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흰 밤'
옛 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어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달밤, 폐허, 박, 수절과부.
흰 맑고 깨끗하고 고결한 / 청승맞은 회한
흰 밤 밤을 지새우다 / 불면의 밤과 보름달
한이 서린 밤, 섧게 울던 밤
달밤이 아니다. ‘흰 밤’이다. 망그러진 옛 성 터에 만월이 떠오르는 밤. 달을 닮은 흰 박도 동그렇게 떠올라 있다. 초가집 지붕 위에. 그냥 만월도 버거운데 그거을 닮은 동그란 박한질라. 밝고 밝은 밤이 지독히 괴로워 견딜 수가 없다. 그것을 보고 있는 시인도, 상상하면서 그 밤을 그려내고 있는 나도.
어찌 감당할 수 없는 달 밝은 밤. 흰 옷을 입은 수절과부가 둥둥 떠올랐다고 한다. 한스러운 생을 마감하며. 그러니 이제 이 밤은 더 이상 달밤일 수가 없다. 날이 새도록 눈을 뜨고 하얗게 지새우는 그런 밤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가슴 애절한 ‘흰 밤’. 누군가 멀리서 서럽게 울고 있는 불면의 밤. 달만 그저 밝다. 속없는 아이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