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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ㅏ Sep 29. 2023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토끼

EP8: 우울한 토끼 


 루나가 눈을 떴다! 초원은 광활한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황금빛 태양과 사라지지 않는 무지개가 곳곳에 피어있는 형형색색의 꽃들을 비추고, 정체불명의 곤충들은 이 꿈의 세상에서만 존재할 것 같이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언덕 경사를 오르니, 이끼가 가득하지만 누군가 만든 것 같은 계단과 난간이 보였다. 루나는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갔다. 정상에 오르니 평평하고 넓어서 주변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집이 보였다. 정돈된 마당에서 집 주인의 깔끔한 성격이 보였다. 루나는 대화가 통할 거 같은 생명의 존재를 기대하고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 계신가요?”

 “누구시죠?”

 “지나가는 루나에요.”


 문 안의 목소리가 의심의 목소리를 지우진 못했지만, 기꺼이 문을 열어줬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비춘 존재는 토끼였다.


 “요정님이 오셨네요!”

 토끼는 밝은 모습으로 루나를 맞이했다.

 “말하는 토끼! 내 친구 엘리스한테 들은 적 있어. 이번 꿈에서 만나게 됐네.”

 “하하 저는 그 토끼는 아니지만, 손님을 반갑게 맞이할 줄 아는 토끼죠.”


 루나는 토끼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내부도 깔끔했지만,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인테리어였다.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와 쿠션, 커피 테이블, 구부러지는 티비, 거대한 스피커 등 고급 제품과 최신형 전자제품이 있었다. 소파와 쿠션은 토끼의 취향이 반영된 듯 당근과 상추 모양으로 만들어진 기구들, 커피 테이블은 토끼의 발자국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벽장에는 토끼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걸려있다. 한쪽 벽장에는 트로피와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장에는 토끼의 자서전과 에세이,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이 정돈되어 있었다. 티비와 스피커에는 토끼가 관련된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토끼는 매우 겸손했다. 자기 자랑이 없었고, 자기 관리와 매너가 완벽했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배려가 묻어 있었고, 과하지 않은 유머와 대화 주제를 적절히 섞었다. 루나는 토끼가 이렇게 성공한 건 능력이 바탕이 되어있고, 자신도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것을 느꼈다. 즐거운 대화가 오래 이어가다가 루나는 무심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참으로 행복한 토끼네. 성격도 엄청 좋고, 능력도 좋잖아. 아마 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토끼일 거야.”

 토끼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곧 다시 계속 보여주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루나는 짧은 순간 토끼의 표정을 읽었다.



“행복한 토끼요? 그럴 수 있죠. 이런 성취를 가진 토끼는 별로 없으니까요!”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하고 노력했지.”


토끼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고, 루나도 적절히 대답했지만, 대화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젠장! 맞아요! 사실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고 모든 걸 다 가진 토끼로 보이겠죠. 방송에서는 항상 유쾌하고 재밌는 모습만 나와요. 사적인 시간에도 항상 자기관리하고, 노력하고, 매너 있고. 그런데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요? 겉으로는 행복하고 즐겁고 유머러스한 토끼처럼 보일지 몰라도 저는 속으로는 곪고 있어요.”


 토끼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속마음을 실토했다. 어차피 루나는 다른 세계의 존재고, 어디 가서 토끼의 비밀을 퍼트리고 다닐 존재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나도 잠자코 있다가 토끼의 말을 듣곤 한마디 했다.


 “너는 우울하니?”


 “솔직히 그런 거 같네요. 매일 우울하고 자기혐오에 가득 차 있어요. 하지만 저는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내 비춘 적 없어요!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사실 티비 속 유쾌한 모습은 거짓말이었고 스스로 한심하고 찌질하다고 여겨 매일매일 자기혐오로 죽어버리고 싶어 하는 토끼란 걸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행여나 병원에 가거나 상담을 받으러 가서 괜한 소문이 나는 것도 싫고 친구나 가족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니까요!”


 “항상 즐거운 토끼는 없지. 하지만 최악에 상황에서도 즐거운 토끼는 있어.”

