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2시, TENGGER X RAAI 스페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함께 한다고 해서 빗길을 뚫고 연희동 미도파로 향했다. 몇 달 전에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가본 이후로 두 번째 방문이었다. 있다 언니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조금 늦는다고 했다. 카페오레 귀리 우유(콜드)를 시켜 자리에 앉아 홀짝이고 있는데 미도파 안쪽으로 들어온 초라 님과 눈이 마주쳤다. 몇 년 만이었다.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초라 님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물감과 붓을 꺼냈다. 그리고 갑자기 그림 타임이 시작됐다. 나는 초라를 그렸다. 초라의 앞머리, 초라의 원피스, 초라의 워커를 봤다. 초라도 그림을 그렸는데 사진으로 못 가져왔다.
미도파에서 RAAI -Little Stone MV
텐거와 라아이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때론 다른 음악들도 나오기도 했다. 초라 님은 미도파 풍경을 그리며, 나는 초라 님을 그리며 시간이 지나갔다. 어떻게 지내는지, 돈은 무엇으로 버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공백이 많아 편안한 대화였다.
라아이와 있다 언니가 도착하고 나서도 공백이 많아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Hiroshi Yoshimura의 [Soundscape 1: Surround]를 듣고 명선이 생각나서 앨범 커버를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명선이 좋아하는 앨범이라고 해서 괜히 뿌듯했다. 오늘 플레이리스트는 모두 명선과 아주 잘 어울렸다. 있다 언니는 위 앨범을 틀어놓고 세 식구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고 했다. 라아이가 "아침인 줄 알았잖아~"라고 말했다.
몇 달 전, 지은님께서 요가 멤버를 모집하셨을 때 연락을 드렸다. 저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맞아 인요가 참여했다. 요가 선생님은 요가 시간 내내 몸의 상태와 자세를 봐주시면서 몸과 마음, 현재, 숨, 감사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힘든 것도 살아 있어서 힘든 거"라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얼마나 감사해요. 숨을 쉰다는 게." 나도 가끔 나에게 스스로 말한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지만 감사의 말은 항상 비난 후에 오고, 감사의 말 뒤에도 비난이 따라온다. 온전히 잘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무가치하고 쓸모없다는 생각. 관성적으로 스스로를 비난하다가, 그걸 멈추고는 의식적으로 "숨이라도 쉬어서 감사하다, 애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비난은 나중에 또 저절로 몰려올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고 싶다. 계속 의식적으로 나에게 감사하고 싶다.
나비 님 집에 또 왔다. 이래저래 며칠간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고민도 말하게 되었다. 나비 님 집에 있는 프린터기로 발표할 글을 뽑았다. 나비 님은 출판 예정인 내 글을 봐주었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진지하게 봐주셔서 감사했다. 오늘도 여기서 신세를 질 것 같다. 이제 2차 수정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