯이 초록이 수집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법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고.
9월이 들어서며 우리 강아지는 다시 쇠약해져
갔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으로 쫓아가서 루이를 들여다 보고 오기도 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집에 계셔서 늘 녀석의 곁을
지킬 수 있었고. 나는 매일 퇴근 후 엄마집에
들려 루이의 안부를 물으며 "힘내. 루이야.
조금만 더 버텨주렴!" 속삭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1년 9월 15일, 오전 7시 7분
16년을 함께한 반려견 루이가 떠났다.
아프기 시작했던 봄부터, 나이가 많으니
수술도 위험하고 테이블 데스할 확률이
너무 높으니 견주가 선택하라고 했다.
수만 번 고민했지만 너무 낮은 확률의 생을 걸고,
결정할 수가 없었다. 머지않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할 거란 소리에 언제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다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지.
욕심부리지 않으마, 하루를 살더라도
더 아프지 않게 우리 가족의 품에서
행복하게 떠나라고! 그것만 바라노라
그렇게 바랬는데..
예상하고는 있었으나 막상 불쑥 다가온
이별은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의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반려견이 나이 든 만큼 16년의 세월 동안
같이 나이 든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플지 헤아릴 수 없었다.
눈 돌리면 닿는 그 자리에,
늘 있던 루이가 없는 현실에
울컥울컥 치밀어 왔다. 부모님과 성인자녀 둘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에게..
16년이란 시간 동안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해준
우리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반려견 루이야
언니의 작은 베란다에 놀러 와서.
킁킁 냄새 맡으며 초록이들의 안부를 묻고
창 너머를 한없이 바라보던 네가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집에 있어도, 집을 나서도.
출퇴근하며 지나다니는 길.
산책하며 네가 쉬야하던 자리.
어느 곳 하나 네가 보이지 않는 공간이 없다
평소엔 '무릎 앉기' 거부하면서
차에 타면 냉큼 무릎에 올라오던 너
현관 앞에서 인사해 주던 너
예쁜 눈망울로 마주 바라보던 너
언니 초록이를 소중하게 아껴주던 너
무뚝뚝한 가족들의 함박웃음을 책임졌던 너
엄마집, 언니집 집안 곳곳에
너의 흔적이 가득가득한데
너만 보이지 않는다.
네가 없는 이 현실이 꿈만 같아
매일 밤마다 니 옷을 끌어안고
잠을 자는데.. 꿈에 나오질 않네..
무지개다리는 잘 건넜는지
강아지별에 잘 도착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한데 말이야.
올해 언니 생일날.. 네가 아파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랑 20년 함께 해 줄 것이라고 믿었고.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아픈 너를 보며 덜컥 겁이 났다.
찾아보니 수의는 윤달에 지어야 한다더라.
마침 4월의 유일한 윤달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밤새 울며불며 루이를 위해 천사옷을 만들었다.
제발. 미리 수의를 지으면 오래 산다는 그 미신
진실이게 해달라고. 빌었다.
네가 좋아하는 거 가득 채운 가방 메고..
가볍게 소풍 가는 마음으로 떠나렴
부디 그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별이 되렴
네가 좋아하던 것들로 가득한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우리 착한 루이는..
2006년 9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와서
2021년 9월의 어느 날 떠났다.
그리고... 루이가 떠난 날의 하루 전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고,
루이가 떠난 다음날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평생 기억할 네가 떠난 날
그 시간마저 우리에게 맞춰주느라
아픈걸 꾹 참으며
버텨준 건 아닐까 싶어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첫 만남부터 마지막 이별까지
착하디 착하고 이쁘고 이뻤던
너무 보고 싶은 루이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