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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안경을 빼앗어 써보기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by 나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원인/ 결과

일상어 : 나는 나타샤를 사랑한다 / 눈이 내린다.
백석의 언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의 백석 닮기 도전!

나는 저녁을 먹는다 / 해가 진다
허기진 내가 풍족한 저녁을 먹어서 / 오늘도 터덕터덕 해가 스러진다.

그가 너를 사랑한다 / 꽃이 핀다
못난 그가 반짝이는 너를 사랑해서 / 이 밤에 툭툭 꽃이 피어오른다.


세상에 원인에 따른 결과가 곧바로 눈에 보이는 일이 몇이나 될까?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다 어느 순간 결과가 보여서 ‘아! 달라졌구나.’를 알아채는 것이지. 공부하는 일도 그렇고, 사람 마음 사귀는 일도 그렇고, 돈 모으는 일도 그렇고. 언제 한번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 간 적은 없다. 그래서 틀어지고 틀어지다, ‘이제 나도 몰라!’를 외치는 순간, 은근슬쩍 비스무리하게 되어 가고 있는 윤곽이 보인다. 참 화내고 원망한 것이 미안해지게. 그래서 ‘인과’라는 말,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참 가르치기 어렵다. 못된 사람이 잘 사는 일이 더 많아서 염치가 없다. 애들 앞에서...


사랑하는 일도 그렇지 않던가?

내가 귀하게 여기고 아끼며 갈마 두었던 마음이 어디 상대에게 곧게 가던가? 휘어지고 반토막 나고 때로는 왜곡되어서 진심이 닿기도 어렵고, 진심이 닿았다고 해서 상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기는 더 어렵다. 그러니 원인과 결과가 안 맞으면 또 어떤가? 지금 내가 그대를 마음에 소중하게 품고 있음을 고백할 뿐이다.

‘나타샤를 사랑한다’는 일과 ‘눈이 내린다’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저 그렇게 나열되어 있는 수평선의 여러 일 중의 하나다. 다만, 사랑하는 내가 펄펄 내리는 눈을 보고 나타샤를 떠올렸다면,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가 되는 것이지. 거기에 우리의 애절함을 한 겹 더 올리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가 된다. 참 시의 언어라는 것은 기묘하면서도 어처구니없게 아름답다. 시인의 입을 통해 정리된 인과를 듣고 있으면, 진짜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같다.


잠시 시인의 안경을 빌려 써보자.

뭐 말이 되든 안 되든 시인의 안목을 핑계 삼을 수 있으니 맘 편안하게.


그가 너를 사랑한다 / 꽃이 핀다
못난 그가 반짝이는 너를 사랑해서 / 이 밤에 툭툭 꽃이 피어오른다.


해보니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일상생활 속에서는 쓸 수 없는 안경이라 잠시 빌려 써야지, 계속 쓰고 있기에는 눈이 어른거린다. 서로 무관한 일을 그저 연결해 보면, 괴상해 보여도 또 그럴 듯 해진다.


배가 고프다 / 비가 온다.



그럼,

우리도 한번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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