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온기, 겨울에게 건네다

늦가을, 발끝에 남은 작별의 소리

by 박순동

[11월의 마지막 날]

늦가을의 온기, 겨울에게 건네다

박순동


가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는 건, 언제나 느린 숨을 고르는 일입니다. 찬 기운이 코끝을 스치기 시작하는 늦가을, 거리에 떨어져 구르는 나뭇잎이 행인들의 발끝에 밟히며 사각거리는 소리는 단순한 낙엽 밟는 소리가 아니라, 계절이 서둘러 지나가는 작별 인사처럼 들립니다. 그래서일까요. 늦가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 소리들이 아쉬워 발걸음을 조금 더 느리게 걸어갑니다. 맑은 하늘 아래 붉고 노란빛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태우는 순간을, 스치는 아쉬움 속에서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고 싶어서입니다.


문득 길을 걷다가 멈춘 자리에는, 오래 전의 기억들이 짙은 단풍잎처럼 내려앉습니다. 희미해질 법도 한 젊은 날 골목길에서 맡았던 저녁 냄새, 골목길 풍경,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낡은 라디오의 멜로디, 그리고 별것 아닌 일에도 함께 웃고 긴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했던 얼굴들. 가을은 신기하게도,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애써 기억하며 찾지 않아도 지난 시간의 흔적을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들이는 마법을 부립니다. 나는 그때의 소중한 조각들이 바람에 흩어질까 걱정돼, 몇 번이고 뒤를 돌아 발자국을 살펴보곤 합니다.


얼마 전, 이 계절의 마지막 길목에서 만났던 노부부의 말이 유난히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천천히 가도 돼요, 어차피 가을은 금방 가니까요.”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고 지냈던 감정의 결을 다시 만져보게 한 그 한마디는, 제 안에 고여 있던 아쉬움을 따뜻한 위로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서둘러 쫓아가지 않아도, 가을의 깊은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추억의 온기는 결국 우리 마음에 어딘가에 고스란히 쌓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이제 곧 매서운 겨울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세상은 잠시 색을 잃은 듯 흰색과 회색으로 채워지겠지요. 하지만 그 겨울을 맞는 마음은 마냥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이 늦가을의 여운과 느린 숨 속에서 주워 담은 따스함을 글이라는 작은 그릇에 담아두었습니다. 기록한다는 행위는, 계절이 바뀌어도 마음속 온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에게 돌려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기에.


겨울의 찬 공기 속에서도, 오히려 봄날처럼 순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나간 가을의 황금빛 추억들을 꺼내어, 차가워진 손과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계절의 흐름은 멈출 수 없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감성의 꽃잎은 영원히 시들지 않고 다음 봄을 기다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느리게, 따뜻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나의 조용한 기록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5.11.30. 순동의 메모:

11월의 마지막 날,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품고 싶은 가을의 온기가 남아있길 바랍니다. 저는 이 느린 숨 속에서 주워 담은 모든 따스함을 작은 글에 담아, 곧 다가올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봄날처럼 순한 글을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다음 주 [겨울 묵상 詩] 시리즈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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