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말부부

떠났다. 내가...

by 엉클써니

'일단 살고 봐야지.'




한동안 우스개 소리로

중년부부 중 주말부부인 사람들은

전 생애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서로에 대한

젊은 시절의 열정이 불타오를 리가 만무하고,

각자 중년의 발달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여러 모양의 책임에 짓눌려 있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개인의 나약함에 죄책감을 뒤집어 씌우는

사회의 프레임에 버둥거리며,

더 이상 가슴 떨리는 꿈 따위는 없는 것인가 라는

깊은 자기 연민에 절망할 때...


그때는

일말의 숨구멍이 되어줄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절실하다.


이럴 때,

부부 중 한 명의 직장문제로

주말부부가 되는 경우,

각자 숨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생기면,

서로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공간도

상쾌하게 환기가 될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도 반추해 보며

남은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볼 수도 있게 된다.


수년 전 그러한 이유로

나는 섬마을 학교로 자진하여 전근을 갔었다.

그때 나는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준비되지 않은 통보에 불과했다.

남편은 남겨진 자로서 한동안 힘들어했다.


그 당시 나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듯한

답답함에 질식할 지경이었고,

날마다 우울과 분노의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불길이

나를 산 채로 태워버릴 기세였다.


'나는...

살고 싶었다.'




섬마을 교사로서의 생활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사람보다는 벌레나 곰팡이의 주거지로

더 적합했던 관사,

혼자서 전 학년, 전교생의 학업을

다 책임져야 했으며(전교생이 적다 보니...),

교사 수가 적어서 해도 해도 끝이 없어 보이는

행정업무 등...


하지만,

나는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좀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밝고 순박했던 학생들과의 생활,

(25년간의 교사생활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 주었던 신부님, 수녀님들,

학교 청소담당 여사님,

급식실 조리사 어머니들,

존경스러웠던 화개사 주지스님,

부족한 내 편이 되어 주었던 동료들...


초록의 들과 산,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바다,

내 사랑 행복이와 희망이(강아지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민가의 닭들,

잊어버릴만하면 나타나던 토끼 두 마리,

길가의 고양이들,

벚꽃, 복숭아꽃, 매화,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우리 부부 사이에도

무언가,

'미학적 거리'가 생긴 듯했다.


뜨겁지는 않지만 냉담하지도 않은

그 무엇...




교정에 핀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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