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의 '손목'
손목(김영춘)
술집에 앉아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이 통해 손을 잡아가다가
눈앞의 손목이 마치 어디로 걸어 들어가는 길목 같아서
인간의 마음이 들고 나는 주택가 골목 같아서
늘 누군가의 손목을 잡고 싶어 하던
내 손목을 바라보고 있다
- <다정한 것에 대하여>, 애지, 2023
다정한 누군가는 나를 보면, 꼭 손부터 부여잡는다. 어린 시절 우리네 할머니가 그러했고, 오랜만에 찾아뵌 은사님이 그러하셨다. 형식적인 악수와 다른 '꽉 그러쥔 손'을 보면 무궁한 감정이 일렁였다. 왈칵 움켜쥐는 손은, 고상하지도 격식을 차리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정다울 수 없었다.
몇 해 전 길을 가다가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두 분의 상봉을 목격한 적이 있다. 과수원 길을 돌아 앞서 걷던 할아버지를 보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덮치듯 달려들어 두 손을 부여잡았다. 뒤따르며 걷던 나도 놀랐으니 당사자는 더 놀라셨을 터. 그 허연 머리의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댁네 어디 갔었어! 멀리 간 줄 알았잖아..."
"음. 조금 그랬어."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자니 눈물이 울컥 났다. 두 분의 친분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인사 정도 하시며 꽤 긴 시간 세월을 나누신 것 같았다. 그러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안 보이셨고, 친분이 깊지 않아 어디가서 소식을 물을 길 없던 머리 허연 할아버지는 애가 타셨던가 보다. 그러다 산책길 어귀에서 보고 반가워 내달려 오셨던 듯했다. 두 분은 그러고도 한참을 두 손 부여잡고 말씀을 나누셨다. 조심스레 옆으로 비켜 지나오면서 들었던 '댁네'라는 말이 그렇게 따숩게 들렸다.
이름도 모르는, 한 마을 어귀를 나누며 살던 얼굴 친구.
허연 머리 성성한 어르신들의 재회가 참 다정하고 애틋해 보였다. 나는 저런 반가움으로 누군가를 맞이한 적이 있던가?
온 우주에 빛이 켜질 것 같은 온기에, 지나가던 나조차도 눈시울이 뜨끈했으니.
손을 잡고 싶다는 마음은, 누군가를 환대할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슴에 품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손이 아닌 두 손목을 부여잡는 마음이라면, 기꺼이 두 손 아니 두 발을 다 내어드려야겠다.
"댁네, 어디 갔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