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수선화에게'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로움이 눈물의 근원임은 틀림없다. 혼자 우두커니 있는 고독과 적막, 숱한 고뇌와 번민은 언제나 눈물로 끝을 맺는다.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설명할 수 없어서 더 힘들고 괴롭다. 이런 말 못 할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외로움에 사무칠 만한 이유는 없다. 평범한 일상은 그저 그만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치는 고독의 이유를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이 울컥 쏟아져서 역류한 하수구처럼 덮쳐온다. 너무 엉망진창이라 어떤 감정이 먼저이고, 무엇이 마지막인지 분별하지도 못하겠다. 그러니 그저 그런 나를 멍하니 볼 수밖에 없어 망연자실할 뿐이다. 감정이 무너진 이유라도 알면 해결책이라도 보일 텐데, 어떤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참담하게. 분명 어딘가에 답이 있을 텐데 뒤엉켜서 찾을 재간이 없다. 그런 소용돌이 가운데 만난 '수선화에게'는
"사람이라서 외로운 것이고, 그러니 울지 말거라."
하며 나를 다독여주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겠는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따스했다. 때때로 적적해지면 다시 꺼내 읽고, 또 가슴을 다독이며 품어온 글이다.
시인이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마을 어귀에 매일 찾아온다고 했으니... 분명 '외로움'은 온 우주의 모든 것이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는 무엇일 것이다. 그러니 존재하는 무엇이기에, 고독은 숙명이리라. 고독을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 하루 '건듯 부는 바람'에도 쓸쓸했다면, 우리의 존재를 온몸으로 가늠한 것이라 생각해 보자.
잘 살아내고 있구나.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