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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리 AIRY Dec 01. 2021

천천히 걷기

11월 15일 (월) ~ 11월 28일 (일)

11월 15일 월요일

 춤 학원으로 일주일을 시작했다. 이번 주에도 신경정신과에서는 말할 거리가 많지 않았다.

 "똑같아요. 아침에 춤 가고, 일기집 낼 준비하고, 과외하고, 친구들 만나고..."

 이랑 님 댁에 Abi와 병문안을 갔다. 이랑 님의 이웃이신 금개 님도 만났다. 이랑 님께서 이메일 관리를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직접 보여주셨다. 감사하고 재미있었다. 이랑 님의 건강이 걱정되면서도 실례를 할까 조심스러웠다. 이랑 님은 유머 있으시고 예리하고 자주 웃으신다. 오늘도 그랬다. 나는 자주 웃지만, 유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유머가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 기분이 산뜻해진다. 자주 만나고 싶어 진다. 고맙다.

 이랑, Abi, 나 이렇게 셋이 아주 천천히 걷는 산책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30분 동안 돌면서 평소에는 지나쳤을 법한 것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아주 천천히 걸어보았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는 걷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귀찮아졌다. 명학은 걷는 걸 아주 좋아해서 하루에 10,000보는 기본으로 걷는다. 하우스메이트 이영도 한참 산책에 빠졌을 때가 있다. 이영이 산책 메이트와 함께 산책할 때 나에게도 산책 같이 하는 건 어떤지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나는 날씨, 이른 시간 등등의 핑계로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합류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산책처럼 천천히 걷는 날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없었을 것이다. Abi와 이랑 님은 길거리에 있는 사물, 식물을 보며 한 마디씩 하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최근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계속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병문안을 갔다가 오히려 에너지를 받고 온 날이었다.

 저녁을 안 먹은 터라 Abi와 이랑 님 댁을 나와 걷다가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근처에 명학이 있어서 왔다. 


11월 16일 화요일

 일기집 디자인을 맡은 디오브젝트 사무실에서 미팅이 있었다. 세미 님도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 앨범에 관한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 어떤지 저런 느낌 어떤지 어떤 톤으로 가고 싶은지 생각이 많았는데, 책에 대해서는 어떤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는지 질문을 들었을 때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말하기도 했다. 

 이번 주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수요일, 금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다음 주에는 텀블벅 관련 일과 공연 준비로 바쁘기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주 수, 금, 다음 주 월, 수, 금에는 춤 학원에 가지 않는 걸로 정지시켜 놨다.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갈까 하다가 돈을 아끼려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Abi에게 연락이 왔다. 걱정이 되어서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Abi 집에 갔다. Abi가 힘든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스스로를 정돈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어서 잠깐 들려 Abi가 먹고 싶은 과자를 사 갔다. 집에 돌아왔다.


11월 17일 수요일

 갑자기 5~9시 과외가 취소됐다. 저번 주 화요일에 만난 유진과 명학을 오늘 밤 9시에도 보기로 했더란다. 그런데 내 과외가 취소되어서 더 일찍 만나기로 했다. 6시, 나나하치가 열자마자 명학과 나나하치에 들어섰다. 안키모에 돌산갓, 장어구이에 참나물 무친 거, 엔초비 크림 파스타 등을 배부르게 먹었다. 유진은 8시쯤 와서 합류했다. 뇌 님을 우연히 만났다. 마음 졸이며 뇌 님께 팬심을 담은 메시지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의뢰한 일, 궁동산에서 '낡은 우편함' 뮤직비디오를 찍던 기억 등 반짝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2차는 우리집. 야식을 배달시켰다. 시티팝을 들으며 춤을 췄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명학과 나는 유진을 보러 암스테르담에 가기로 했다는 것. 밤 12시쯤 졸리다고 내가 자자고 했다. 내 방에서 옹기종기 잠들었다.


11월 18일 목요일

 밤에 합정 하이에나에 지향, 세희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최근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중간에 Abi가 놀러 왔고, 명학 또한 놀러 왔다. 떡볶이와 감바스를 시켰는데 감탄스러웠다. 음악 선곡을 받는 곳이라 우리는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했다. 12월에 Abi가 The Strokes 공연을 보러 뉴욕에 간다고 했다. 다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뉴욕에 다시 가고 싶다.


11월 19일 금요일

 <Fire Heart> 작업하셨던 배인경 작가님을 만나 예술-기술 지원사업 지원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 준비도 생각도 없이 만나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지원서를 거의 다 작성하기까지 장장 8시간 걸렸다. 밤에는 과외를 했다.