 “바로 그거예요! 저는 다 가졌어야 하지만 단 한 가지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에요! 남들이 다 가진 걸 저 혼자 못 가졌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요. 남들이 다 하는 것도 못 하겠고 사소한 것에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항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못나 보이고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토끼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토끼의 모습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토끼의 본모습이 보였다. 토끼의 넋두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난 왜 이럴까. 남들이 다 하는 걸 왜 나만 하지 못할까. 돈, 명예, 존경 다 가져봤자 행복하지 못한데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거 알아요? 저는 입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고 견디지 못하겠기에 군대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나왔어요. 너무 무섭고 두렵고 나약하고 내 자신이 너무 비루하고 초라하고 저 자신을 없애고 싶은 기분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남들이 다 가는 군대도 못 참고 도망가 버린 저 자신이요! 그것뿐일까요? 공원에서 가족들과 걷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뭐가 행복할까. 자그마한 가게에서 물건을 팔면서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초라한 가게에서 뭐가 행복할까.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목적 없이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목적을 가지고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우울해요! 요즘은 친구와 만나도, 여행을 가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게 뭐 하는지 공허하고 어지러운 감정만 들어요.”


토끼는 마음속 말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말하고 나니 좀 낫군요. 제가 우울함을 솟아냈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실제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스스로 해를 끼친 적은 없어요. 그냥 혼자 자기 비하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새우거나 술을 퍼마시는 것 말고는 문제없었거든요. 평생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익숙하니 위로할 필요도 없고요. 실제로 자해하거나 죽음을 시도해 본 적은 없어요.. 죽고 싶은 적은 많지만, 막상 죽는 걸 시도해 본 적은 없어요.”


 토끼는 다시 가면을 쓰고 루나가 걱정하지 않도록 우울을 감추려 했다.


 “괜찮아. 우울할 수도 있지. 원래 세상은 좆 같은 곳이잖아.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신병 하나 앓고 있지 않는 게 오히려 정신병일 수 있지. 힘들고 어렵고 답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고민과 걱정, 신경증이 없는 게 이상한 거지.”


 “말씀 고마워요. 사실 혼자만 이렇게 우울한지 매일 걱정해요."

 “그래. 좆 같은 세상인데도 분명 잘 사는 사람은 있지. 너는 불행하게 살고 있는데 말이야.”

 “맞아요. 왜 저는 행복하지 못할까요.”

 “답이 있는 이야기지. 자신도 아는 이야기 말이야. 네가 그랬잖아. 행복하지 못하다고. 마음가짐을 새로 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야. 너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데?”

 “그냥 집에서 만화를 보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면 좋죠.”


 “네가 원하는 대로 쉬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인생을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성취지향만 하면 오히려 성공할 수 없어.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오히려 더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이야. 꼭 성공이 목표가 아니라도 네가 행복한 거라면 하면 되지. 너는 너만의 행복을 찾아야 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말고. 너는 너만의 삶을 사는 거니까.”


루나가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게 정말 행복한 걸까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좋지만, 가끔은 외롭고 고독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져요.”

 “그럴 땐 친구를 만나면 되지.”

 “제가 좋아하는 건 만화 보고 혼자 쉬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만화 보고 싶을 땐 만화를 보다가 친구가 만나고 싶어지면 친구를 보면 되잖아.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아무거나 당장 하고 싶은 걸 해보면서 사는 거야. 싫은 건 싫다고도 하고.”

 토끼는 무언가 깨달은 듯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른 고민이었다.


“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거 같아요.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항상 피상적으로 관계를 맺는 거 같아요. 공감도 잘 못하겠고 친밀감도 잘 느끼지 못해요.”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순 없는 거야. 분명 너도 진정한 친구가 있을 거 아니야. 그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해.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할 수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랑은 적당히 친하고, 진정한 친구랑만 공감하고 친밀감을 느끼면 되잖아. 질문이 생긴 거 같은데, 반대로 물을게. 네가 바로 죽기 바로 직전 부귀영화를 택할까. 순간 하고 싶은 걸 원할지 생각해 보면 네가 계속 고민하는 것들도 해결될 거로 생각해. 성취를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토끼는 잠시 말을 멈췄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좋은 생각이에요. 제가 당장 바뀌거나 우울함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그래. 할 수 있을 거야. 너의 지금 모습과 네가 해온 걸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당장 바뀔 순 없겠지만 천천히 바뀔 수 있어.”


 어느덧 루나는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토끼가 나름 깨달음을 얻어 고민이 해결돼서인지 루나는 점점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토끼를 혼자 보내긴 아쉽지만 어쨌든 루나는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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