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러닝메이트가 없다. 아직까지 동호회나 단체에 들어갈 계획도 없다. 그런데도 매번 달릴 때마다 나는 새로운 러닝메이트를 만든다.
오늘도 공원을 달리다 러닝메이트를 만났다. 언제부터 내 앞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꽤 긴 거리를 함께 달리며 뒷모습이 눈에 익을 무렵, 그녀는 내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된다. 그녀의 등을 보며 달리다가 어느새 앞선 내 곁으로, 이번에는 그녀의 그림자가 함께 달린다. 그러다 코스를 바꿨는지, 속도를 늦추거나 멈춘 것인지 어느 순간 사라진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작별. 구태여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계속 달리면서 잠시 눈을 감고 얼굴을 모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그려 본다. 지금도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거나, 어쩌면 숨을 고르며 걷고 있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느새 내가 된다. 나는 무수히 많은 내가 달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저만치 앞 놀이터에서 준비 운동을 하던 어느 날의 나. 겨우 두 바퀴를 돌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나. 꿈을 꾸며, 상념에 잠겨 걷고 달리던 나 ······ 그렇게 오늘의 나를 알지 못했던 수많은 나와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3년째 같은 공원을 달리고 있다. 공원 입구를 지나 중앙의 호수를 향해 달리면, 길은 곧장 호수 옆 공터로 내려가는 길과 달리기 좋은 언덕 위 포장길로 갈라진다. 포장길의 중간중간에는 나무 데크길이 몇 갈래로 뻗어 나와 다른 데크길과 만나거나 다시 본길로 합류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나의 내리막길로 모여든다. 그 길로 내려가면 호수를 끼고도는 산책로가 펼쳐진다. 위와 아래, 중심과 가장자리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 흐르듯 연결되는 이 공원의 구조는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흐름을 만든다.
나는 같은 코스를 돌면서 아까 스쳤던 사람을 다시 마주치기도, 어느 순간 다른 경로를 선택해 나란히 달리던 누군가와 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 각자의 속도로 달린다. 그러다 궤도가 겹치면 아주 잠시 서로의 삶을 스쳐가는 것이다. 그 잠깐의 스침 속에서 우린 눈 맞춤도, 대화도 없이 서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저 이 순간 곁을 달리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응원이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내가 빛나는 눈으로 나를 일별 한다. 나는 화답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 지으며 미래를 향해 내달린다. 그리고 나는 안다. 미래의 나 역시 이 순간의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나는 오늘도 혼자 달리는 동시에 함께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