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자리에서 시작하는 법 and..

by 티보치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버릇처럼 되뇌던 시절이 있었다.

정작 끝낼 용기는 없으면서.

그런데, 명상수행기간을 통해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더는 견딜 수 없다는 신호였다는 것을.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아무도 모르게 소멸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했다.

내가 반복하던 그 말들은,

사실은 정반대의 문장이었다.

나는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간절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 방법을 알리지 못해서,

죽음을 입에 올렸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옥죄던 것들을 하나씩 놓아주고,

비로소 내 삶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하루씩, 아주 조금씩 살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인정하기로 했다.

부모를 향한 미움과 원망이

아직도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나에게서 한 발 물러나

조용히 바라봐야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미우면, 미운채로 두기로 했다

그 감정을 억지로 지워내지 않고,

그대로 품고 가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분노는 도망쳐야 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마주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편들기 시작했다.

누구의 기준도 아닌,

내 감정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나를

이제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누가 뭐라 하든, 적어도 나는 내편에 서기로 했다.

처음으로 나를 지켜주기로 했다.

그동안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일을

이제는 내가 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는 것,

그게 시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삶을 한 번에 견디려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늘 하루만 붙잡고 살아보기로 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나는 오늘까지만 살아내기로 했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누구를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오래 불편할 때는 대부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가라앉는 날마다

를 향해 멈춰 서있는지 살펴본다.

이 생각과 방법은,

각산스님의 명상수행기간에 가서

배운 수행법이다.

가장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야말로,

가장 먼저 놓아줘야 할 사람이라고.

용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더 이상 그 일에 묶여 있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일이다.

억울해도,

납득이 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위해 놓아주기로 한다.

용서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알 필요는 없다.

그냥,

"이제 그만 놓아주자"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조금씩 가벼워진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 사람들을 기꺼이 놓아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분노는 억누르거나 참아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순간 깨달았다.

그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나에게 작은 자유가 생긴다.

치유란, 과거를 지워버리는 일이 아니라

그로부터 풀려나는 일이다.

누구의 삶에도 크고 작은 재난과 고통은 있다

그 기억들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결국 하나였다.

용서.

아니,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기.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용서하지 못한 채 붙들고 있는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들 속에서

계속해서 다시 상처 입는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지금의 나를 위로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은 그 자리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끝났지만,

내 안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픈 거다.

용서하지 않는 한,

나는 나의 미래를 과거에게 계속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용서는

나의 진짜 모습이 그 모든 일들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조용히 알려준다.

내가 겪은 일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나를 정의하지는 못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일도,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일도,

그것이 내 삶의 결말은 아니다.

나는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나를 옥죄어오던

모든 것들을 놓아주기로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용서하기로 했다고.

나의 부모님, J, J가족들을.

그때서야 비로소 내 삶은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서는 끝이 아니라 처음이다.


완벽하려 애쓰는 대신

나는 기꺼이 망가지기로 했다.

미련 없이 버리고,

정리하고

부서지고

비우고

내려놓고

지워내면서

나를 조금씩 다시 만들었다.

억지로 버티는 것보다

차라리 무너지는 편이 나았고,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불안 속에 남아있기보다는

완전히 붕괴되는 쪽이 더 솔직했다.


망가지는 일은 분명 두려운 일이지만,

막상 그 자리에 닿고 나면 생각보다 후련했다.

끝까지 피하려 했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그 불안은 의외로 힘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안다.

무너지는 일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용서를 선택하기로 했다.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과거에 붙잡혀 살지 않기 위해서.

지나간 시간은 이미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나를 붙잡을 힘을 잃은 것뿐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무력하게 끌려가는 삶을 살지 않기로 한다.

내 삶의 방향을, 내손으로 다시 쥐기로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결국 사랑이 닿지 못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치유되기로 한다..


용서는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나를 풀어주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오래된 상처와, 낡은 생각과

나를 묶어두던 부정적인 패턴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나를 용서한다.

완벽하지 못했던 나를,

잘못된 선택을 했던 나를,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버텨온 나를.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견뎌낸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나를 향한 용서를 시작으로

타인을 향한 용서도 조금은 덜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아픈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그 시절은 나를 만들었지만,

더 이상 나를 가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랑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내게 상처를 남겼던 모든 사람들을

조용히 떠나보낼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앞에 놓인 변화들은 두려움이 아니라,

나를 다음으로 데려가기 위한 흐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도망치듯이 아니라, 돌아와서 시작한다.

과거는 끝났다.

지워지지 않지만,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 시간은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데려온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위에 서기로 한다.

나는 내 안의 방들을 하나씩 연다.

오래 닫아두었던 문을 열고,

먼지가 쌓인 감정들을 꺼내고,

정리하고, 비우고, 남길 것은 남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

나는 가장 작고,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버티지 않는다.

대신, 움직일 것이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겪을 거 다 겪은 사람이다.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과 함께 앞으로 간다.

나는 더 이상 과거에 나를 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놓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이 삶은 결국

내가 끝까지 이어나갈 것이다.

* 자살가족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우울과 조울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이 되어줄 수 있는

글을 쓰려합니다.

그 글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버티고 있는 당신 곁에 조용히 앉아있기 위한 기록입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날에도

하루를 살아낸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계속 말해보려 합니다.

그저 같은 공기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조용히 옆에 서 있기 위해서요.


혹시, 당신도 오늘을

겨우 건너온 사람인가요?

오늘을 어떻게 버텨냈나요,


나는 이렇게 지나왔는데,

당신의 오늘은 어땠나요.


어쩌면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오늘을 견디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도,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낸 사람일 거예요.

곧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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