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이 작품의 제목은 ‘명태’ 일 것 같다. 손끝이 쩡하게 추운 한겨울 처마 밑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명태. 어찌나 얼고 또 얼었는지 꼬리에 긴 고드름을 달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고 있다. 다 죽어서도 눈도 못 감고, 마치 바다를 누비는 것처럼 이리저리 꼬물꼬물. 하루 종일 허공을 유영하다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차디 차가운 밤공기를 적신다. 왜 비늘도 없어서 얇은 거죽으로 이 추운 겨울을 누비는지. 쪼그마한 조기도 있는 비늘을. 하도 그 껍질이 얇아 추워서 멍들어 버린 것처럼 시커멓다. 기다랗고 파리한 명태. 얼었다 녹았다 어찌나 했는지 처마 밑으로 떨어진 낙숫물을 한데 모아 가슴에 긴 고드름을 달고 허공을 누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름은 ‘멧새 소리’!
처음에는 오타가 난 것인가 싶어서 다시 찾아보았다. 정확하였다. 대관절 이 황당함을 어찌해야 할까? 어디 멧새가 나왔던가? 실컷 꽁꽁 얼어 있는 명태만 나왔는데...
멧새 : 생김새가 참새와 유사하다. 하지만 참새와는 다르게 단독생활을 한다. 참새와 비슷하게 생긴 새가 혼자서 돌아다닌다면 멧새일 가능성이 높다. 몸은 갈색을 띠며, 머리에 밤색 흰색 줄무늬가 번갈아가며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리에서 눈을 거쳐 목으로 이어지는 밤색 선과 그 위와 아래에 흰색 선이 있다. 빛이 잘 드는 산지 숲 가장자리를 즐겨 찾으며 그밖에 초원이나 잡목 숲, 버드나무가 자라는 하천부지에 서식한다. 날개를 심하게 퍼덕거리고 날며, 쉴 때는 나무 꼭대기에 않아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겨울에는 주로 풀씨를 먹고 여름에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관목이 자라는 숲에 둥지를 틀고 4~7월에 한배에 3~4개의 알을 낳으며, 새끼를 먹여 기르는 기간은 약 12일이다. 한국에서는 과거 흔했으나 현재는 여러 이유로 개체 수가 감소해 보기 드문 텃새이며 겨울에는 북쪽 개체군이 이동해 와서 월동하는 겨울철새이기도 하다. (출처:나무위키)
입 다문 명태를 보았나?
꼭 틀니가 빠진 것처럼 튀어나온 아래턱과 어슴푸레 비치는 혓바닥이 기박함을 자아낸다. 마치 유언을 남길 것만 같은 애잔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무언의 외침이 들리는 것만 같다. 허공에 둥둥 떠서는...
멧새도 종종 보았다. 참새는 군단을 이루면서 멋지게 날아오르고 내려앉는데, 특이하게 혼자 울타리에서 혼자 노는 애들을 봤었다. ‘왕따 참새’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그것이 ‘멧새’였다. 고 녀석들은 꼭 유난을 떨며 높이 날아올라서 나무 꼭대기, 혹은 아파트 끄트머리 난간 쪽에 앉는다. 세상 할 말이 많은 시샘꾼처럼... 소리를 땍땍 거리면서... 그 유난함이 ‘음소거 명태’와 대비된다. 너무 떠들어 시선을 붙잡는 무엇과 할 말이 많은데 강제로 목소리를 빼앗긴 듯한 무엇이. 왜 닮아 보일까?
꼭 한 마리씩 둥둥 떠서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는다. 때로는 엄청난 소란스러움보다 침묵이 더 시끄럽고 고통스럽다.
혼자 세상을 유영하는 무엇들이.
유난스럽고도 무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