 "원룸에서 사는 경험은 우주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또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한 칸짜리 방에 홀로 있으면 외로웠다. 하지만 막상 또 다른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에게서도 우주와 우주 속 홀로 있는 존재를 보게 될 때가 있었다. 우리는 각자 외로운 별이다. 오해를 하기도 하고, 어렴풋한 이해를 하기도 한다. 타인은 내가 인지하는 또 다른 나의 인식일 수도 있다. 나 또한 타인이 인지하는 또 다른 타인의 인식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외로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세계에서 벗어나 생경한 느낌을 호기심으로 발현시키면 감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외로운 별들이 각각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오히려 위안을 얻고 따뜻해지기도 할 수 있다. 홀로씩, 함께, 기본적으로 ‘오해’가 깔린 세상에서 이를 딛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해’로 나아가고 싶다."


11월 20일 토요일

 일기집에 실릴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한 날이다. Abi네 집에 갔다.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고 내가 선곡해 온 음악을 들으며 들었다. 


Radiohead - Climbing Up the Walls

Portishead - Roads

Blonde Redhead - Elephant Woman

SBTRKT - Never Never

Lorn - Acid Rain

Shintaro Sakamoto - Birth of the Super Cult

네스티요나 - 사라지지 않는, 밤 (Spotify에 없어서 그 대신 키린지 선곡)

Kirinji - Aliens
Client - Down to the Underground (Ft. Pete Doherty)


 Abi와 나는 30분 동안 말없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일을 했다. 분명히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 촬영을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말없이 춤을 추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저녁에 준민을 만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좋은 영상도 많이 봤다. 나중에는 같이 작업을 하기로 했다. 대만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켰다. 명학도 왔다. 

 명학과 안산으로 산책을 갔다. 예전에 시와 님과 병규 님과 걸었던 길을 못 찾았다. 그 길이 깜깜해서 좋았는데. 그래도 오늘 걸은 길도 좋았다.


11월 21일 일요일

 Modeci에서 키라라의 공연이 있었다. 명학과 Abi와 함께 들러 키라라의 공연을 봤다. Modeci에는 처음 가봤다. 오랜만에 키라라의 공연을 봤다. 마지막 곡에서는 내가 피처링한 '폭발'에서의 내 목소리가 소스로 쓰여 흘러나왔다.

 명학과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택시는 안 잡혔다. 택시를 잡을 겸 시간을 보내려고 합정 빈티지 가게에 들렀다. 10만 원을 써버렸다. 귀여운 원피스와 명학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코르덴 바지와 품이 아주 큰 랄프 로렌 풀오버 상의를 충동구매했다.


11월 22일 월요일

 꿈에서 한 젊은 여자가 살해당했다. 꿈애리는 여러 사람들이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하는 장면들을 보며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했다. 살해가 일어난 시간에 사람들이 각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순간순간 이 사람이 범인이면 살해 장면이나 시체가 나올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알리바이를 보니 다 무고해 보였다. 꿈애리는 '일단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보면 볼수록 다 같이 죽인 건가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웠다.

 꿈에서 한 할머니는 슬퍼했다. 동네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있었다. 할머니의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로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고 하며 다독였다. 꿈애리의 직감에 할머니는 범인이 아닌 것 같았다. 죽은 젊은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 용의자로 의심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지치는 마음이 섞여 죽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할아버지는 그걸 알고 죽지 말고 참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평소 범죄나 살해에 대한 꿈은 거의 꾸지 않는다. 꿈에서 깨서도 계속 무서웠다. 잠에서 깨니까 꿈애리가 범인인데 스스로 그걸 모르는 설정인 건가 싶기도 했다.

 꿈모임을 했다.

- 꿈애리가 죽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와서 소름 돋았다. 꿈애리가 자신을 누가 죽였나 그 시간대로 돌아가 보는 것일 수도. 아니면 누가 죽인 게 아닐 수도.

- 꿈에서 죽음은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단다. 변화의 이유는 특정한 하나(한 사람)가 아니라 장면에 나온 모든 것.

- 할머니는 성숙한 나

- 세대에 대한 인식

- 죄책감


+ 11월 12일 금요일 꿈일기

 꿈애리는 꿈은별을 오랜만에 만나 함께 이야기하며 걸었다. 꿈애리는 꿈은별에게 마음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꿈은별이 꿈애리의 마음을 몰라주자 꿈애리는 약간 버럭 화를 냈다.

