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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리 AIRY Oct 26. 2021

사람들과 염증

10월 18일 (월) ~ 10월 24일 (일)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목과 코에 염증을 얻었다.


일요일 밤에는 정말 기가 빨려 내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사람들이나 상황에 대한 염증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상황들은 이번 주에 항상 좋았다.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행위'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일주일 내내 많은 만남이 있었다. 무척 피곤해서다. 피곤해서 염증을 느낀다.


명학은 염증이 참 웃기다고 했다. 염증이란 꼭 필요한 건데 통증을 수반한다는 사실이 재밌나 보다.


- 염증이 꼭 필요해?

- 몸 바깥에서 뭔가 들어왔을 때 몸이 거기에 대항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거잖아. 그러니까 꼭 필요하지.




10월 18일 월요일

 전날 밤에 하우스메이트와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눴다. 화이트 와인을 소주잔에 담아 한 잔 했는데 거나하게 취했다. 결국 오늘 아침엔 춤 학원에 못 갔다. 매주 새로운 노래를 하는데, 월요일부터 빠지면 수요일, 금요일이 무척 부담스러워진다. 월요일에 진도를 놓쳤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동작을 바로바로 빨리 따라 하는 편이 아니다.

 세 달간 이루어졌던 월요일 오전 일정이 이번 주에 끝났다. 과외 회사 승급 점수를 위해 교육을 따로 들었다. 벌써 다섯 번째 교육이다. 승급 점수를 따면 급수가 올라가고, 내가 받는 수수료 퍼센티지가 올라간다. 10급 코치로 시작해서 이제 5급 코치가 되었다. 다음 달에는 4급 코치가 될 것이다. 4급 코치가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과외 타임이 있는데, 최근 과외를 많이 줄여서 타임을 충족시키지 못할 뻔했다. 학생 두 명을 더 맡고 나서야 4급 코치가 될 타임을 겨우 충족했다. 덕분에 시간과 여력, 에너지, 정신이 없어졌다. 이전에 1주일에 40~50시간 과외했을 때보단 훨씬 적은 시간이지만, 창작을 하기에는 아직도 버겁다.

 승급과 별개로 교육은 좋았다. 나름 교육회사여서 어린이, 청소년, 학부모에 대한 이해와 소통 방법에 대한 교육을 한다.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 활동이어도 필요에 의해 하게 되었을 때 장점을 잘 찾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섯 가지의 교육을 들으며 나의 습관과 정서, 인간관계 등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점이 좋다.

 저녁에는 꿈 모임을 했다. 나는 이번 주에 기억나는 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이게 내 꿈이라면~"이라면서 내 방식대로 생각해서 타인의 꿈에 대해 말을 하기도 했다.


10월 19일 화요일

예람 집 현관에서 끼 부리기

 오전에 공연 관련해서 코스모스 슈퍼스타(이하 코슈)와 작당모의를 하려고 줌 미팅을 했다. 주제와 대략적인 행사 내용을 정했다. 할 일이 더 늘어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고 중압감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이미 걸쳐있는 지원사업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또 의미도 있을 것이다. 주제와 내용은 <2021년 연말 결산 2022년 신년 계획 발표회>.

 저녁에는 예람이 Abi와 나를 집에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줬다. Abi를 기다리며 감자 와사비 마요 샌드위치를 먼저 먹었다. 우리는 못다 한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Abi까지 셋이 모인 후, 예람이 직접 만든 비건 강된장을 밥에 비벼먹으니 행복했다.

 갑자기 한 음악가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까지인 지원사업 일로 갑자기 연락해온 것이었다. 그 지원사업 제출이 오늘까지인 줄은 몰랐지만, 그 지원사업을 며칠 전에 알게 되어서 인지하고 있었다. 오전에 코슈와 작당 모의할 때 얘기 나눠보려고 했었는데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2~3시간 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염치 불구하고 코슈에게 전화를 걸어 1~2장짜리 지원사업 작성을 부탁했다. 코슈에게 부탁을 하고 나니 미안해서 예람 집에서 만남에 집중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코슈는 멋지게 지원서를 써서 제출해주었다. 마음이 아직 걸리면서도 조금은 안정된 채로 저녁 만남에 다시 집중했다.

 마지막에 예람, Abi와는 춤을 추고 헤어졌다. 예람 집이 너무 예뻐서 방문할 때마다 기분이 좋고 부럽다. 나도 예람처럼 잘 꾸미고 살고 싶다. 언젠간.

꿈의 집 예람네에서 Next Level


10월 20일 수요일

 월요일 아침에 춤 수업을 빠졌더라도 수요일에라도 갈까 말까 하다가 또 안 갔다. 금요일도 안 갈 것이다. 춤을 쉬니 조금 싫다. 다음 주엔 꼭 가야지.

 신경정신과에 가는 날이다. 처음에는 신경정신과에 금요일마다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월요일로 바뀌었다. 그러다 세 달간 월요일마다 회사 교육 일정이 생겨서 수요일로 내원 요일을 바꿨다. 이번 주까지만 수요일에 가고 다음 주부터는 다시 월요일에 다닐 생각이다.

