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오면서 살 집을 구해야했다. 집이라기 보다는 방. 대학 시절에 하숙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순수 자취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당연히 타지 생활은 자취방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 당시에 난 서울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누구 알려 줄 사람도 없었다. 아는 지명이라곤 머 어디 뉴스나 방송에서나 가끔 듣던 몇몇의 이름 뿐이었고 기억나는 건 신촌과 압구정뿐이었다. 압구정이야 당연히 비싼 동네라고 알고 있었으니 고려할 것도 없었고 먼가 대학교 앞인 신촌이 낭만 있어 보였다. 어차피 낭만 파먹으려고 올라왔으니 그렇다면 신촌에다가 방을 구하자 생각했다. 그리고 수능으로는 못 간 연세대에 대한 미련을 이렇게라도 좀 풀어보자 했다. 직장이 동대문 근처였던 것을 생각하면 좀 납득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그 나이껏 부동산이란 데를 가본적도 없지만 혼자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혼자 신촌이라는 복잡하고 정신 사나운 동네를 잔뜩 긴장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 쑥신한 표정으로 부동산 문을 열고 발을 들이며 '혹시 방 있어요?'라고그 모습이 얼마나 어리숙해 보였을지 이제와 생각하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행히 걱정 했던 것 보다 인자해 보이고 밝은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께서 맞아 주셨다. 코 베이진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신촌 바닥을 이래저래 몇 군데 돌아다녀 봤지만 방을 구하는 명확한 기준인 방세를 마지노선으로 긋고 낯선 동네의 낯선 방들을 보니 그저 생경하기만 하고 마음 가는 방 없이 그 방이 그 방이었다. 첫 날은 마음의 결정없이 시간도 좀 늦었고 하니 그 정도로 돌아가는 걸로 하고 다시 방문해서 다른 방들을 보기로 했다.
며칠 뒤 코 베이진 않겠다 확신하며 다시 그 부동산을 방문했고 몇 군데를 더 돌아다니던 중 겉멋으로 꽉 찬 방을 하나 발견했다. 5층 빌라의 꼭대기 층이었고 건물 내부 인테리어가 무슨 커피숍 마냥 초콜렛 색으로 벽이 칠해져있고 층마다 작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골목 쪽의 벽이 전면 창이어서 탁 트이는 개방감이 들었고 꼭대기 층이라 시야의 막힘이 덜하며 창가에 놓인 침대에 누우면 신촌의 하늘이 훤히 보였다. 집 근처가 바로 번화가였고 같은 건물 지하에는 아예 bar가 들어 와 있었다. 퇴근길에 bar에 들르거나 주말에 근처에서 가볍게 한잔하고 들어오는 여유로운 직장인의 생활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젊음의 낭만이 넘쳐나는 거리로구나. 낭만 파먹고 살려고 온 나에게 딱 이구나!’ 생각했다. 다만 방이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움찔했지만 젊었던 그리고 겉멋에 이미 혹한 나는 운동 삼아 좀 걷지 하고 상당히 긍정적이고 기특한 생각을 했더랬다.
바로 집에 전화를 하고 마음에 쏙 든다고 강력하게 어필하여 허락을 받아 운 좋게 열심히 살아내신 부모님이 계신 덕분으로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35만원으로 계약을 했다. 난생 처음 계약서라는 것에 사인을 하고 정말 새로운 시작을 하는 구나하는 감회에 젖었다.
계약을 한 기쁨이었는지 아니면 측은지심의 발현이었는지 아주머니께서 헤어지기 전에 국밥 한 그릇을 사주셨다. 서울의 인심이 지방보다 나은데?하고 감사하게 얻어먹었는데... 순박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지방 청년의 서울 살이에 대한 응원이 아니었을까...악어의 눈물이었나... 어찌됐든 그 때 국밥 한 그릇은 혈혈단신으로 올라온 나에겐 꽤 큰 응원이 되었다. 배가 불러서 그랬던지 가슴 훈훈하게 돌아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