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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상상력

말 좀 하는 말들의 모임 -시

by 나노

시(詩)


한자를 안 배운 나도 ‘詩’는 읽을 줄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는 능력은 모두 다 초월적이니까. 문학을 그중에도 시를 좋아하던 내 눈에 詩는 뭔지 몰라도 시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글자만 봐도 ‘시’라고 읊조리게 되었고. 지금도 시를 가르칠 때 가장 심장이 벌렁거린다. 참을 수 없는 치킨을 보면 콧구멍을 벌렁벌렁 하듯, 낯선 시를 만나면 가슴이 그렇게 벌렁벌렁, 그런다. 아주 참을 길이 없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언제부터 시를 좋아했는가?


이렇게 물으면 참 답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때는 숱한 백일장을 나가며, 내 시가 빨간색 볼펜으로 찢기고 뜯어내지는 걸 보고, 시를 부담스러워했다. 처음에 내 마음대로 쓰면 된다더니, 결국 다 선생님 마음대로 되어 있었다. 그것이 참 싫었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중학교 때 시는 ‘언어순화’ 프로젝트의 수단이었다. 애들이 워낙에 욕을 많이 하니까 도덕 선생님께서 외우라고 내주신 과제였다. 효과는 있었지만 시가 너무 길어서 또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멀어졌다.

고등학교에 가서 시는 탐구물이었다. 짤 뜯어 내서 분해해야 성적이 오를 수 있었다. 그러다 윤동주 시를 만났다. 그의 불우한 생애를 알게 되었다. 시가 더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적셔들었다. 어떤 작품을 처음 배웠는가 알 수 없지만, 그때 문학 선생님께 배운 다양한 설(說)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집을 떠나 친척 집에 의탁하며 살던 내 처지나, 유학 가서 떠돌던 윤동주나, 닮아 보였다. 그래서 ‘별 헤는 밤’이 그렇게 마음 아팠다. 그 뒤로 배운 ‘자화상’도 ‘쉽게 쓰여진 시’도 참 너무 좋았다. 좋다는 말 외에 어떤 표현으로 이를 수 없을 만큼 좋아하고 사랑했다.

그 뒤로 백석의 시에 빠져 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詩자는 ‘시’나 ‘시경’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詩자는 言(말씀 언) 자와 寺(절 사) 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寺자는 ‘절’이나 ‘사찰’을 뜻하는 글자이다. ‘시’는 글로 남기지만 말로 읊조리기도 했으니 言자가 의미요소로 쓰였다. 사찰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불경을 읽곤 한다. 이때는 운율에 맞춰 불경을 읽는데, 詩자에 쓰인 寺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詩자는 사찰(寺)에서 불경을 읊는 소리(言)를 ‘시’에 비유해 만들어진 글자로 해석된다.
(출처 :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시’는 ‘절의 말’이다.

그런데 ‘말들의 절간’이면 또 어떨까?

귀한 말과 말과 말이 절에 모인다고 생각해 보면, 그게 ‘시(詩)’일 것 같다.


말마디깨나 하는 ‘말 1’과
말은 좀 못 해도 할 말이 많은 ‘말 2’와
이도 저도 할 말이 없는 ‘말 3’이 모였다. 딱 ‘절’에서!

일단 일주문을 들어가는 모습부터 다를 것이다.

말 좀 하는 ‘말 1’은 설명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을 것이다. 일주문이 왜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다른 절과 다른 이 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자신의 화려한 경험담까지 들려주려면, 일주문을 지나지 못하고 서서 한참을 썽이 풀릴 때까지 말을 할 것이다.
말은 좀 못 해도 할 말이 많은 ‘말 2’는 일단 선두를 빼앗겼다. ‘말 1’이 정신없이 떠드는 사이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정보를 이야기하면 바로 잡아 주고 싶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숨도 안 쉬고 말하는 ‘말 1’의 쉼을 어찌 찾아낼 수 있을까? 겨우 겨우 틈을 찾아서 잘못된 정보를 고쳐 주고 싶어서 한숨 돌리고 장엄하게 시작하려는 사이에 이미 ‘말 1’이 또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 하는 수 없이 혼자 조용히 중얼중얼중얼. 못마땅해서 중얼거리고 있을 나 혼자 ‘말 2’.
말을 달리는 자와 쉼을 탐하려는 자들 사이에서 ‘말 3’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어차피 본인은 할 말이 없고, 서로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 둘을 바라볼 것이다. 뭐 저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까? 이런 눈빛으로 혼자 하늘도 보고, 풍경도 보고, 탑도 보면서 그럭저럭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유유자적하니.

이들이 모인 ‘절’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주지 스님 앞에 앉아 차 한잔 한다면?

절간에서 무슨 말을 나눌까?


자못 있어 보이기는 해야겠고,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음을 알기에 숨기기도 해야겠고, 하지만 말로 뒤처지기는 싫고, 감탄할 만한 말을 하고는 싶다면!!! 그래서 ‘시’가 태어났다면? 낯설고 깊고 묵직한 말의 형상들이 이해가 좀 되지 않을까?

이런,

화려한 상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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