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내게 배정된 관사는 2층 건물의 2층, 제일 끝에 있었다. 파란색 철제 현관문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오른쪽으로 돌리니 철컥하며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려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는 내가 이렇게 망연자실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미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굳이 인지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관사 전경
바깥에서 본 관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했다. 뒤쪽으로는 아담한 화개산이 둘러싸고 있고, 지대가 높아서 앞으로는 먼바다가 보이는 그런 아름다운 배경 덕분인지 건물이 아담하니 정감 있어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날씨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그날은 햇살이 정말 따스한 봄날이었다. 하지만 관사로 들어서는 현관문 – 유리로 된 현관문은 오른쪽 문과 왼쪽 문이 서로 수평이 맞지 않은 상태였다 – 을 연 순간, ‘아! 뭔가 불길하다.’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애써 침착한 척하며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먼저 보였다. 그다음 눈길이 간 곳은 1층 복도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들이었다. 버린 것인지 잠깐 놓아둔 것인지 알 수 없는 조그마한 책꽂이도 쓰레기들 사이에 함께 있었다. 복도 벽과 천장은 떨어져 나간 페인트 자국으로 너덜너덜했으며 바닥은 말 그대로 지저분했다. 아마 이 건물이 생기고 난 이후에 빗자루질 한 번 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내가 너무 지나친 것일까?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계단 중간 참에 있는 창문은 뿌연 먼지로 바깥 풍경이 흐릿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계단을 마저 올라가 2층에 있는 나의 관사 앞에 도착했다. 파란색 철제 현관문 – 나중에 나는 초긍정(?) 마인드로 이 파란색 현관문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시키지 않느냐며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산토리니에 가 본 적도 없다. – 을 여는 것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일이 될 줄이야.
관사 복도
일단 관사 내부는 1.5룸 형태였다. 현관문을 열면 조그마한 거실 겸 부엌이 보이고, 오른쪽 편에 철제문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화장실이었다. 현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미닫이문을 열면 조그마한 방이 나오고, 뒤쪽으로는 나름 작은 베란다도 있어서 세탁실로 사용이 가능했다. 심지어 베란다에는 창고로 쓸 만한 조그마한 공간도 있었다.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가전, 가구, 예를 들어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TV, 옷장, 식탁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 이점은 칭찬할 만하다. 심지어 가전, 가구 모두 거의 새것들이었다.
문제는 방과 화장실이었다. 방에 들어서니 천장에 지름 1미터가량의 구멍이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작년 여름 장마 때, 옥상 방수가 노후화돼서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때 천장이 심하게 물에 젖어서 일부 파손된 부분을 도려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보수는 끝이 났나 보다. 옷장을 움직여 보니 옷장 뒤쪽 벽에는 새카만 곰팡이가 본인들이 이 방의 주인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벽면 전체를 차지하며 번성 중이었다. 다음은 화장실. 화장실을 살펴보니 다행히 변기와 세면대는 최근에 새것으로 교체한 듯했다. 문제는 벽면의 타일이 여기저기 파손되어 있었다. 방 천장에 뚫린 커다란 구멍과 타일이 떨어져 나간 화장실 벽, 한방에 나를 주눅 들게 한 곰팡이 무리들, 그리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불량한 위생 상태로 인해 나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되었다.
교무실에서 바라 본 전경과 내 자리
물론,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관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무슨 가혹한 현실이란 말인가? 나는 좌절했다. 내일이 개학이라 오늘 청소하고 개학날을 준비하려고 콧바람을 날리며 교동도로 향했던 나는, 집에서 나온 지 불과 2시간 여 만에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나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따뜻한 봄 날씨였던 것 같은데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길이길이 빛내야 할 삼일절, 하지만 그날 이후 조금은 다르게 기억될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