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5일 첫 만남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일 수도 있었다.
만나기 전까지 연락도 잘 안 해서 별생각 없이
만났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Lp가 모여있는,
아주 딱 맘에 드는 스타일의 칵테일바를
데려가줘서 너무 놀랬다.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했다.
'어차피 한번 보고 안 볼 수도 있으니까.'
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
왜인지 이 사람 앞에서는 말이 술술 나왔다.
생각하고 감정이라는 건, 너무나 어렵고 애매한 거라서 내 안에서 밖으로 꺼내지면
맥을 못 추고 사라져 버린다.
사실 그대로 나온다 말하고 싶은 대로.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건, 얼마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건 그런 독선적인 생각과
행동이 무슨 소용 있을까
상대방은 오히려 내 이야기를 부담스러워할 수도, 듣기 거북할 수도 있기도 하고
오히려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서 멀어지려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망설였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넌 정말 멋지고 예쁜 사람 같아. 그리고 참 순수해. 네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면 너무 기특하다.'
여태껏 살면서 처음 들어본 위로였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멋지다니
내가 예쁘다니. 순수? 나는 잠재적 살인자였는데.
우리의 첫 만남은 큰 인상을 남겨줬다.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며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취향도 비슷했다. 삼십 년 동안 갇혀있던
내 문장들과, 취향을 한껏 얘기하며
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같이 있고 싶었다. 서로 안녕 인사하고
각자 집에 가는 길에 나는 다시 연락했다.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되냐고.
집 앞에서 내가 먼저 키스를 했다.
입을 맞추고 싶었다 두툼한 입술이 내 입술과
뒤섞이며 서로 끌어안았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따뜻해졌다.
나는 약 없이 스르르 잠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다음 날,
'바깥날씨가 춥네, 따뜻하게 입고 나가'
'이번 한 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아.'
'걷고 있는데 기분 좋은 뻐근함이 있어서 좋아'
'난 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어'
다음날, 토요일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망가져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그냥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고 긍정적인 시너지를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조금은 내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기분도
동시에 드는 건 누군가와 친밀해지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내 마음을 알아줄 누군가를
계속 바라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하면 할수록 마음이 깊어졌고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같이 보는 풍경들이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놓는다.
힘들었던 마음은 어디 가고
새롭게 살고픈 용기가 생긴다.
같이 있을 때 '행복하다'라는 말을 많이
내뱉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마움을 느낄 땐
고마운 마음이 새로이 솟아올라서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함께 하는 시간이 아름답다고 느낄 땐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진다.
K는 어딘가 묘하게 나와 닮아있었다
많이 보던 우울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경계심이 풀린다
스며들듯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락함은 이내 찰나의 순간뿐이라며,
나는 K의 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안기고 싶었다
문득 슬퍼지기도 하다
기대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나의 우울을 이렇게 물들이긴 싫었다.
누군가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잘 안다는 것은 더더욱 치욕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쪽이 뭘 안다고 나를 감싸주고
옆에 있어주겠다고 해요.'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네가 뭐라고.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하지만 나는 K앞에 서면 무너졌다.
나는 자유롭고 싶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싶었다.
K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두려웠다.
그래서 마음을 떼어내 보려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는
이성과 연락도 해보고 만나도 봤지만 유치하고
재미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fwb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K와 나의 관계가 딱 이런 관계인 거 같다
'friend with benefit' 친구이면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이성.
연인은 아닌데 연인처럼 지내는 사이.
연인관계는 아니지만 정서적 관계는 성립하는.
연인은 아니었지만 K를 계속 만났다.
함께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대화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K는 사랑이 뚝뚝 흘렀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나를 순수한 아이로 만든다.
"너처럼 나랑 결이 똑같은 사람은
평생 살면서 못 만날 거 같아.
너를 보면 과거의 나를 보는 거 같아.
그래서 더 마음이 가
너를 만남으로써, 이 순간을 위해서
내가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나는 너와 어떤 관계든 평생 보고 살고 싶어
언제나 옆에서 힘이 돼주고 싶어."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면서 같은 심리를 원하고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
나의 과거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완전히 이해하긴 감정적으로 힘들겠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외치는 것
멀어질까 헤어질까 불안한 마음에
털어놓지 못했던 숨겨둔 마음을
그 사람을 향한 믿음 위에 쉽게 올려둘 수 있을 때
버겁게만 느껴지던 내 삶이 꽤 살만하겠다고 느껴지는 것
잊을만하면 나를 찾아오는 아픔들이 이 사람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고 여겨지고
나를 찾아드는 어떤 감정도 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착각이 아니라 진짜라고 여겨질 때.
결국 삶이란 혼자서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 것이라는 걸 느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