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코골이

김영춘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by 나노

코 고는 소리와 함께(김영춘)


하룻밤을 넘나드는 노래가 힘겹다

가라앉는 기세로만 보면 곧 사그라들어야 맞는데

더 낮은 곳에서 다시 일어서고 만다

허투루 내는 소리가 아니다

밀어 올리는 힘이 더 깊은 아래에 있어서

울울창창 감당하기 어려운 소리의 산을 이룬다

혁명의 밤이 훗날 이런 식으로 다가온다면

힘들어서 어찌 맞이해야 하나

아기의 숨소리마냥 잦아들 때도 있지만

인생의 밑바닥을 노래하듯이

그르렁 그르렁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

아, 함께 자는 동안에 코 고는 소리를 나누는 일이라니

세상의 모든 좁쌀만 한 소리들에게 화해를 청해보지만

이 캄캄한 밤중에 화해는 무슨 화해랴

그저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만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일이 나의 모든 것일 뿐이다

하하하


-<다정한 것에 대하여>, 애지, 2023.



<코골이>

이미 하던 사람은 나이 들면서 더 다채로워지고,

안 하던 사람도 기본기를 배워가는 것.


'쌕쌕' 잠든 소리는 귀엽기라도 하는데,

'드르렁드르렁' 끓어 올리는 소리는 터질까 두렵다.

'드르렁 컹컹'과 '드르렁 푸우'는 사뭇 다른 장단과 변주로, 함께 있는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행여 가셨나?

해서 두 눈 크게 뜨고 가슴팍을 보게 만든다. 한참 뒤에 다시 드르렁하면서 들썩이면 마음이 놓인다.

'끄억 끄억'은 단잠을 깨부수는 최악의 고수다. 이 소리는 참 진귀해서 다시 듣고 싶지 않다. 저녁 내내 귀신의 집에 누워있는 스산함을 느끼게 한다.


놀랍게도 이 다양한 코골이는 우리 가족들의 합창단이다. 명절날 어쩌다 같이 눕게 되면 아~주 환장한다.

이 불협화음의 계곡에 눈뜨고 있는 것은 나뿐이니. 다음날 읊조려 봐야 허공에 흩어진다. 요즘에는 각 장단의 차이가 어찌 이렇게 다른지 구별하다가, 누구와 누구의 협연이 잘 맞는지 따져보며, 이런 궁리로 새벽을 보낸다. 아마도 시인도 긴 밤을 홀로 새우며 아침을 맞았나 보다. 시인이라 시로라도 고통을 기록했지... 나 같은 사람은 혼자 폭폭하다 끝이 난다.

다음 생에 혹여 무엇으로든 태어난다면, 머리가 땅에 닿기만 해도 잘 자는 그런 존재였으면 참 바랄 것이 없겠다.


연암 박지원의 글 '공작관문고 자서' 중에도 코골이 이야기가 있다. 짧게 언급되었어도 온전히 공감해서 옮겨 본다. 이렇게 현장감 넘치듯 코골이를 살려내는 탁월함에 웃음 짓게 된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토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 듯, 빈 수레가 덜그럭거리는 듯하였다. 들이마실 때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굴었는가? “ 하는 것이었다."

* 정민 저 ‘한시 미학 산책’ 24쪽


누군가 코골이를 원망하면, 가만히 들어주자. 오죽 괴로웠으면 눈뜨기를 기다려 타박일까? 밤을 꼬박 새운 고통을 그렇게라도 위로해 주길.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온기를 나누는 환대의 몸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