-너 MBTI가 뭐야?  -NPYJ.

 최근 계속 카페라떼(두유)를 마셨는데 밤까지 몸이 쿵덕쿵덕 거려서 불안한 마음이 증폭되어 잠자기 어려웠다. 알콜이나 카페인이 안 맞는 걸 잘 알아서 카페인 섭취도 몇 년 간 거의 안 했었는데, 최근 일기집 작업을 하며 카페에 자주 가고 거의 매일 라떼를 마셨다. 라떼를 마시면 평소보다 기운이 올라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그런데 잠에 들기 어려운 부작용이 이제는 불편해져서 다시 라떼를 안 마실 생각을 한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카페인이 거의 들어있지 않은 차만 마셔야겠다.

 일기집을 맡아주시는 편집자 세미님과 밤 10시에 미팅을 했다. 거의 10분 만에 끝나는 간단한 미팅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편집자님께 힘을 받았다. 미팅이 끝나고 나서는 밤 11시에 과외 보충 수업이 또 있었다. 과외에 치여 산다.


10월 21일 목요일

 명학과 <듄>을 봤다. 세계관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없어서 공감할 거리나 느낄 만한 거리가 적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감동하며 봤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나에게도 좋을 걸 기대했는데 항상 같을 수는 없나 보다. 단 한 장면, 흑마법을 부리는 주체는 여자여야 하는데 왜 남자를 낳았냐는 식의 말이 재밌고 좋았다. 하지만 이성-비이성, 물리적 힘-주술, 남자-여자, 이런 식의 이분법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7236 coffee bar

 문화기관과 방송사가 함께 하는 공연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2월쯤 공연할 예정이다. 돈을 100만 원 넘게 준다. 나는 공연으로 100만 원 넘게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공연을 시작하고 처음 몇 년은 돈 상관없이 1주일에 한 번 이상 공연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취를 시작하고 모은 돈도 까먹어 과외 몇 개로는 점점 생활이 어려워졌다. 본격적으로 과외 회사에 입사해 과외를 하니 이번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도 돈 없던 때보다는 낫다. 나는 배부른 사람이 되어 버렸나?

 용기를 내어 일기집 추천사 부탁 연락을 했다. 그분의 사정도 있고 바쁘시거나 불편하실까 봐 걱정만 하다가 한 달이 그냥 지났다. 질러버리자, 하고 연락드렸는데 다행히 추천사를 써주시기로 했다. 정규 1집 제작기가 점점 정규 1집 제작 실패 일기로 되어갔을 때, 근황을 말씀드렸는데 좋은 아이디어라며 응원과 기운을 팍팍 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마음속에 계속 추천사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코슈가 제출한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이로써 나는 지원사업 다섯 개에 걸쳐 있게 된 것이다. 책 만들기 D.I.Y, 공연예술 관련 일하기, 청년팝 둥지프로젝트, 11월에 있을 코슈와의 합동 공연 관련 소규모 공연 지원 사업, 2월에 있을 방송사 공연. 지원사업으로 근근히 작업과 공연, 교류, 생활을 하는 기분이다.

 저녁에는 청년팝에서 커뮤니티 운영 역량 워크숍을 해서 나와 세희 언니, 모모 언니가 참여했다. 소소하게라도 성취한 것들을 매슬로우 욕구 5단계에 맞춰보고 토론해봤다. 비전 수립을 위해 구성원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지 ORID(Objective, Reflective, Introspective, Decisional) 질문에 맞춰 질문도 만들어봤다.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예술가로 사는 환경은 어떤가?" (O)

 "성차별적인 상황은 무엇이 있었나?" (O)

 "본인에게 안정적인 상황이란?" (R)

 "연대는 어떤 의미인가?" (I)

 "마음 챙김이 중요한가?" (I)

 "계획은 실천은 어떻게 할까?" (D)

 "수정과 보완은 어떨까?" (D)

 "어떻게 마음 챙기며 마음 편하게 진행할까?" (D)
 이 질문들은 지향, 세희, 모모, 내가 함께 하는 둥지 프로젝트의 The Galentines 활동의 축소판이다.

하우스메이트가 만든 종이공과 묘묘

 

10월 22일 금요일

 [우리의 기억]이라는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 또한 내가 향유했던 공간에 대한 공연이라서 의미가 있기에 하게 된 공연이었다. 물론 출연료도 많이 주어져서 하게 되었다. 출연료를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공연은 무엇이든 했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벌기에 그리고 내 시간을 갖기에도 빠듯하고 체력이 안 된다. 작업도 못 하고 있는데.


