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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해원 Feb 26. 2024

실패의 경험 극복하기, 뜨개(2)

방 안 가득 쌓여가는 귀여운 성취들

 뜨개구리란 무엇인가. 외국 뜨개 디자이너의 Frog(개구리)라는 도안으로 만든 뜨개 인형으로, 뜨개구리라는 말은 뜨개+개구리의 합성어이다. 언뜻 보면 징그러운가 싶은데 또 보면 볼수록 귀여운 게 뜨개구리의 매력이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뜨개구리 사진을 보다 보니, 직접 만든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다며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한테는 저런 걸 선물해 줄 사람이 없으니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내가 코바늘 밖에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검색창에 ‘뜨개구리 코바늘로 뜨는 법’을 쳐봤다. (되겠냐고...) 어쩔 수 없었다. 대바늘이랑 다시 맞짱을, 아니, 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일단 뜨개 도안 사이트에 가입해서 도안부터 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구입했으면 한글 번역 도안이 나와서, 덕분에 도안을 한글로 볼 수 있었다. 물론 도안이 한국어로 쓰여 있는 것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별개였. 재료들 주문했다. 실은 가지고 있던 실을 쓰기로 해서, 인형 눈과 팔다리에 넣을 철사,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바늘을 샀다. 조금만 사려고 했는데 뜨개는 담다 보면 장바구니가 흘러넘쳐서 딱 무료배송 금액만큼만 사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이쯤 되니 물욕이 없던 과거의 내가 전생 같다.


 어릴 적 실패의 기억이 꽤 강렬했는지 내 뇌는 ‘뜨개'라는 단어를 ‘내가 못 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들로만 연결했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뜨개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라고 생각해 왔다. 배송 중인 택배를 기다리면서도 기대와 걱정, 불안함에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먼저 대바늘 기본 코 잡는 법과 겉뜨기, 안뜨기를 먼저 연습했다. 바늘 하나로 한 손으로 뜨는 코바늘과, 바늘 두 개를 양손으로 잡고 하는 대바늘은 뜨개를 하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코바늘은 뜨개를 할 때 매듭을 지어서 코를 만드는 느낌이라면 대바늘은 정말 직물을 짠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바늘로 뜬 편물은 도톰하고 힘이 있는데, 대바늘은 같은 실로 떠도 훨씬 얇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편물이 만들어진다. 어릴 적 봤던 만화나 영화 같은 데서 외국 할머니들이 조명이 은은한 방 안에서 고양이와 함께 벽난로 앞의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항상 대바늘 뜨개를 하고 계셨다. 고모할머니께서 선물해 주신 인형 옷도 역시 대바늘로 만든 옷이었다. 그래서일까? 코바늘은 명랑하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데 대바늘은 포근하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 뜨개구리는 초급자가 곧장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은 난이도의 인형이었다. 나는 왜 항상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에 끌리는 걸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결국 뜨개구리 한 마리를 완성해 냈다. 내가 해냈다! 왜 그동안 지레 겁을 먹고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나는 내 생각보다 높이 뛸 수 있었는데. 뜨개와 함께 하는 우물 밖의 세상이 이토록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걸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시도해 볼걸. 


 뜨개를 하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자주 온다. 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 같은 중차대한 결정은 아니더라도 뜨개를 할 때의 나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제대로 뜬 것 같은데 코가 하나 부족하거나 남을 때. 에이~ 숫자를 잘못 세었겠지, 하고 일단 현실을 부정해 보지만 다시 세어봐도 잘못 뜬 게 맞을 때. 그럴 때 지금까지 뜬 걸 푸르고 다시 뜨느냐, 덮어놓고 지나가느냐 고민에 빠진다. 처음엔 무조건 푸르고 다시 했지만, 지금은 점점 요령이 생겨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으면 한 코 늘려 뜨거나 줄여 뜨면서 수습을 한다. 고백하자면 아직도 대바늘 뜨개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할 때 꼭 완벽히 이해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외우면 된다. 공식을 외우듯이. 하지만 이해의 부족은 곧 문제해결 능력의 부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잘못 뜬 걸 수정해야 할 때 전부 풀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다. 언젠가 대바늘로 스웨터나 조끼도 떠보고 싶은데, 중간에 틀린 걸 발견했을 때 수정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우물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면 도전해 볼 것이다. 물론 재료비와 노동력과 완성도를 생각하면 완제품을 사서 입는 게 여러모로 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겐 화폐의 발달로 분업이 가능해지면서 자급자족할 때보다 질 좋은 제품을 쓰게 된 역사가 있지 않은가.


