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하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주변에서 재능이 많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살았다.
내 꿈은 가수였다.
주목받고 무대 위에 서는 걸 좋아했고
활발했고, 책 읽는 걸 좋아했으며,
사람 만나서 대화하는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평범하지만 꿈많은 소녀였다.
매사에 긍정적이었으며 사교성도 좋았고,
웃는 모습이 예쁘단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난 뭘 해도
잘 먹고 잘 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025년 현재 나는 자살유가족임과 동시에,
자살의도자 고위험군으로 복지센터에서 나를 살펴주고 계신다. 양극성불안장애우울증과 PTSD, 심각한 불면증으로 하루에 엄청난 양의 약을 먹는다. 처음 우울증 약을 먹게 된 계기는 엄마의 자살도,
아빠의 자살 때문도 아니다.
J와 그의 가족들로 인해 생겼다.
내 삶이 고통인 것과 별개로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해서 큰 이벤트까지 후회되는 사건들이 많다. 그중 제일 후회되는 건 J를 사랑하게 된 것.
J를 따라 거주지를 옮겨 그 집에 들어가,
H가게에서 일한 것.
몇 년간 매일같이 아슬아슬한 한 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곳을 떠나온 지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증오스럽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일기장을 펼쳐
옛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그들이 남겨준 사회공포증과 불안장애는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여기서 외롭게 혼자 있지 말고,
오빠랑 같이 올라가자 같이 살자. "
그가 내 평생동반자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은 그가 행동으로 보여주던 애정과 사랑,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차에 타기 전에 추울까 봐 차시트를 미리 따뜻하게 데워준 게 얼마나 마음이 예쁘고 감동스러웠던지. 박카스, 요구르트만 있던
냉장고에 맛있는 반찬들로 가득 채워준
당신을 나는 사랑했다. 나의 타고난 성격은 긍정적이고 쾌활한 사람이다.
클라우드사진 속에는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이 많다. 반짝반짝했던 시절에 J를 만났고, 그 순간들은 모두 J가 담아줬다. 사진 속 나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가장 예뻤지만 가장 외로웠고,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J를 만났고 내 인생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J를 만나 20대를 보냈다.
당황스러웠다. 처음 했던 말과 틀렸다.
내가 살 곳은 J의 본가였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2명이 있는 큰집이었다.
큰 여동생은 곧 결혼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작은 여동생을 H라고 부르겠다.
H의 존재는 J만큼이나 크다. 아니, 더 클지도)
나는 적잖이 놀랐고 당황스러웠지만
큰 여동생은 곧 결혼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따로 방 얻어서 혼자 살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집이 있는데 뭣하러 따로 방을 얻어 사냐고, 본인이 자리 잡힐 테까지만 여기서 같이 지내자고 말했고, J의 어머님도 무조건 그렇게 하라면서
나를 엄청 예뻐해 주시고 매일 아침마다 맛있는 밥을 해주셨다. 어색했지만 사실 마음이 너무 따뜻했고 행복했다. 처음은 그곳에서 어머님과 오빠, 언니와 살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나에게 진정한 새 가족이 생겼고, 울타리가 생겨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나에게 부모란 제대로 된 부모가 아니었기에
나는 늘 가족에 대한 갈망이 컸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처음 그 집에서 먹었던 따뜻한 밥과 한상 가득 정성스러운 반찬들, 국은 항상 빠지지 않았다.
찬기가 들어오지 않는 따뜻한 화장실,
커다란 욕조까지 있었다.
어머님도 너무 좋으셨다. 집안일을 시키기는커녕,
물 한 방울도 못 묻히게 했고, 오히려 내가 불편할까 봐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나는 정말 빠른 나이에 좋은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얼마가지 못했다.
나는 직장을 찾고 있었다.
면접도 보고, 원래 전공이었던 음악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하며 알아보던 중에
J와 H가 나를 불러서 말했다.
잠시 생각을 했다. H는 평소에 나를 아낌없이 챙겨주고 베풀어주었다.
내가 입던 옷과 가방들을
과감 없이 버리곤, 백화점에 데려가서
'너도 이제 우리 집안 식구니까
좋은 옷 입어야 해.' 라며 새 옷을 입히고,
좋은 화장품도 나눠주면서 나를 많이 챙겨줬다. 그리고 굉장히 똑똑했다.
외모도, 몸매도 여태껏 봤던 여자들 중에
가장 예뻤다. 비교도 안될 만큼 우월했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쳐다볼 만큼 예뻤다.
H를 보고 있으면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완벽 그 자체인 여자였다.
그런 언니랑 함께 일한다면 사이도 더 돈독해질 것이고, 배울 것도 많고 덩달아 나도 똑똑해질 거 같았다. 돈도 더 챙겨준다고 하니 좋았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함께 일을 시작했다.
나는 그 당시 그 사람을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너무 단순했다.
J가 하라고 하면 뭐든 다 했고,
하지 말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이제는 안다.
섣불리 그를 따라 그 집에 들어가서 살고,
J의 여동생 H의 가게에서 일했으면 안 되었다.
나의 가정환경, 내 부모를 욕하는,
아니,
내 존재 자체를 그들에게 퍼즐처럼 딱 맞게 개조시키려는 그곳에서
나는 참고 살지 말았어야 했다.
끝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럴 여유조차 만들어주지 않았다.
지금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그땐 그게 잘못된 건지도 몰랐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나는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다 따랐다.
내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서의 삶은 일방적으로 맞기만 했다.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나는 도망쳐야 했지만 헤어져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몸으로, 마음으로 신호가 왔을 때 도망쳐야 했는데.
삶의 절반이 무너져 내려갔는데도
무기력하게 나는 나를 계속 버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무기력해지고,
힘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더욱더 심하게 내려쳤다.
한시도 쉼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날은 충동적으로 택시기사님께 죄송하다고 하고 달리는 도로에서 몸을 던진 적도 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봤다.
상실하고 버려지고 내 20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얻은 것이라고.
하지만 쉽지 않다. 외로움을 뿌리고, 고독을 품고, 아름답고 찬란한 20대는 나에게 없다.
타지에 올라가서 나는 제대로 대화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썼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눈물로 매일 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