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원 Mar 11. 2024

순간의 아름다움, 뮤지컬(2)

관극의 기쁨과 슬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연의 재미와 멋짐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내가 뮤지컬 보는 걸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고 다니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높은 확률로 월급공연 보는 데 쓰는 돈 많은 사람 취급받거나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공연은 지금 이 순간 무대 위의 배우들과 무대 밖의 스태프들과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날 같은 공연을 진행하더라도 반복적인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같은 배우들이 같은 스태프들과 같은 무대에 올라도 어제의 공연과 오늘의 공연은 같을 수 없다. 그날의 애드리브가 있을 수 있고, 공연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행동이나 대사의 디테일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공연은 날마다 새롭다.


 이렇게 같은 공연이라도 매번 다르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내가 못 본 날 공연이 엄청 좋았다고 난리가 거나, 반대로 내가 보러 간 날 대사 실수나 음향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공연 기간이 끝나고, 내년이나 내후년에 해당 극이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이전과 완벽하게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 캐스팅이 바뀌고, 공연장이 바뀌고, 제작진이 바뀌고, 연출이나 번호나 대사가 바뀌면서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공연과는 또 달라진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폐업했다가 다시 오픈한 단골집에 익숙한 맛을 느끼고 싶어 찾아왔는데 음식 맛이 예전과 달라져린 걸 기이라 쓸쓸해진다. 그러니 볼 수 있을 때 열심히 볼 수밖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내 취향의 작품을 내가 공연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시기에 한다는 것은 새삼스럽지만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자신의 역할에 온 힘을 다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의 감동 때문이다. 연락 두절된 조원들, 엉망진창 자료조사,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PPT, 내가 맡은 업무도 아닌데 나에게 떠넘기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은 정녕 협력하며 살 수 없는 존재인지 의심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공연은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인간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여 만들어낸 긍정적 결과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무대 안팎에서 배우, 앙상블, 오케스트라, 스태프 등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질 때, 그들의 움직임과 화음을 보고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사실 1열에 앉는 것도 좋지만, 조금 뒤로 빠져서 무대 연출과 배우들이 시야에 한꺼번에 들어오도록 보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1열에 앉을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불행하게도 공연장은 영화관처럼 쾌적한 단차와 시야를 가지고 있는 곳이 드물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인원을 무대와 가까운 위치에 수용하려다 보니 좌석 간 거리나 단차, 시야가 엉망인 경우가 많다. 어떤 좌석은 배우가 신발을 안 신고 나오거나 심지어 바지를 안 입고 나와도 모를 만큼 무대 일부가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좌석을 시야제한석으로 지정해서 다른 좌석에 비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양심적인 회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샤롯데씨어터, 대학로 TOM 1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을 좋아한다. 세 곳 모두 어느 자리에 앉든 크게 나쁘지 않은 편이고 샤롯데씨어터는 음향이, 대학로 TOM 1관은 단차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은 시설과 분위기가 좋다. 특히 공연을 보러 가면 화장실 줄을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강홀은 화장실이 넓고 쾌적해서 정말 마음에 든다.


 내 코어 힘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대부분의 공연장 의자는 사람이 두세 시간 동안 앉아있을 수 있도록 설계된 형태가 아닌 듯하다. 사람마다 불편해하는 의자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자유극장, 아트원씨어터 1관 1층, 예스 24 스테이지 1관 2층에 앉았을 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 예스 24 스테이지 1관 2층은 의자는 불편해도 시야는 좋아서 티켓팅을 할 때마다 시야와 허리 중 무엇을 포기할지 고민하게 된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더욱 유명해진 전미도 배우님과 정문성 배우님이 출연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티켓팅 정말 전쟁 같았는데, 당시 도저히 1층 좌석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2층을 선택했다. 공연을 보면서 울고, 보고 나와 허리가 아파서 또 울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가는 나는 공연 시간과 이동시간까지 합하면 거의 8시간을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데, 다음날 하루는 거의 누워있으면서 주인을 욕하는 허리를 부여잡고 달래야 한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이게 취미인지 고문인지 돈 내고 스스로를 고문하는 게 취미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보러 서울에 갈 때면 늘 설렌다.


 그러나 뮤지컬이 취미인 사람들의 가장 큰 고충은 무엇보다 티켓팅일 것이다. 모든 공연에는 좌석 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면 된다'는 말은 몰라도 '하면 는다'는 말은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슬프게도 티켓팅은 아무리 해도 실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 한정된 자원을 그보다 많은 수의 인간이 욕망하다 보니 티켓팅은 해당 좌석이 이미 선택되었거나 다른 고객님이 결제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다 끝나기도 한다.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좌석들...

 불법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되팔며 돈을 버는 사람들도 티켓팅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일보다 조금 더 건실한 직업을 찾길 바다. 뮤지컬 티켓팅은 오후 2시가 가장 많은데, 문제는 오후 2시는 많은 사람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수업을 듣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티켓팅 직전 사무실로 전화가 오거나 옆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까 봐 '잠시만 혼자 있게 해 주세요'라고 쓰여있는 종이를 이마에 붙여 놓고 싶을 때도 있다. 정말이지 뮤지컬 덕후가 되기 전에는 공연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리가 없어서 못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사후세계는 믿지 않지만 만약 내가 죽은 후 유령이나 귀신이 된다면 절대로 성불하지 않고 구천을 떠돌다가 대학로에 눌러앉을 것이다. 그러면 티켓팅 안 하고도 공연을 볼 수 있겠지..!


사진: Unsplash의 Denise Jans

이전 15화 순간의 아름다움, 뮤지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