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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

Prologue

by 거의 다온

'언젠가 꼭 내 이야기를 써야지.'


나의 기다란 꿈의 목록 중 맨 아래 적힌 문장이다. 당연히 하게 될 것만 같아서 가장 막연한 날로 미뤄둔 일.


'그런데 내가 그 일을 완수하기 전에 죽으면 어떡하지?'


어느 날 저녁을 먹다 동생에게 부탁했다. 만약에 내가 먼저 죽는다면, 네가 그 일을 대신해 달라고. 흩어져 있는 내 삶의 파편들을 그러 모아 이야기를 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오래된 일기장과 다이어리, 보내지 못한 편지들을 숨겨둔 장소와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반드시 내가 그 일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그런 이야기다.




동시에 이것은 나를 이루는 수많은 조각들 중, 달리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달릴 때 나는 시간의 동시성을 경험한다. 달리는 내 곁으로는 낯선 과거와, 언젠가 본 듯 낯익은 미래가 동시에 스친다. 그 장면들을 힘껏 배웅하고 돌아보면 미세하게 더 빛나는 오늘이 펼쳐진다. 이것은 그 찰나의 마주침을 경험하는 자아, 달리는 내가 쓴 이야기다.


달리면서 나는 수많은 생각을 한다. 미래에 머물렀다 과거를 거슬러 달리다가 다시 솟아오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면 거짓말처럼 모든 상념이 밀려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달음질의 속도를 올린다. 시간이 멈추고 숨이 차오르는 순간, 낯선 쾌감에 정수리까지 얼얼해지는 순간. 이대로라면 영원히 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살아낸 날들에 관해 쓰겠다 다짐하고, 꿈꾸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계획했다. 그러다가 결국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에 관해 쓰기로 하였다.


아무쪼록 이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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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