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의 '시벽'
시벽(詩癖)
이규보
내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고
지위 또한 삼공에 올랐네.
이제는 글 짓는 일 그만둘 만한데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읊조리고
밤에는 부엉이처럼 노래하네.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시마(詩魔)란 놈이
밤낮으로 몰래 따라다니고
한번 몸에 달라붙고선 잠시도 떨어져나가지 않아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네.
날이면 날마다 심간(심장과 간)을 깎아 내고
몇 편의 시를 쥐어짜 내니
기름기와 진액이 다 빠져나가
살갗조차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네.
뼈만 앙상하게 남고도 괴롭게 읊조리니
이 내 모습 참으로 우습구나.
남을 놀라게 할 문장으로
천 년 뒤에 남길 만한 시도 못 지었으니
손바닥 부비다 혼자 크게 웃다가
웃음이 그치면 다시 읊조리네.
살아도 죽어도 오직 시만 지으니
이 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려우리.
고려시대 문관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문학사의 뼈대가 되는 사람이다. 최초의 서사시인 <동국이상국집>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시와 문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타고난 문인이다. 그런 이규보가 남긴 '고통스러운 창작의 성찰글'이 '시벽'이다. '벽(癖)'은 편벽된 것, 바꿀 수 없는 오래된 버릇이니, 시벽은 '시에 관한 오래된 버릇', '시 쓰는 버르장머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는 시간만 나면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이규보는 시간만 나면 시상을 떠올리고 시 쓰기를 참을 수 없었던가 보다. 참을 수 없는 버릇인 것은 같지만, 우리는 '미디어 중독'이고, 이규보는 '창작 본능'이니 사뭇 다르다. 멋진 창작 본능의 체화를 '시 쓰는 버릇'이라 지칭하니, 뭔가 모르게 부끄러움이 든다.
칠십이 넘어 벼슬도 최고에 오른 고관대작이, 꼭두새벽부터 캄캄한 한밤중까지 전전긍긍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를 쓰고 있다면?
이제 그만해도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스스로가 보기에도 멈출 수 없는 '벽'이라 부를 만할 것 같다. 이게 조소로 포장한 자랑이라 할지라도, 창작의 고통은 충분히 느껴진다. 노쇠한 몸으로 지치지 않는 '창작의 분화구'를 감당하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을 수 없는 시벽을 '시 쓰는 귀신(詩魔)'이 붙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찰떡 비유이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휴대전화 액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나처럼. 이 또한 참을 수 없으니 병이니.
날이면 날마다 심장과 간을 쥐어짜 내서 뼈와 살껍질만 남았다고 하는 고백. 자신의 처지가 웃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노후를 편하게 즐길 만도 한데, 고작 '천 년도 못 갈 시구절 한 토막'을 얻고자 전전반측하는 모습이라니. 시인의 처절한 자기 객관화와 자기만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더 돋보이는 표현이다.
지금 나의 글은 과연 몇 시간, 혹은 몇 분, 몇 초나 남을까? 글은 읽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남는 것이니, 더 자신이 없다. '천 년'을 기준으로 글 쓰는 이규보와 몇 초짜리 글을 끄적이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천 년의 작가의 고뇌와 고충은 얼마나 깊었을까?
'살아도 죽어도 시만 짓는 작가'라...
정말 멋지고 존경심이 절로 일지만, 남모를 창작의 고통과 천 년의 글귀를 짓겠다는 책임감은 가히 상상하기조차도 어렵다. 만약 환생이라는 것이 있어서, 약 천 년 전의 이규보가 이 땅에 태어났다면, 분명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천만 독자를 거느린, 월클 작가로!
멈출 수 없는 창작의 본능을 어찌 드날리지 않았겠는가?
환생한 이규보의 현생 작품을 만나고 싶다.
어찌 보면, 이미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