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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옥 Nov 26. 2021

오리궁둥이

병원 가다


베란다 창문 너머 연두가 마음을 훔쳐 달아난다. 뒤쫓은 내 눈에 갖가지 봄 연두는 온 산을 아름답게 채색해 놓았다.

오늘은 대학병원에 예약이 있는 날이다. 예쁘게 차려입고 바람 쐬러 가자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함께 어디든 간다는 사실이 엄마는 싫지 않으신 것 같다. 페달을 밟은 오른쪽 발에 힘이 들어간다. 검사 결과까지 다 보고 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한 시간이 넘게 운전을 하고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도파민 PET 검사를 하면 파킨슨인지 확인이 된다 해서 예약을 해 놓았다.


지난여름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는 엉덩이가 안 떨어진다며 갑자기 손을 잡아 달라하신다. 나는 농담인 줄 알았다. 엄마 엉덩이가 무거워서 그렇다고 웃으며 나는 손을 잡아당겨드렸다. 엄마도 웃으면서 그 엉덩이가 무거우면 오늘만 무거우냐며 함께 웃었다. 엄마는 오리궁둥이다. 엉덩이가 볼록하니 예뻐 보이는 엉덩이다. 가끔 엄마 엉덩이를 오리 궁둥이라고 놀린 적이 있다. 오리처럼 엉덩이가 볼록해서 오리궁둥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외출할 때 늘 바지를 입고 뒷모습을 거울로 비춰 볼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앞에서 엄마 엉덩이 좀 집어넣어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엄마의 오리 궁둥이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때마다 엄마는 난처해하며 나에게 손을 내미신다. 나이 들어 근력이 빠진 상체보다 당연히 오리궁둥이인 엉덩이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얘기를 지인께 했더니 웃으면서 그러지 말고 신경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를 했다. 작은 병도 초기에 발견하지 못해서 병이 커지는 일들이 종종 있다는 걸 들었다. 나도 미룰 것이 아니란 생각에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엄마와 함께 들렀다.


의사는 엄마에게 의자를 내밀며 앉았다 일어나 보라고 한다. 엄마의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자 손을 내밀어 잡아주신다. 잡았던 손을 놓으며 한 바퀴 걸어보라고 한다. 엄마가 걸을 동안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어 살피신다. 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지만 파킨슨 증세의 하나로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고 덧붙인다. 약을 써보고 좋아지는지 보자고 했다. 생각지 못한 의사의 한마디에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너무 엄마에게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는 약을 먹으면 몸이 유연해지고 부드러울 거라며 안심을 시켰다.


오늘은 엄마 집에서 함께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부자리를 봐드리니 피곤하신지 금방 잠이 드셨다. 모로 누워 베개 밑으로 늘어져 있는 얼굴에다 검불 같은 머리카락이 뿌리 쪽에 흰색의 경계를 긋고 있다. 염색할 때가 지났음이라.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엄마의 발등이 앙상하다. 엄마는 잠결에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엄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처음 듣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그러다가 가위에 눌리는지 소리를 지르고 잠꼬대를 하신다. 흔들어 깨웠다가 다독여 드리니 다시 잠이 든다. 숨결이 쇳소리를 내며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나도 예순이 넘었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딸이다. 엄마의 자는 모습에서 내 모습도 그려본다. 모처럼 엄마와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가슴이 텅 빈 것 같다.


일주일 분의 약을 먹고 엄마의 엉덩이는 신기하게 깃털처럼 가볍게 일어났다. 엄마도 믿기지 않은 듯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의사 선생님이 참 용하다고 칭찬을 한다. 몸도 움직이는데 수월하고 가볍다고 하신다.

약을 복용하게 된 지 근 일 년이 되어갈 즈음 의사는 대학병원에서 파킨슨 검사를 한번 받아 보라고 권했다. 의사는 파킨슨 일지도 모르겠다며 약을 처방해 주셨기 때문에 정확하게 검사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약을 먹고 엄마는 앉고 서고가 훨씬 수월했고 계속 약에 의존했던 것이다. 문득 만약 엄마가 파킨슨이 아니라면 내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몇 가지 검사 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엄마의 이름이 불려졌다. 혼자 결과를 들으러 들어갔다. PET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시험지를 받아 든 수험생처럼 긴장되었다. 의사의 가늘고 물기 없는 입술만 옴짝하길 기다렸다. 드디어 의사의 입술이 열렸다.

“어머님은 파킨슨입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이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과 3학년인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전근으로 잠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연탄불을 꺼트리지 않고 때를 맞춰 갈아주는 일이 어린 나이에 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둘은 자다 보면 추워서 이불만 당기며 파고든다. 외풍이 얼마나 센지 윗목에 둔 물그릇은 버쩍버쩍 얼어있기가 일수였다. 그런 날은 영락없이 연탄은 꺼져있다. 밤중에 연탄을 갈아야 될 때는 특히 서로 안 나가려고 핑계를 전가하다 때를 놓친다. 어쩔 수 없이 가위 바위 보로 정해서 눈물로 번개탄을 피우곤 한다. 그날도 연탄불을 꺼트려 밤새 달달 떨다가 새벽에야 번개탄으로 불을 붙였다.


따뜻해져 오는 아랫목과 하나가 되어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몸이 점점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했다. 언니는 학교 늦는다며 소리 지르더니 혼자 휑하니 가버렸다.

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지만 건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바닥인지 천장인지 온 우주가 빙빙 돌고 있을 때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언니가 왔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났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때 이후로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 오늘 엄마의 증세를 의사에게 듣고 또다시 하얀 어지럼이 찾아왔다.

몸이 떨리고, 근육이 굳고, 동작이 느려지고 걸음새가 이상해지는 증상들이 생길 거라고 하시며 주의 깊게 잘 살피라고 까지 한다. 앞으로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빈집에 혼자 계셔도 되는 일일지 아니면 요양보호사를 알아봐야 할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바빠졌다. 문을 열고 나오는 나에게 엄마는 물으신다.

“뭐 라드노?”

검사 결과는 좋으나 몸이 부드러워지기 위해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태연히 말은 했다.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렀다. 블라우스 하나 사드렸더니 엄청 행복해하신다. 나는 엄마에게 다짐하듯 옷을 자주 꺼내 입는 것이 아끼는 것이라고 채근을 했다. 엄마는 옷을 아주 아끼신다. 엄마 옷장의 옷은 다 새 옷 같다. 그러다 보면 어떤 때는 몇 번 입지 못하고 유행이 지난 옷이 허다하다.


무스탕이 처음 나왔을 때 큰맘 먹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24개월 할부로 사드린 적이 있다. 그 옷값을 다 갚아 갈 때 까지도 엄마의 무스탕은 장 농 밖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 후로 유행이 지나갈 즈음 몇 번의 뒤늦은 외출을 하긴 했다. 버리지도 못하고 애물단지가 되어 지금도 캄캄한 장롱 속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그냥 두라신다. 엄마의 몸이 장롱 속 무스탕처럼 어둠에 갇히지 않게 자주 외출을 시켜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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