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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Jan 12. 2023

발리(Bali), 꾸따(Kuta),
그리고 쓰레기

인도네시아어로 아름답다는 말은 사람에 대해서는 짠띡(Cantik), 풍경 등에 대해서는 인다(Indah)를 쓴다. 발리는 인다라는 표현에 아주 적합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를 생각해 보면 그만한 곳이 없다고 느끼다가도 발리에 가보면 또 애매하다. 우붓(Ubud)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스미냑(Seminyak)이나 누사두아(Nusa Dua)가 좋을 수도 있지만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꼭 명동을 들르는 것처럼 발리를 대표하는 관광지는 바로 꾸다다. 서핑하기 좋은 파도 때문에 서퍼들의 천국이라 알려져 있고, 같은 이유로 유럽과 호주, 북미의 여행객들이 몰려든다.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제주도를 여행하는 시간, 그리고 그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발리를 여행할 수 있다. 4년 동안 가졌던 두 번의 휴가를 모두 발리로 다녀왔다. 합쳐서 보름 넘게 머문 게 전부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꾸따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꾸따의 해변과 상점들, 그리고 식당들에 약간의 정이 들었다. 하드락 호텔과 비치웍이 워낙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지만 작은 상점들과 식당들 모두가 매력적이다. 물가가 조금 높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곳곳에 현지 물가로 이용가능한 상점들과 식당들도 많이 있다. 


요즘 꾸따는 파도가 세다. 방문하기 전부터 지인분들이 아이들 데리고 꾸따해변에 데리고 나가지 말라고 당부들을 했다. 물론 아이들이 매일 같이 해변에 나가 바다에 발(그리고 몸)을 담그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딸아이는 마트에서 모래놀이 장난감을 하나 사서는 온종일 모래놀이를 한다. 아들 녀석은 하루종일 얕은 바다에 누워서 파도를 맞았다. 아내와 나는 위험할까 걱정이 되어 아이들 옆에 서 있느라 몸살이 났다. 그러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부모의 행복이니, 기분 좋게 그 고생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쓰레기다. 이전엔 느끼지 못했었는데, 해변에 쓰레기가 많아도 너무나 많다. 언론보도들을 통해 쓰레기는 늘 서구의 부국들로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국을 향한다거나, 선진국에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태평양의 섬나라들을 쓰레기 천국으로 만든다는 식의 보도를 접했었는데 이곳에 살아보니 꼭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본 대부분의 쓰레기들엔 인도네시아 브랜드가 인쇄되어 있다. 특히 신경 쓰이는 것은 한 컵짜리 생수병이다. 은행이나 상점 같은 곳에 들어가면 손님용 테이블에 비치되어 있는 바로 그 아쿠아 컵이다. 쓰레기를 줍는 분들도 그건 돈이 안 되는지 줍지 않는다. 그런 조악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파도에 의해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과정 논문을 위해 리서치 디자인은 University of Edinburgh의 N교수님에게, 인터뷰 방법론은 Radboud University의 W교수님에게 지도를 받는데 이 두 분은 인도네시아의 쓰레기에 대해 진심이다. 저명한 생태신학자인 N교수님은 아예 우붓에 거처를 정하고 발리의 생태를 연구하고 계신다. 가톨릭 신학자인 W교수님 역시 이슬람 기숙학교인 피산뜨렌에서 펀드레이징을 위해 판매하는 플라스틱 보틀에 든 생수 판매를 금지하기 위해 이슬람 신학자들과 연대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번은 W교수께서 플라스틱 보틀에 든 미세 플라스틱의 유해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나는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미세 플라스틱의 유해성보다는 깨끗하지 않은 물의 섭취로 인해 생기는 질병의 문제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었다. 한국인들은 종종 수돗물을 못 믿어서 설거지를 할 때도 갤런에 든 생수를 사용한다. 나의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에 온 첫 한 두 해 동안 한국이었으면 절대 걸리지 않았을 질병들을 겪어내느라 고생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세 플라스틱 걱정이라니. 


그러나 꾸따의 쓰레기들을 보는 순간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쓰레기와 어색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생각보다 기괴하고 징그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들에서 봤던 환경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쓰레기로 뒤덮인 강, 오물이 그대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 아무 곳에나 투기되는 쓰레기들,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분리수거와 같은 문제들이 그리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인들의 수가 압도적인 화려한 휴양지인 이곳의 쓰레기를 보면서는 (위선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약간 다른 인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학기 나와 같은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슐라웨시(Sulawesi) 지역의 한 신학교 교수인 여성 목사 한 분과 아내가 가까워졌다. 그분은 슐라웨시 지역의 환경에 대한 종교학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다. 하루는 아내가 함께 커피를 한 잔 하고 와서는 그분이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 교재를 만들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겠지만 스스로 의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슐라웨시는 인도네시아에서도 가난한 지역이기 때문에 강사월급이 한국돈 10만 원 정도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브로셔 하나, 소책자 하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필요한 곳이 있으면 써달라며 아끼던 제자가 보낸 후원금이 있어서 그 프로젝트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제자는 긍정적인 흥분상태가 되어 그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재정이 더 필요하게 되면 본인이 감당하겠다고 했다. 아내 역시 한동안 긍정적인 흥분상태에 있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연락하는 과정에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가 부여가 된 것이다. 우리 부부 둘 다 환경 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생각하지 못한 기회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 더 찾게 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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