 급식 먹는 중에 다른 꿈애들 두 명이 꿈애리를 불렀다. 꿈애리의 집에서 학교로 연락이 와서였다. 꿈애리의 꿈아빠는 희귀암이라 낫기 어렵다는 소식이었다. 꿈애리는 그제야 기분이 이상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아까 문자로 꿈아빠의 소식을 봐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6교시에 꿈애리가 발표자여서 발표를 해야 했다. 꿈애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펑펑 울었다. 꿈애리는 꿈엄마와 전화했다. 꿈애리는 꿈엄마에게 발표 때문에 바로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꿈아빠가 곧 떠나는 것도 아닌데 꿈애리는 발표 때문에 바로 꿈아빠한테 못 가봐서 꿈아빠를 못 만날까 봐 불안하고 죄스러웠다. 꿈아빠의 목소리도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꿈아빠는 힘이 없었다.

 꿈에서 깨어 일어나서도 마음이 아팠다. 새벽 6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통 이 시간부터 깨어있는데 엄마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내가 이런저런 꿈을 꿨는데 별일 없는지 물어봤고, 엄마는 별일 없다며 더 잔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11월 23일 화요일

 오전부터 보틀라운지에 Abi와 명학, 영원이 모두 각자의 이유로 모여 붙어 앉았다.

 저녁에는 인경 작가님과 지원사업 지원서를 마무리했다.


11월 24일 수요일

 디오브젝트의 디자인 시안, 수토메의 제품 확인결과서, Abi의 프로필 사진이 속속들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한번 반려된 텀블벅 프로젝트 승인을 받기 위해 자료를 취합하여 프로젝트를 보완하고 심사 요청을 다시 했다. 

 점심은 명학과 분식을, 저녁에는 우동카덴에서 명학과 카레우동과 후토마키를 먹었다.


11월 25일 목요일

https://www.tumblbug.com/airyanddiaryremained
표지 시안 : 디오브젝트 디자인
Abi Raymaker 사진
Abi Raymaker 사진

 텀블벅 프로젝트 심사 승인이 났다!!!!!!!!!!!!!!!!!!!!!!!!! 향 제품에 대한 심사 과정은 약간 까다롭게 느껴졌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젝트 계획 내에 상품정보고시를 기재해야 한다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향 제조를 문의한 수토메에도 물어보고, 서치도 해봤는데 감을 못 잡았다. 명학이 곧바로 서치를 해서 상품정보고시란 무엇인지 예시를 알려줬다. 나도 검색해봤는데 못 찾은 걸 보면 내 검색 능력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다. 명학 덕분에 수토메에서 상품정보고시에 부합하는 정보를 받아 텀블벅 프로젝트 계획 내에 기재할 수 있었다. 

 처음 프로젝트 심사 신청을 했을 때 일곱 가지나 보완할 점이 있었는데 오늘 오후 5시 40분쯤 드디어 완료했다. 6시가 지나도 승인이 나지 않아 내일로 심사가 넘어가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프로젝트 승인 메일을 받았다.

 내친김에 내일인 11월 26일 금요일 오후 6시에 텀블벅 오픈하기로 했다. 공개 예정을 걸어놓고 명학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는 텀블벅 프로젝트 승인을 받고 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텀블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목표 금액 250만 원이 안 채워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일 공연은 어떻게 될 것인가!? 명학에게 위로할 준비 하라고 말했다. 미리 엄살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악을 생각하는 것 또한 내가 나를 보호하는 방식일 테다. 하지만 계속 최악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잘될 수도, 잘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도 금방 그 생각을 훠이훠이 물리치려고 한다.

 내일 공연은 <2021년 연말결산 2022년 신년계획 발표회>로, 1부는 ppt 프레젠테이션, 2부는 신곡 발표 형식이다. ppt는 다 만들었는데, 신곡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못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키라라가 신곡 mr 마스터링을 도와줬다. 신곡 가사 정리를 하다 잠이 와서 통화하다 잠이 들었다.


11월 26일 금요일

 뒤늦게 연습실을 잡으려고 했더니 리허설 시간 직전밖에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명학이 A4용지에 가사를 뽑아주었다. ppt 등으로 코슈와 계속 연락 중이었는데, 코슈가 연습실을 잡아놨으니 연습하겠느냐고 물어봐주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코슈가 잡아놓은 연습실에 가서 첫 연습을 했다. 코슈에게 미리 mr을 보내 놓고 코슈 장비로 공연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보컬 이펙터만 가지고 가면 됐다. (하지만 텀블벅 오픈 준비를 하기 위해 맥북을 챙겨 나오긴 했다.)

 mr만을 틀어놓고 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당일에서야 첫 연습을 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있나, 이렇게 된 거 어쨌든 해야 했다. '고요한 현재'는 바운스 과정에서 귀가 너무 아픈 소리가 생겨서 공연을 안 하기로 했다.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며 공연 셋리스트를 또 바꿨다. 