 자고로 착한 아이는 성실해야 하고, 훌륭한 사람은 바빠야 하는 법. 착하기 위해 성실한 아이였던 나는 훌륭하기 위해 바쁜 사람이 됐다. 하지만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도 그 끝에 남는 건 뿌듯함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성실하게 살아버린 나 같은 사람이 그 모든 인정 욕구를 버리고 느긋해진다는 건, 스크루지 영감이 하루아침에 기부왕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비현실적인 일처럼 보였다. (…) 내 성실 강박증과 인정 욕구와 조급증을 치료해 준 건 뜨개다. - 서라미, <아무튼, 뜨개> 중에서


 대바늘 뜨개를 하면서 무엇보다 힘을 빼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항상 여유가 없었다. 할 거면 일단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럴 테고, 그렇게 살아왔을 테다. 실패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힘을 빼고 살 수 있을까. 열심히 살라고, 노력하라고만 해서 평생을 빡빡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말을 들으면 허탈하고 허무할 수밖에. 하지만 뜨개를 하며 느낀 건, 여유는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이도 필요 없다. 그냥 다음 바늘이 들어올 만큼의 여유면 된다. 그래야 한 단 더 떠나갈 수 있을 테니까. 아직 삶을 많이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인생도 뜨개랑 비슷하지 않을까. 내 삶의 품이 늘어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아직은 그게 어려워서 내 손땀은 여전히 작고, 들어간 힘이 고르지 못해서 완성한 편물이 우글거릴 때도 많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뜨개를 하며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힘을 빼는 법도 차차 알게 되겠지.


 저는 언젠가부터 뜨개를 할 때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을 떠올립니다. 뇌에 갇혀 소동을 일으키던 무수한 생각이 손끝에서 나와 가느다란 바늘 위를 줄 맞춰 걷는 장면입니다. 뜨개는 어려움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답을 주지도 않지요. 그저 내면을 질서 있게 할 뿐입니다. 손끝에서 바늘을 타고 걸어 나온 생각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잊게 해주고,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집중할 힘을 주는 것이 뜨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랬으니까요. 해결해야 하는 일에 용기 내어 부딪친 일, 소모적인 의구심을 미련 없이 털어버린 일은 모두 뜨개를 시작한 뒤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서라미, <아무튼, 뜨개> 중에서


 마음을 조율하고 싶을 때, 나는 실과 바늘을 잡는다.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한코 한코 만들어 나갈 때면 소란스럽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뜨개를 마친 편물에 겸자로 솜을 채워 넣어 인형으로 완성하는 순간, 폭신한 구름같은 솜을 가득 채워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면 이제는 괴물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보다 삼신할머니에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나는 솜을 조금 욕심내서 집어넣어 인형을 통통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통통한 아기와 통통한 고양이와 통통한 인형만큼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존재가 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고 귀엽고 폭신하고 따뜻한 성취들이 방 안에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여가고, 나에게 말해준다. 너는 할 수 있다고. 해낼 거라고.


나는 할 수 있다!! 해낼 거다!!



뜨개를 하며 알게 된 점

약간은 힘 빼고 살아가기

여유는 찾아오길 기다릴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어렸을 때 못 했던 게 지금 하면 되기도 한다.


뜨개,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성취감 드는 취미가 필요한 분

차분해지는 취미가 필요한 분

귀엽고 부드럽고 포근한 걸 좋아하는 분

손목과 관절이 건강한 분


사진: UnsplashMarina Ermakova

뜨개인형: 로빈, <강아지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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