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해원 Mar 04. 2024

순간의 아름다움, 뮤지컬(1)

우린 새로운 세상으로 갈 거야, 준비됐어?

 헤밍웨이처럼 여섯 단어로 사람을 울리는 이야기를 쓰진 못해도, 나는 두 줄로 나를 소개할 수 있다.

 좋아하는 것 : 집에 가기
 싫어하는 것 : 귀가를 방해하는 모든 것

 하지만 이런 나를 강제로 밖에 나가게 만드는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뮤지컬이다. 당연하다. 밖에 안 나가면 못 보니까. 영화는 전국의 영화관에서 똑같은 영화를 내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지만, 뮤지컬은 한두 달 전에 미리 티켓을 잡아놓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만 볼 수 있으니 지방에 살고 있는 내가 공연을 보러 서울에 가려면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했던 이후로 제작사에서 가끔씩 녹화해 둔 공연 영상을 온라인으로 중계를 하고 있어 집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게 되긴 했다. 그럼에도 굳이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가는 건, 영상으로는 공연장에서의 음향과 현장감을 완벽히 재현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인 중계를 보고 나면 ‘아, 이거 재밌네. 나중에 꼭 공연장에서 보고 싶다.’하고 아쉬워하게 된다.


 나는 어릴 때 디즈니의 <라이온 킹> 비디오테이프를 고장이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많이 보았는데, 과장이 아니라 정말 100번은 넘게 봤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열심히 보던 어린이가 영화 <헤어스프레이><하이스쿨 뮤지컬>을 보던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 뮤지컬에 푹 빠진 뮤지컬 덕후가 된 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을 처음  건 대학생 때였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계속 지방에 살았고 주변 사람 중 공연 관람이 취미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공연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인생 처음으로 뮤지컬 <베르테르>를 보면서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와 춤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게 얼마나 감동적이고 가슴 벅찬 일인지 처음 알았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으레 그렇듯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정도 기회가 되면 공연장에 갔다. 좋은 자리가 아니어도, 무대에서 한참 떨어진 구석진 자리였어도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본격적인 뮤지컬 덕후가 된 것은 직장인이 된 이후였다. 우연한 기회로 뮤지컬 <레베카>를 보게 되었는데 당시 공연장이었던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지금의 신한카드홀)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조금 먼 편인 데다가 내 자리는 1층 17열 구석이었다. 블루스퀘어 1층이 22열까지 있으니, 무대보다 객석 출구와 더 가까운 위치였다. 오랜만에 보는 뮤지컬에 조금 낯선 기분으로 공연장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뚫고 객석 저 멀리에 앉아있는 내 귀에 와서 화살처럼 꽂혔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누군지를 느라 눈을 바쁘게 움직였는, 목소리의 주인은 당시 댄버스 역을 맡았던 김선영 배우님이었. 그 나는 글자 그대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공연이 끝난 후 약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배우님에 대해 계속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뮤지컬 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다. 당시에 느꼈던 날카롭고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했던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는데 그날이 배우님의 마지막 공연이어서 너무 아쉽게도 더 보지 못했다. 그 후로 뮤지컬 레베카는 여러 번 돌아왔지만, 김선영 배우님의 댄버스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정말 악마에게 그림자라도 팔고 싶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영원한 생명' 넘버가 유튜브에 영상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영상을 볼 때마다 그때 공연을 조금만 일찍 보았더라면 하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렇게 김선영 배우님의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뮤지컬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덕후들이 다 그렇겠지만.


 보통 ‘뮤지컬’ 하면 등장인물이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하거나 대사에 음정을 섞어 말하는, 미디어에서 종종 희화화되곤 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귀족들이 파티에서 부채를 들고 춤을 추고, 가난한 사람들이 술집에서 사람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춤추는 장면들도 물론 있지만 사실 뮤지컬은 밝고 희망찬 내용보다 어두운 내용의 극이 훨씬 많다. 심지어 총소리, 자해, 자살, 폭력, 학대 등 자극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리는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을 하는 공연도 많다. 대극장 라이선스 뮤지컬 대부분은 주인공이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끝나고, 중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도 주변 인물이 죽은 주인공을 그리워하거나, 주인공이 이미 죽은 채로 시작하거나, 주인공이 살아있더라도 사람들에게 죽었다고 여겨지는 상태로 살아가며 끝나거나, 주인공이 살아있는 상태로 끝이 나긴 했는데 공연장을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죽음이 암시되어 있다거나 하는 식이다. 왜일까? 불행한 삶을 산 인물이 극작가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는 것인지, 아니면 분노나 절망 같은 감정이 기쁨과 행복 같은 감정보다 눈앞에서 보기에 더 격정적이어서인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창작물에 한해서는 믿음소망사랑 중에 최고는 망사랑(망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다른 사람들 연애 이야기를 보며 도파민을 채우는 데, 왜 비극적인 이야기 좋아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내 대답은 이렇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음, 재밌었다!’하고 덮게 되지만, 슬프고 절절하게 끝난 이야기는 머리와 가슴을 쥐어뜯으며 계속 곱씹게 돼서 좋아한다고. 나는 뮤지컬을 보면서 내가 과몰입 오타쿠라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공연을 보고도 동생은 '재밌네!'로 끝나지만, 나는 공연을 보고 나오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연의 원작 소설이 있다면 읽어보고, 관련 내용과 남아있는 영상들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은유와 상징을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렸다. 게다가 나 같은 과몰입 오타쿠 유형의 인간에게는 희극보다 비극이 더 훌륭한 장작이었다.

 

 지만 이건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며 기쁨을 느끼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와는 좀 결이 다른 것이, 나는 그들의 비극을 기뻐하기보다는 우리 애들… 행복해야 해….하면서 불행한 결말을 맞은 이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적고 보니 정말 악취미 같지만, 솔직히 시시덕거리고 알콩달콩한 걸 보는 것보다 망한 사랑 때문에 절절매고 속 끓이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는 쪽이 더 재미있지 않나?

나만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나도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쪽을 더 선호하긴 한다. 안 그러면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불행한 결말도 나쁘지 않다. 사실 완벽한 결말, 아름다운 결말이 아닌 파국으로 치닫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끝나는 결말이도 공연을 보고 나오면 배우들의 성량과 공연장의 조명과 음향에 압도되어서 속된 말로 뽕 맞았다고 표현할 정도의 흥분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래서 음악이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하는 걸까 싶다. 그렇게 공연을 보고 나면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열심히 일해야 티켓값을 벌 수 있으니까.


사진: Unsplash의Gwen King

이전 14화 실패의 경험 극복하기, 뜨개(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