1. 귀염둥이 폭군

2. 무의미의 의미

3. 어디 살아

4. 수, 없는 밤

5. Building

 연습을 끝내고 코슈와 함께 5시 조금 넘어 언플러그드에 도착했다. 한 끼도 못 먹어서 토스트를 시켜 배를 채웠다. 6시 전에 도착한 향 제품 사진을 텀블벅 프로젝트 란에 업데이트하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6시가 되고, 코슈는 리허설을 하러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6시에 맞춰 텀블벅 오픈을 홍보하기 위해 1층 카페에 남았다. 6시, 미리 준비한 사진과 캡션을 SNS에 업로드했다.
 1-2분이 지났는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원자 분들이 최고가인 옵션을 골라 각각 300,000원을 후원해준 것이다. 사실 100만 원도 채울 수 있을까 불안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텀블벅 목표 금액을 100만 원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출판하면 너무 적자라서 눈을 질끈 감고 두려움에 떨며 목표 금액을 250만 원으로 올린 거였다. 텀블벅을 연지 얼마 안 되어 순식간에 90만 원이 채워졌다. 후원자분들께 감사했다......

 지하 공연장으로 내려가서 코슈의 리허설을 봤다. 연습실에서보다 사운드가 크고 좋았다. 코슈는 세밀하게 사운드체크를 했다. 코슈의 리허설이 끝나고 내 차례. 연습실에서 하지 않았던 보컬 이펙터 조작도 해보았다. 연습실에서보다 괜찮은 것 같았다. 


 <2021년 연말결산 2022년 신년계획 발표회>를 시작했다.

1부

애리의 2021년 연말결산 2022년 신년계획 ppt 발표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2021년 연말결산 2022년 신년계획 ppt 발표

2부

애리의 신곡 공연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신곡 공연


 나는 2021년을 월별로 결산했다. 생계인 과외 일,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한 그 여자 작곡 그 여자 작사 프로젝트, 각종 공연, 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만들어진 뮤직비디오, 영상미술작품에 참여한 일, 피처링, 일기집 제작 등 2021년을 어떻게 지냈는지 발표했다. 나는 내가 올해도 1집을 만들지 못하고 일기만 쓴 줄 알았는데 ppt를 만들며 나름 무언가를 하며 지냈구나 싶었다.

 2022년 신년계획은 1집 만들기로 꽉 채웠다. 이미 발표한 싱글이나 컴필레이션 참여곡, 음원은 아직 없지만 영상매체에 미리 발표한 곡들도 1집에 수록될 예정이지만, 오늘 공연한 신곡은 그 어느 곳에서도 공연이나 영상 형태로 발표한 적 없는 말 그대로 '신곡'이었다. 오늘 공연한 신곡들을 잘 다듬어 1집에 싣고 싶다.

 공연할 때는 내 조마조마한 마음보다 조금은 더 뻔뻔해져야 한다. 자신감 있는 척하면 자신감 있게 보이기도 하고 자신감도 생긴다. 음악에 푹 빠져 노래하는 척하면 음악에 푹 빠져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푹 빠지기도 한다. 중학교 때 풍물부, 고등학교 때 실용음악동아리(노래동아리), 대학교 때 밴드부를 거치며 선배들로부터 "공연할 때 너가 짱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공통적으로 들었다. 그 말이 나에게 남았나 보다. 공연을 할 때 집중하는 나만의 방법이 되었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도 댄서들이 작품 발표나 배틀하기 전에 계속 그런 식의 말을 해서 신기하고 내가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오늘 공연할 때 나의 원래 마음보다 조금 더 뻔뻔하게 했다. 하지만 완전히 뻔뻔하지는 못했다. 컴퓨터로 mr을 틀고, 기타를 연주하지 않고, 가사를 보며, 그렇게 노래하려니 여러모로 영 어색했다. 앞으로 더 다듬고 연습하면서 더 자연스럽게 뻔뻔해질 테다.

 코슈의 2021년 연말결산 2022년 신년계획과 신곡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코슈는 올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작업을 많이 했다.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다. 'Listen and Repeat', 'Extra'를 들으며 마음이 뛰었다. 슬프고 아름다워서. 코슈 덕분에 딱딱한 나의 ppt 발표에 유머도 첨가됐다.

