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성.

by c jeong

나의 행성.

지금 현대 또는 서울에서 기계가 할 일을 과거 또는 지방에서는 손으로 대체한다. 매일매일 기계가 되어보게 된다. 이것이 현대에 와서 무슨 의미인가 곱씹으며 그렇다면 인간의 설 자리가 없어지면 인간은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우리, 인간의 문명 발달이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로 작용되는 것인가. QR코드는 인간이 누구인지 또는 어디로 가는지 어느 곳에 있는지 어디든지 정도를 수집할 수 있다. 또한 이제 ‘뇌의 수뇌부’는 개인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지배할 수 있다. 우리는 지배하에 있다.


별은 밝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다.

오롯이 어두운 곳에서 별은 보인다. 나의 행성.

어두운 곳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그곳에서 서서 소금 맛을 보았다.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중간쯤에 두 개의 별이 보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는 그것이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 분간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행성을 쥐고 있었다.


선과 악의 순환.

오늘 나는 나보다 위 세대가 겪는 고충을 알게 되었다. 입금 삭감, 지금까지 근무했던 환경에서 100퍼센트가 전체 임금이라면 약 20퍼센트의 삭감을 요청한다고 하였다. 이는 그 자리를 이제 떠나라는 메시지가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그런데도 보전하는 이유는 나의 공간과 공간이 가질 공간을 위한 노력 이리라. 나 또한 나의 공간, 하나를 지키기 위해 최저 시급도 안 되는 금액으로 대우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일하며 눈물을 훔쳤다. 신고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앞까지 항상 차올랐지만 항상 무산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이 그렇게 ‘악’할까.


5월 7일 마지막.

재료, 내용, 형태 그 어떤 것으로도 묶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이며 이는 사조, 인간, 행성, 소우주, 대우주와 같은 개념이 되었다. 대지미술이란, 어떠한 형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현대미술’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이러한 대지미술이며 현대미술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나는 새장에 갇힌 작은 새 같다.


좋음과 행복, 기쁨이란.

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보편적으로 ‘좋음’을 느끼는 이유에 관해 어렴풋이 생각하게 된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그 어떠한 구간에서 ‘좋음’과 ‘바름을 느낀다. ‘내’가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다. 이것의 전제는 항상 ‘보편성’으로써 그 기준이 되고 생각을 ‘바르게’하는 사람은 좋다. 곧은 생각을 하는 사람.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사람. 긍정적인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 어떠한 것이든 ‘행복’은 전파되고 ‘기쁨’으로 작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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