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완벽주의 기린
루나가 눈을 떴다! 높은 언덕에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다가 저 멀리 안경 쓴 기린이 보였다. 기린은 나무에 기대어 공부하고 있었다.
“안녕 기린아! 뭐 하고 있어?”
“완벽해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지.”
“완벽? 무엇을 얼마나 하면 완벽한 기린이 되는데?”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 좋은 직장을 가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기린이 돼야겠지. 난 그걸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정말? 완벽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보다시피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지. 이 자리도 몇 날 며칠을 헤매다 찾은 장소야. 햇빛의 각도와 바람의 세기가 적절한 곳이거든.”
“그렇구나. 그럼, 너의 소원은 완벽한 기린이 되는 거야?”
“물론. 나는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느껴. 더 정확히 말하면 아까 말한 좋은 직장을 가지고, 좋은 기린과 결혼하는 거야! 그걸 위해서 완벽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알았어. 그럼 내가 도와줄게.”
“좋아 그런데 잠깐만 도와줄래? 방금 바람이 바뀌어서 자리를 옮겨야 할 거 같아.”
“뭐라고?”
“아무래도 날씨가 달라져서 공부하기 적합한 환경이 아닌 거 같아. 자리를 옮겨야 해.”
“그래 알겠어.”
루나는 기린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옮기는 족족 기린이 만족할 환경이 아니었기에 자리를 잡는 데 오래 걸렸다. 결국 외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굴속에 자리를 잡았다. 루나는 자리를 옮기면서 기린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기린은 스스로 완벽한 환경에서만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일을 하려면 날씨가 좋고, 몸이 건강하고, 기분이 좋고, 도구가 완벽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직업을 찾기 위해선 우선 돈이 넉넉해야 한다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찾는 건데 어떻게 돈이 넉넉해야 하냐고 하니 안정적으로 직업을 얻기 위해선 여유가 있어야 하기에 어떻게서든 돈을 모아 놓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힘들고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루나는 기린의 가치관을 더더욱 캐물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랑을 하려면 상대가 아름답고, 성격이 좋고, 재력이 있고, 스펙이 좋아야 했다. 여행을 가더라도 시간이 충분하고, 동행이 적절하고, 목적지가 흥미롭고, 비용이 저렴해야 했다. 자신은 이를 위해 완벽해지려고 하고,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루나는 복잡한 기린의 요구에 머리를 긁적였다. 루나는 먼저 기린의 전공에 적합한 일자리를 찾았다. 유명한 IT 기업이고 기린의 전공과 흥미 분야였다. 하지만 기린은 더 좋은 기업에서 제안이 올 수도 있고, 설사 이 회사에 입사해도 자기가 원하는 업무와 결과를 얻기 힘들 거 같다고 거절했다.
다음으로는 기린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사람을 찾았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운동을 하며 외모를 가꾸는 기린이었다. 가치관과 집안도 좋았지만, 기린은 거절했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자신 같은 기린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자신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자리를 잡아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 딱히 소개팅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루나는 투자를 종용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와 금전적인 투자 모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운동과 앞으로 유망한 공부, 꿈에서 들은 정보로 금융투자를 종용했다. 기린은 마지막 제안 역시도 미래의 변화는 불안하므로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 변할 수도 있는 정보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대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려는 거야? 세상엔 완벽한 건 없어! 뭐든 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설사 완벽하지 않더라도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고!”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 분명 내게도 좋은 기회가 올 거야.”
“내가 이미 그 기회를 만들어 줬잖아. 설사 네가 말한 완벽한 타이밍이 존재한다고 해도 언제 올지도 모르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실은 진정한 의미로 완벽한 타이밍이 아닐 수도 있잖아!”
“난 더 이상 어려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이미 수많은 실수로 손실을 겪었다고. 사랑을 하면 이별과 상처를 겪고, 친구를 만나면 갈등과 다툼, 일을 하면 배신과 충격을 겪었다고. 이제는 위험과 난관과 실망과 후회 같은 감정은 절대 느끼고 싶지 않아!”
“삶이 힘든 건 인정해. 하지만 그게 완벽주의에 빠져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이유는 아니야. 완벽주의가 오히려 너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삶은 어렵고 힘든 거야.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살면 된다고. 어려움과 고통이 너를 무너트리는 게 아니라 성장시키는 거야. 물론 과정이 힘들 거야. 그럴 때 너를 더 완벽하게 몰아세우는 게 아니라 힘든 상태에서 세상으로 나가면서 지내는 거야.”
“알아! 나도 적당히 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무 불안하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비교되거나 거절되고, 나를 싫어할까 봐 너무 무서워 걱정했다. 실망하기도, 상처받기도 싫어.”
“그래. 힘들겠지. 하지만 둘 다 힘들다면 그냥 도전해 보면서 부딪히는 것도 방법이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거야. 고통에서 얻은 교훈과 의미가 다시 새로운 경험을 주고 비록 항상 좋은 결과는 없을지언정 나아갈 수 있게 해주잖아. 걸음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그때는 쉬면 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알았어. 어렵게 생각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릴 게.”
“그런 건 없어. 그냥 지금 바로 해!”
루나가 기린의 등을 떠밀었다. 기린은 균형을 잃고 쭉 앞으로 미끄러졌다.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공간에서 멀어지고 미지의 공간으로 점점 달렸다. 기린이 멈춘 곳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다. 광장 한 복판에 선 기린은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기린은 부끄러웠다. 보잘것없게 밀려 빠른 속도로 사람들 한복판에 달려와 큰 소리를 낸 것이 큰 오점으로 느껴졌다. 지금 당장 자리를 뜨고 싶고 얼굴을 가리고 먼 곳으로 뛰어가고 싶었다. 기린이 혼란스러워할 때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재미있는 쇼였어”
기린은 당황하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오는 마을 주민들의 갈채가 나쁘지는 않았다. 루나는 어느새 기린의 뒤에 와 있었다.
“어때?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뛰어든 경험은?”
“무서웠고 당황스럽고 어지러운 기분이었어. 사람들 한복판에 있을 때는 특히 거의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 완벽하진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너의 고민이 좀 해결됐어?”
“방금처럼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들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계속 완벽해지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진 않을 거야.”
어쨌든 기린의 기분을 좋게 만든 루나는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는 행복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