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자랐고, 도쿄에서 다시 시작했다.

by 도현수

나는 부산에서 자랐고, 도쿄에서 시작한다.

내 나이 서른하나.

한국에서는 이 나이쯤 되면,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다.

“직업은?”, “결혼은?”

마치 사회의 기본적인 호구조사를 하듯.


일본은 조금 다르다.

이름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조심스럽게 나온다.

관계의 속도가 다르다는 건, 때로는 숨 쉴 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한국의 오지랖과 잔소리를 피하려고 일본으로 온 거 아니냐”라고.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도망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었다.


도쿄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 알아듣기 힘든 표지판들.

목적지까지 헤매던 내 발걸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은 하루하루 내 안에 자리를 넓혀갔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결국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한계를 정한 것도, 두려워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조금씩, 하루하루를 넘기며

도쿄는 내 도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처음 몇 주는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했다.

말투, 표정, 걷는 속도까지 이 도시 사람들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내 리듬은 엉망이 되어갔다.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멈췄다.

이 도시의 방식 대신,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침을 천천히 시작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네를 천천히 걷는다.

하루에 하나만 해도 괜찮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졌다면, 그것이면 충분하다.


완벽한 적응보다,

불완전한 나를 존중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는 도쿄에 살고 있지만,

이 도시에 길들여지지는 않았다.

대신 이 도시를,

조금씩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