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심으로 돌아가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는 바로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다. 이때 눈은 비처럼 흩날려서도 안되고 오다가 금방 그치는 것도 안된다. 공기 중 소음, 색감도 새하얗고 고요한 눈에 다 뒤덮일정도로, 무조건 함박눈이 내려야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발자국은 남겨줘야 하기에 함박눈이 내리면 나갈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지난겨울이 다 지나고 난 뒤에야 사놨던 눈오리, 눈하트 집게가 떠올라 이때다 싶어 서둘러 나가 보았다.
필름사진으로 찍은 눈오리&눈하트
집게로 눈을 한가득 긁어모은 뒤 바닥을 두 번 탁탁! 두드린다. 집게를 열면 앙증맞은 눈오리 한 마리가 만들어진다. 보기엔 쉬워 보여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은근히 요령이 필요한 작업이다. 아주 섬세하게 두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눈오리가 되기도 전에 부서지고 만다. 눈오리, 눈하트 하나에도 정성을 담아낸다. 손이 빨개져 시린 줄도 모르고.
한참을 만들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일까지 멀쩡히 있으려나?'
'누가 부수진 않겠지?'
눈 내리는 겨울만 되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부숴놨다,라는 얘기들을 간혹 듣기 때문일까. 사람만 한 크기로 만든 눈사람도 처참히 부서질 수 있는, 낭만 따위 사라진 마당에 내가 만든 작디작은 눈오리와 눈하트가 과연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었다. 그저 스스로 녹아 없어지는 결말만이 내가 바라는 유일한 것인데 말이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밖에 다시 나가봤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눈오리와 눈하트는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내가 두고 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기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눈오리와 눈사람을 왜 부숴버리는 걸까. 그것도 타인이 만들어놓은 것을 말이다. 그게 설령 재미로, 장난 삼아 한 일이라고 해도 그 사람들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다. 애초에 그 사람들은 직접 눈사람을 만들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직접 만들어봤다면 눈오리는 그냥 눈오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텐데.
사실 차가운 눈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어린이의 순수한 동심, 다 큰 성인의 어린 시절 향수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 눈오리나 눈사람을 쉽게 부숴버리는 사람은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고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장난'이라는 말로 어두운 마음을 포장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장난 하나에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