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

by 티보치나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을 이루며 살아왔을까?

가끔은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춰 서있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이를 먹어간다고 말하지만,

그 시간 안에서 각자가 지나온 결은

결코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걸까.

나는 그저 조금 더 단순해지고 싶다.

끝없이 이어지던 생각의 꼬리를

이제는 조용히 잘라내고 싶다.

요즘은 자꾸 꿈에 엄마와 아빠가 나온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일까.

살아 있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머무르게 된 당신들이,

이제야 나를 찾아오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 꿈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하기도 하고,

더 바라보기도 하고, 빨리 이 꿈에서 깨어야만 한다며

발버둥 쳐보기도 한다.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나는 이제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살아생전에 했던 선택들을 완전히 용서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오래 혼자서 견디다 그런 극단적 선택까지 밀려갔던 건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 나는 그날의 엄마아빠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문득문득 그 마지막 순간에

당신들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지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그곳에 가지 못한 사람처럼

같은자리를 맴돌게 되는 거 같다.

혼자 남겨두고 와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고.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지나와버린 것 같아서,

너무 늦게 이해해 버린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이 말 만은 끝내 다 전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살아오고 있다고.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결국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울음은 멈추지 않고,

내 안을 천천히 잠식해 들어온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가슴 안쪽은

무언가가 무너져 내린 자리처럼 텅 비어버린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비어있는 자리 위에

그대로 놓여있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바닥에 닿아있던 손을 떼고, 구부러진 등을 펴고

한번 더 숨을 들이마신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늦게 따라온다.

내 눈물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고,

그 분노와 슬픔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영역에서

틈 하나 없이 내 몸 안을 가득 채운다.

도망칠 틈도 없이,

빠져나갈 자리도 없이,

나는 그 감정 안에 그대로 잠겨 있게 된다.

그 감정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영역에서

틈 하나 없이 내 몸 안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 감정이 지나가기를

가만히 견디는 수밖에 없다.

나만의 3.3.3 호흡법을 하면서

울음이 멎고 나면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지고,

나는 그제야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이 감정도

끝내 나를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병과 약은 언제나 내 곁에 머문다.

떠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삶의 한쪽에 자리를 잡은 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너지지 않은 선에서

겨우 숨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 사고를 조금씩 굳게 만든다.

처음에는 분명 넘어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경계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할 수 있는 선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살과 자해, 그리고 타인에 대한 파괴까지도.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밀려간 마음의 끝을

조금은 알 것 같아져서.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안에 갇히게 된다.

빠져나오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고통은 때로 사람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무는 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나는 나를 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가는 마음을

너무 또렷하게 이해해 버렸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래 서있게 된다.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너진 채로 머무는 일이 아니다.

완전히 나아지는 날만을 기다리기보다,

무너진 상태로도

다시 하루를 건너가는 법을 배우는 일에 가깝다.

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너진 채로 머무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상태로도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필요할 때는 치료를 받고,

필요할 때는 그 상태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그리고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이해하려 할수록

감정은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나는 그 안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맴돌게 된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은

설명되지 않는 채로

그 자리에 두어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면

절망 속에 나를 방치하지 말고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건 약해지는 일이 아니라,

겨우 이어지고 있는 나를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놓지 말 것.

아주 작고,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거라면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증거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불을 켠다.

어둠이 조금 밀려난다.

불을 켜면, 어둠이 조금 밀려난다.

창문을 연다. 바깥공기가 들어오고,

나는 그제야 이 세계 안에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느낀다.

물 한 잔을 마신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나를 지금으로 데려온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 한잔을 마시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나를 지금으로 데려온다.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고

나는 그제야 숨을 쉬게 된다.

숨을 한번 더 들이마시고,

손에 닿는 것 하나하나를 정리하고,

한 줄이라도 일기장에 글을 적어보는 일.

그 작고 반복되는 움직임들이

결국 나를 다시 하루하루 움직이게 만드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삶은 거창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것들로

겨우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그 사소한 것들로 나를 붙잡는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감각으로 돌아오는 일이라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다시 붙잡는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다시 붙잡는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그저,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살아진다.

나는 오늘도,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끝났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에도,

심지어 더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도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쪽에 남는다.

희망은 크지 않아도 된다

완전히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나는 아직 여기 있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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