 코슈, 명학, 사월, 이다, 나비와 함께 언플러그드에서 한 잔만 하고 가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이 10시가 넘어 집이 아닌 공간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니 감회가 새로웠다.

 명학과 합정에 있는 벌트 Vurt에 갔다. 테크노가 흘렀다. 처음에는 몸이 익지 않다가 피곤high가 떠서 마구 춤을 췄다. 명학도 마구 춤을 췄다. 


11월 27일 토요일

 오전에는 일을 하고 점심 먹고 외출해서 하루 종일 명학과 시간을 보냈다. 보틀라운지에서 노트북으로 해야 할 일을 하고 쌈밥을 먹으러 갔다. 저녁에 있는 과외가 두 개나 파토났다. 몸이 찌뿌둥했다. 타이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중간에 시간이 떠서 망원동 텔레비전 바에 들렀다. 구미 씨가 디제잉을 하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했다. 아무도 춤추고 있지 않았다. 춤추고 싶다고 하니 명학이 디제잉하는 곳 앞으로 나가서 춤출까 물어봤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가기로 했다. 우리는 또 춤을 췄다. 다음은 이환 씨 차례였는데 마사지 예약 시간을 맞춰야 해서 못 듣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이환 씨를 봤다.

 망원동에 살 적에 가본 타이 마사지 가게였다. 망원동 집과 2분 거리. 혼자 가곤 했다. 도마랑도 이 마사지 가게에 가기로 다짐만 몇 번 하고 결국 같이 가진 못했다. 아무튼 오늘은 명학과 함께 마사지를 받았다. 명학은 마사지를 시작하자마자 거의 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마사지를 받으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11월 28일 일요일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명학과 동네 영화관에서 <아네트>를 봤다. 레오 까락스의 신작이었다. 개봉한지는 한 달 정도 됐지만. 영화의 색감에, 사운드에 매료됐다. 유치한 가사였어도 말이다. 나는 사운드에 약하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약하다. 명학은 본인이 까락스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아네트>를 보며 오랜만에 "내가 이래서 영화 보는 걸 그렇게 좋아했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련되면서도 조악한 느낌을 내는 영상편집에, 유려하면서도 뭔가 어색하고 거친 진행에, 뻔한 인물상과 상징에, 그런데 이상한 느낌을 내는 인물상과 인물 표현에. 지루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몰락하는 헨리(아담 드라이버)를 비웃다가 안쓰러워했다. 모든 이상하고 못됐고 이기적인 인물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던 날이 있었다. 그 관성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래서 헨리를 안쓰러워하고 어느 면에서는 공감하기도 했다. 예전에도 영화를 볼 때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말하곤 했다. 평소에는 이해할 수 없던 사람들을 잠시나마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됐다.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어떠한 인물을 미워하는 적이 별로 없었다. 어쩐지 모든 인물에 나를 이입하고 사랑하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상하고 못됐고 이기적인 인물을 완전히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생겨버렸다. 오늘도 헨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얄미워하는 마음도 아주 컸다.

 안(마리옹 꼬띠아르)의 캐릭터 변화도 익숙했다. 결정적으로 안이 죽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아주 새롭지는 않았다. 여성 캐릭터의 희생을 도구로 삼아 남성 캐릭터의 광기와 분노, 낮은 자존감, 회개를 그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아네트>를 보고 고대 비극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영문학과 시간에 배웠던 작품들과 상징이 생각났다. 사랑, 죽음, 한 서린 복수(특히 여자), 야망(특히 남자), 몰락. 

 그런데 왜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가? 익숙해서이기도 하고, 새로운 점도 있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사운드와 색감, 매끄러움과 조악함의 밀땅에 약하다.

 마지막에는 눈물이 났다. 사랑했던 두 사람의 딸인 아네트가 인형에서 사람으로 거듭나 하는 말이 잔인하고 슬펐다. 아네트가 잘 살아나가길. 그럴 거야.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아나가는 거지?) 아네트에게서 나를 보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생각났다. 그 사람들은 아네트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보틀라운지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와 님과 연락이 닿아 갑자기 중국음식을 먹으러 가게 됐다. 시와 님, 병규 님, 명학과 넷이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걸어서 잉어빵까지 후식으로 사 먹었다. 

 연희 1 지구라는 카페에 들렀다가 집에 왔다. 


* 2021년 12월 12일 일요일까지 텀블벅 프로젝트가 열립니다.

https://www.tumblbug.com/airyanddiaryrem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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