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뒤는 화개산이라는 작고 어여쁜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래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화개사라는 절이 나온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고즈넉하고 정갈한지 옷깃을 바로 여미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절이다. 아마도 엄하고 깐깐하시다는 주지스님의 명성 탓인지도 모르겠다.
화개사 가는 길에 바라보는 바다
거의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학교 관사 뒤로 연결되는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하곤 했다. 나만을 위해 내어놓은 것 같은 오솔길을 걷다 보면 바다를 내 옆에 끼고 걷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바다 풍경에 취해 조금 더 걸어가면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화개사를 만나게 된다.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은 속세를 떠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곤 했다. 어쩌다 저녁식사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면 발길은 다시 화개사로 가는 그 길로 향해 있었다. 저녁시간에 보는 바다 풍경은 일몰의 태양으로 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그럴 때면 왠지 조금은 쓸쓸해졌다.
어찌 됐건 나는 절에서 한 번도 스님과 마주친 적이 없어서 내심 궁금해하던 차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전해 듣게 된 화개사 주지스님에 대한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우선 비구니 스님이라는 것, 그 절에서 주지 스님 혼자만 기거하신다는 것, 그리고 무서운 분으로 동네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혹시라도 법당 앞에 앉아 있다가 스님에게 한소리 듣게 되지 않을까 내심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화개사로의 산책은 계속되었고, 어느 날 드디어 주지스님과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학교 행사가 있어서 조금 이른 퇴근을 했고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 화개사로 향했다. 평소처럼 법당 앞 계단참에 앉아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스님이 안에 계셨었나 보다.
"들어왔다 가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법당 계단참에 앉아서 보는 풍경
나는 익히 무서운 분이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조금 긴장한 마음으로 비척비척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스님은 나에게 앉으라고 하시며 차를 한 잔 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당황한 마음에 내가 요 밑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다 하며 신분을 밝히고, 잠깐 산책 나왔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서 내심, 절에서 스님이 차를 주시겠다고 하니 녹차나 뭐 그 비슷한 것을 주시겠지 하였다.
스님은 캡슐커피를 주셨다. 잔을 내밀면서 말씀하셨다.
"캡슐이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네. 얼른 마셔 없애야겠어요."
나는 왜 이 말에 웃음이 터져서 긴장이 확 풀렸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한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만남이었지만 스님과는 꽤 많은 대화를 했다. 스님은 60대이며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셨다. 이듬해 퇴직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스님도 퇴직을 한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타지에서 포교활동을 하시면서 그동안 무척 고생이 많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깐깐하고 엄격하게 절을 관리하셨기에 화개사가 이토록 정갈하고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님은 주말에 오는 단체 관광객들 중에서 예의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섭게 불호령을 내린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원칙과 질서를 지키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는 그 모습이 경이롭다고 할까, 쓸쓸하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내다본 법당 문 밖에는 몇 백 년이 되었다는 보호수 소나무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