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길 사이.
나는 앉아있고 물 길 속에 열매를 맺었다.
땅의 열매는 다시. 나의. 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땋았다.
죽은 나무와 고사리 그 밑에는 인조 끈.
내 생명은 인간의 힘으로 죽었다가
다시 인위적인 인간의 힘으로 피고 있다.
죽은 새와 지쳐 있는 작은 새.
오늘 시멘트는 철거되었다. 지나서 온 흔적들을 치우고 온 그 옆에 작은 무덤 사이에 흔적을 두고 탑을 쌓았다. 다시 돌아와 보니 텅 빈 공간과 그 자리에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비쩍 말라서 죽어 있는 작은 새를 발견하였다. 그로부터 한 참 후, 비 온 뒤, 다른 세상에서 조금 지쳐 있지만 작은 새를 또 한 번 발견하였다. 그를 쓰다듬고 아프지 않은지 확인하고 낮은 곳에서 위험하지 않을까.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옮겨 두었다. 다시 급하게 나의 자리에 돌아와 눈물이 흘렸다. 그곳에 두고 온 나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만나지 않았을 ‘죽은 새와 지쳐있는 작은 새’
오늘날 들어 주객전도된 삶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삶에서 인간보다 다른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작품만을 보더라도 작품을 분해해서 보면 철과 돌 외 여러 가지 부가물에 지나지 않으나 그러나 때로 인간이 중점이며 인간이 중심인 세상에서 인간보다 작품이 더 중점이다. 그림과 인간은 유기물 덩어리에 불과하다.
무거운 시멘트의 작품을 옮기며 그들이 아프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고려하게 되었다. 작품은 일부 덩어리에 불과하고 그 가치가 맺어진 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고 작품은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내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다른 형태로든 같은 형태로든 무한정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