10월 23일 토요일

은지의 민화

 과외가 끝나고 5시에 가회 민화박물관으로 갔다. 오랜 친구 은지의 전시회가 있었다. 예전에는 '초충도'라고 꽃과 곤충이 많은 그림을 많이 봤었는데, 오늘 가서 본 은지의 작품에는 동물들이 많았다. 토끼, 이무기, 나비, 새, 잉어, 사마귀, 사슴, 꿩. 석류도 예뻤다. 회사 생활하며 바쁜 가운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발표도 하는 은지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응원하게 된다. 나도 회사 생활하며 바쁜 가운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저녁을 먹은 후 홍제역으로 넘어가 한 카페에 들어갔다. 혜인이도 왔다. 혜인이는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다. 처음 듣는 혜인이의 예전 이야기들을 들으며 시간이 갔다. 은지와 혜인이는 나의 20년 친구들이다. 그런데 아직도 처음 듣는 옛날이야기가 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래 만났어도, 아무리 매일 본다고 해도. 반대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 걸까? 또는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흩어져 있는 내 모습을 본다. 그 모습들을 모아본다면 피카소의 그림처럼 기괴할 거야.


10월 24일 일요일

사진 명학과 실제 명학 (실제란 무엇인가)

 명학, 어진, Abi와 광화문역에 있는 일민미술관에 갔다. <Super-fine: 가벼운 사진술>이라는 사진전을 보러 갔다. 지난주에 예매를 못 해서 방문했다가 관람 실패한 사진전이다. 이번에는 네 명 다 예약을 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정면에 이강혁(snakepool) 사진작가 님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명학을 모델로 한 사진이 잘 보였다. 명학의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명학의 사진을 찍겠다는 소원을 성취했다.

 다른 사진작가들의 작품들도 좋았다. Abi와 어진도 전시회가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특히 오가영 작가의 작품에 매료됐다. "사진 속의 형상을 오려 위치를 이동시키고, 낙서를 덧 그리고, 연관성 없는 여러 사진을 재료로 임의의 장면을 구성하는 일"인 "그의 신작은 액자도 파티션도 아닌 중립적인 상태로 미술관 전시실에 놓여있다."(설명서 참조)

 정연두 작가의 <기억은 집과 함께 자란다>는 파노라마 편집 영상 형식으로 서울의 재개발 지역을 찍은 수천 장의 정지 이미지를 이어 붙인 것이었다. 작품 가까이에 가면 독백이 흐르고, 독백을 들으며 고요한 시각적 생생함에 빠져들었다.

 전시회를 다 보고 우리 넷은 이번 주말에도 청운효자동의 큔에 방문했다. 각자 샌드위치와 스프를 시켰다. 네 조각으로 나오는 샌드위치를 다른 사람들과 바꿨다. 결국 나는 그날 큔의 거의 모든 샌드위치를 다 먹어보게 되었다.

 이후 스타벅스에 들려 Abi가 추천하는 펌킨 스파이스 라떼를 샀다. 지나다가 향 가게에도 들리기도 했다. 어진이 좋아한다는 경복궁 안의 나무 아래에 잠시 앉았다. 이후에 Abi는 집으로 갔다. 어진, 명학, 나는 어진이 일하는 mother offline 카페에 갔다. 거기에서 1시간 넘게 잠들었다. 야외 자리에서 잠들었다가, 중간에 실내 소파 자리가 나서 소파 자리에 가서 다시 잠들었다. 자극적인 전자음악이 크게 흘러나왔지만, 내 잠이 다 이겼다.

구운 쿠키 (먹지 마세요)

 노트북을 들고 나오진 않았지만 몸이 무거워서 가방도 무겁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명학에게 징징거리니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마더에서 나와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이하 SCR)로 걸어갔다. 조금 걷다가 명학이 "맞다, 가방 들어주기로 했지?" 물어봤다. 왠지 미안해져서 가방을 안 줬는데 "기회가 얼마 없어."라면서 지금 안 주면 안 들어줄 거라는 식으로 말했다. 냉큼 가방을 명학에게 줬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걸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SCR에서 오후 5시에 텐거의 있다 언니와 라아이의 공연 겸 전시회가 있었다. 우린 5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공연은 6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수많은 돌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나는 구운 쿠키 같은 돌을 골라 구매했다.

 ITTA X RAAI의 SCR 데뷔 공연이라고 했다. y2k 92의 지빈 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너무 쑥스러워서 인사만 하고 "저는 애리라고 하는데요"라고 바보 같이 말했다. 보고 있던 있다 언니가 나를 지민 님에게 소개해줬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새로 보는 얼굴들도 많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알던 사람들과 새롭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중간에 키라라도 와서 라아이와 있다 언니의 공연을 함께 보았다.

 라아이는 평소에 공연이 딱 시작되면 긴장이 풀린다는데, 오늘은 끝까지 긴장하고 말았다. 공연 전부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다며 한껏 긴장된 상태였다. 긴장했다고는 하지만 아름다운 공연을 보여줘서 감사했다. 있다 언니를 너무나도 존경한다.

 공연을 보고 명학과 SCR을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기분이 좋고 새로웠으나 왠지 기가 빨린 느낌에 말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다. 너무 힘들어서 택시 타고 집으로 왔다. 사람들을 많이 만난 주였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염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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