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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따라 쓰고 싶어지는 글

이희승의 '묘한 존재'

by 나노

묘한 존재 (이희승)

사람이란 대체 묘한 존재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묘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묘하고,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얼굴이나 성미가 다 각각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인데도, 아는 체하는 것이 묘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건마는, 다 뛰려고 하는 것이 묘하다.
제 앞에 죽어가는 놈이 한없이 많은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만은 영생불사 (永生不死)할 줄 아는 멍텅구리가 곧 사람이요, 남 골리는 게 저 골리는 게요, 남 잡이가 저 잡인 줄을 말큼히 들여다보면서도, 남 잡고 남 골리려서 저만 살찌겠다는 욕심장이가 곧 사람이다.
산속에 있는 열 놈의 도둑은 곧잘 잡아도, 제 마음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 것이 사람이요, 열 길 물속은 잘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십 년을 같이 지내도 그런 줄은 몰랐다는 탄식을 발하게 하는 것이 사람이란 것이다.
요것이 대체 말썽꾸러기다. 차면서도 뜨겁고, 인자하면서도 잔인한 말썽꾸러기다. 내가 만일 조물주였더라면, 천지 만물을 다 마련하여도, 요것만은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 곧 사람이다.
사람은 묘한 존재다. 나 자신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알고도 모를 묘한 존재다.

-이희승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일조각, 1956)


학교란 곳은 묘하다. 이 세상 모든 이가 거쳐 가는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얻고 잃는 지 알 수가 없는 것이 묘하고, 절대 옳고 절대 그른 것이 없는 데도 계속 가르치는 것이 묘하고, 많이 밀어 넣어도 쏟아져 나오는 것이 묘하다. 동시에 함께 밀어 넣어도 사람마다 남는 것이 제 각각인 것도, 시간은 같아도 마음의 길이가 서로 다르게 자라나는 것도 참 묘하다.


이란 것은 참 묘하다. 한낱 종이가 생살여탈권을 갖는 것이 묘하고, 남녀노소 모두 손에 그러쥐고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이 묘하다. 몇 그램도 안 되는 것이 몇 만 톤의 양심을 대신하는 것도 묘하고, 욕심 없다던 사람들도 막상 두 눈에 가득 담으면 정신을 잃고 눈이 돌아가는 것도 묘하다. 앵앵 울던 젖먹이 어린애도 한 손에 움켜쥐면 눈물을 뚝 멈추는 것이 참 대단하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장 지폐에 흔쾌히 글을 팔 생각을 하는 것도 묘하다.



묘해서 나도 모르게 따라서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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