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비 Jul 02. 2023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진실은?

판사는 신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은 같은 죄를 지어도 무죄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같은 죄를 지어도 유죄라는 자조 섞인 말이다.


그런데 정말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무죄가 갈린다는 말이 사실일까? 여기에 대한 답변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① 판사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② 변호사는 내가 하여야 할 어려운 일들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전관예우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도록 하겠다).


2021년 기준 전국지방법원의 판사 1인당 사건 수는 542.2건이라고 한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인생이 걸린 중대한 일일지 몰라도 재판을 하는 판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수 많은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판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등 입법론이 거세게 불고는 있지만, 어쨌든 지금 재판을 받는 당사자로서는 내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는 그저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일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즉 판사는 신이 아니고 수 많은 업무에 치여 사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판사님에게 모든 사건을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노력을 기대할 뿐이지, 사건의 실체를 (내가 주장하지 않아도) 알아서 파악하고 (내가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럼 이제 판사의 입장에서 "칼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특수상해"라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두 사람(A, B)의 주장을 들어보자. 차이점이라고는 한 명(A)은 돈이 많은 재력가여서 능력있는 변호사를 선임한 반면에, 다른 한 명(B)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아무런 변호 의지가 없는 국선변호인을 선정받아 재판에 임하였다는 것뿐이라고 가정하자. 다음은 가상의 상황이다.


A의 변호인의 주장 : "특수상해"는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으로 상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피고인(A)이 칼로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변호인이 확보하여 제출한 당시 CCTV를 보면 피고인은 칼 자루를 가지고 피해자의 머리를 툭툭 쳤을 뿐이다. 대법원 판례는 칼 자루를 가지고 툭툭 친 행위에 대해 해당 칼을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례와 이번 사건을 비교하여 보더라도 이번 사건은 강도가 약하면 약하였지 더 강하였다고 볼 수 없다. 그 밖에 CCTV 사각지대에서의 피고인 행동에 대해서는 사실 판단이 어려우나, 검사가 제출한 피해자의 상해진단서를 보면, 피해자는 어떠한 자상도 검출되지 않았으며 피해자가 입은 피해라고는 타박상뿐이고, 그 타박상도 칼자루와 같은 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의 주먹에 의한 상처로 보인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담당 의사를 증인으로 신청한다. (증인으로 담당 의사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단순히 사람의 주먹에 의하여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상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함) 분명하지 아니할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에 따라 재판하여야 하는 원칙상 본 사건의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피고인의 단순 주먹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특수상해'로 볼 수 없다.

다음으로, '상해'가 성립하는지를 검토해보겠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는 비록 전치 3주 소견을 받기는 하였으나, 유사 사례들을 검토해보면 자연 치유가 가능한 단순 상처라고 할 것이어서 법상 '상해'로 의율할 수 없다. 실제로 피해자는 병원 내원 후 다시 해당 병원에 내원한 기록이 없고, 변호인이 확보하여 제출한 피해자 회사 동료의 진술서에 따르더라도 피해자가 해당 사건 후 고통을 호소하거나 하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 바도 전혀 없다. 따라서 본 사건은 특수상해가 아니라 단순폭행으로 의율하여야 한다.

그런데 피고인은 얼마 전 피해자와 5백만원을 주고 합의를 한 사실이 있다. 단순폭행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공소기각 판결(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결의 일종)을 선고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더불어 피고인이 얼마나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였는지, 선처를 요청하는 직장 동료, 가족, 이웃주민들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피고인의 자필 반성문도 제출한다. 더불어 피고인의 헌혈 이력, 봉사활동 경력 등도 함께 제출한다.

=> 재판부는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한다.


위 사건에서 변호인은 특수상해의 구성요건인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의 사용, '상해의 발생' 모두를 증거를 통해 반박하였고, 피해자와 적극적인 합의를 하여 단순 폭행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벌죄 법리를 활용하여 결국 피고인의 전과 발생 우려를 말끔히 해소한 성공적인 사례이다. 다음으로 B의 사례를 살펴보자.


B의 주장: (칼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사실을 인정하냐는 검사의 질문에) 예 인정합니다. (검사가 제출한 피해자 상해진단서에 대해 의견이 있냐는 물음에) 특별히 없습니다. (피해자와 합의를 하였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피해자 연락처를 알지 못해 합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더 할 말이 있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잘못했습니다. 반성합니다. 선처해주시길 바랍니다.

=> 재판부는 특수상해 혐의로 유죄를 선고하되, 1년의 징역형을 선고(집행유예 3년)한다.


단순하게 구성한 사례이기는 하나, 유능한 변호사의 조력 유무에 따라 결론이 180도 달라진 상황이다. 위 두 사례는 분명히 '유전무죄, 죄'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격무에 달리는 판사에 감정이입을 해보았을 때, 판사는 A를 특별히 예뻐해서 위와 같이 판결한 것일까? B가 A의 변호인이 했던 행동과 같이 자신에게 유리한 사항을 적극 진술하였다면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앞서 말했듯이 판사는 신이 아니고, 변호사는 의뢰인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해준다는 점으로 인해 이와 같이 다른 결론이 나온 것이지, 단순히 A가 정말로 돈이 많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선처해준 것으로 오해할 일은 아니다(판사는 A의 재산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살면서 아껴서는 안 되는 돈이 변호사 비용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유능하고 의욕있는 변호인일수록 의뢰인을 위해 판례법리의 분석, 검사 주장의 맹점에 대한 공격, 각종 증거의 수집, 피해자와의 관계 등 의뢰인이 유리하도록 법의 테두리 내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변호할 것이다. 법원은 그렇게 도출된 주장의 타당성을 놓고 판단을 하는 것이지, 피고인이 돈이 많냐 적냐는 관심 밖이다(오히려 피고인이 불우한 상황에 있다는 것은 선처의 요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돈 없는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신이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어떤 증거들을 수집하여야 하는지, 전체적으로 재판 전략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판사는 신이 아니고, 변호사는 돈을 받고 위 일들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  분명한 건, 변호사 비용을 많이 지출하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그렇지 않으면 변호사 비용을 지출할 이유가 없기는 하다)


이러한 현실이 정의일까? 대안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2023. 7. 2.(일)

매거진의 이전글 피해자가 판사의 가족이어도 그런 재판을 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